임대차보호법 무시한 집주인 횡포 기승
세입자 보호하려면 보증보험 의무화 돼야
# 맞벌이하며 자녀 둘을 키우는 송아라씨(가명)는 얼마 전 집주인과 전세보증금을 두고 벌인 마찰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새 아파트를 분양받고 전세계약 만료일에 맞춰 잔금을 치르기로 했는데 집주인이 새 세입자가 구해지기 전에는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버텼기 때문이다. 송씨는 이를 경찰에 신고하고 서울시에 민원도 제기했지만 집주인이 꿈쩍도 안하는 바람에 결국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아 잔금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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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전세광고. /사진=뉴스1 DB |
◆유명무실 ‘임대차보호법’… 세입자의 눈물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전세계약 만료일에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의무적으로 전세금을 돌려주도록 하고 있다. 단 하루만 지체해도 세입자가 소송을 제기하면 승소 가능성이 100%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소송에 드는 시간과 비용, 법원의 판결과 강제집행이 이뤄지기까지 세입자가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너무나 크다.
따라서 세입자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새 세입자를 대신 구해 전세금을 받느라 시간을 허비하거나 집주인에게 통사정해 전세금을 돌려받기도 한다. 집주인의 주택 근저당 설정 등으로 대출이 불가능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세입자를 보호하는 법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현실에선 불법이 횡행하는 것이다.
이런 세입자의 피해나 집주인의 횡포를 막을 방법은 무엇일까. 법적절차를 밟는 데 따르는 시간과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면 지자체의 도움을 받는 방법이 있다.
서울시의 경우 ‘눈물그만 상담센터’를 운영해 세입자가 집주인의 전세금 반환 거부를 고발할 수 있도록 했다. 단순 상담은 온라인으로 가능하지만 분쟁조정을 신청하려면 서울시에 직접 방문해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2시간 정도 상담이 이뤄진다. 서울시 공무원이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중재하고 만약 중재에 실패하면 분쟁조정을 권고한다. 세입자와 집주인의 협의에 따라 분쟁조정위원회 날짜가 정해진다.
분쟁조정위가 열리려면 10명의 위원 중 6명 이상이 참석해야 하며 분쟁조정위원은 공인회계사, 공인중개사, 법무사 등으로 구성된다. 신청 시점부터 분쟁조정위의 결정이 나기까지는 약 한달 안팎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소송에 비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비용이 들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문제는 이런 분쟁조정제도 역시 법적효력만 있을 뿐 강제력이 없다는 데 있다. 김용경 서울시 주택정책과 전월세팀장은 “대부분의 경우 분쟁조정제도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지만 집주인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재산까지 빼앗을 수 있는 강제력이 없다. 그때는 불가피하게 소송으로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회 ‘전세금 보증보험’ 의무화법 추진
세입자가 전세금을 보호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으로는 ‘전세금 보증보험’ 제도가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SGI서울보증의 보증보험에 가입하면 집주인에게 돌려받지 못한 전세금을 보험금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것. 시중은행에서 가입할 수 있고 보증료는 6개월 단위로 분납이 가능하다. 보증료는 전세금 액수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이 역시 세입자에게는 불합리한 제도다. 전세금을 당연히 돌려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자기 돈을 지키기 위해 별도의 금전적 부담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김현아 새누리당 의원 등이 집주인에게도 보증보험 가입의무를 지우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의, 올해 첫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김현아 의원실 관계자는 “당초에는 집주인에게만 가입의무를 지우는 법안이 논의됐으나 집주인의 강한 반발이 있을 경우 진척이 어려울 것을 우려해 세입자와 둘 중 한명이 가입하거나 보증료를 절반씩 부담하는 방향으로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앞으로는 아파트 공급량 증가와 전셋값 하락으로 이런 보증보험의 필요성이 더 커질 전망이다. 특히 수도권 전세물량이 급증하면서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역전세난’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김현아 의원실 관계자는 “역전세난이 심해질수록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기 위해 전세금 보증보험에 가입해주는 조건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시장이 폭락한 당시에도 전셋값 하락으로 인한 전세금 대란이 발생했다. 집주인이 새 세입자를 구해도 기존 세입자의 전세금 차액을 마련하지 못해 보증금이 연체되자 집주인의 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논란이 일었다.
한편 지난해 9월 한국자산관리공사 등의 자료에 따르면 2011~2015년 집주인이 세금을 체납해 세입자가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경우가 1508건이나 됐다. 한해 300건 이상 발생한 셈이다. 전세금 반환을 청구하고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 피해액은 365억원에 달한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