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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머니SDB |
자살보험금(재해사망보험금) 미지급 문제로 꼬였던 매듭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미지급 자살보험금을 둘러싼 금융감독원과 삼성∙교보∙한화생명이 해를 넘겨가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빅3 보험사가 ‘묘수’로 찾은 시기는 2011년. 빅3 모두 2011년 이후 청구 건에 한해 미지급 자살보험금을 일부 지급키로 결정했다. 2011년 이전에 발생한 자살보험금 미지급분에 대해서는 금감원이 제재할 근거 규정이 없다는 점에서 중징계를 피하고 자살보험금 지급분은 최소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자살보험금 전액 지급 입장을 고수해온 금융감독원이 이 같은 지급방안을 수용해 제재 수위를 낮출 지는 미지수다.
자살보험금 논란이 새해에도 끝나지 않고 새 국면을 맞은 가운데 지난해 발의된 자살보험금 소멸시효 특별법은 어수선한 시국에 맞물려 흐지부지되는 모습이다.
◆삼성 ‘기금출연 검토’∙교보 ‘위로금’∙한화 ‘일부지급’
삼성생명은 교보∙한화생명에 이어 소멸시효가 지난 미지급 자살보험금 일부를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지급방식은 교보∙한화생명과 사뭇 다르다. 삼성생명은 오는 16일 이사회를 열고 자살보험금 지급방안과 명목 등을 결정해 이번주 안에 추가의견서를 금감원에 제출할 계획이다.
삼성생명도 교보∙한화생명과 마찬가지로 2011년 이후 청구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빅3 모두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2011년 1월24일 이전에는 보험업법상 ‘약관 불이행’을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11년 이후 발생한 미지급 건에 대해서만 지급키로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여기서 삼성생명은 2012년 9월5일을 새로운 ‘묘수’로 잡았다. 금감원이 지난 2014년 ING생명에 자살보험금 지급권고를 내렸던 2014년 9월5일을 기준으로 2년의 소멸시효를 계산해 지급 대상 시점을 2012년 9월6일로 잡은 것.
삼성생명 관계자는 “2012년 9월6일 이후의 자살보험금 미지급 건은 지급할 계획”이라며 “금감원이 ING생명 등 보험업계에 자살보험금 지급을 권고한 시점인 2014년 9월5일을 기준으로 소멸시효 기간까지 감안해 이 시점(2012년 9월6일)부터 보험금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즉 보험업법상 약관 위반에 대한 제재가 가능해진 2011년 1월24일 이후를 지급대상으로 하되 2012년 9월6일 이후 미지급 건에 대해서만 자살보험금을 주는 것이다. 2011년 1월24일과 2012년 9월5일 사이의 미지급 건에 해당하는 자살보험금은 자살예방사업에 쓸지 검토 중이다.
삼성생명이 미지급 건에 대해 내놓기로 한 금액은 고객에게 돌아가는 보험금 400억원, 자살예방 관련 사업에 쓰이는 보험금 200억원으로 총 600억원이다. 이는 삼성생명 미지급보험금 1608억원의 3분의1 수준이다.
이에 앞서 교보생명은 1134억원의 미지급 자살보험금 중 18% 수준인 200억원을 ‘위로금’ 명목으로 전달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한화생명은 1050억원 중 교보생명과 비슷한 20% 미만을 ‘보험금’으로 지급할 방침이다.
마지막까지 입장 표명을 보류했던 삼성생명까지 자살보험금을 일부지급키로 하면서 금감원은 이달 중 최종 징계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자존심 상한 금감원, 제재 수위 ‘딜레마’
하지만 이 같은 빅3의 조치에 금감원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빅3의 자살보험금 일부 지급 결정으로 보험업법 위반 소지를 해소하고 각사마다 지급 명분을 달리해 담합 소지까지 피하면서 이들 보험사에 최고경영자(CEO) 해임 등 초강력 제재를 예고했던 금감원의 계획이 다소 틀어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금감원이 빅3의 결정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이 CEO 문책경고나 영업정지 등의 중징계를 단행하더라도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지난해 대법원이 ‘약관대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되 2년의 소멸시효가 지난 건은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기 때문에 이를 내세워 보험사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업계 일각에선 실제 징계 수위가 금감원이 통보한 것보다 훨씬 낮아질 것이라고 본다. 금감원이 심의를 거쳐 중징계를 결정하더라도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의 의결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빅3 보험사가 금융위와 금감원의 입장이 다르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전언이다.
◆문턱 못 넘는 자살보험금 소멸시효 특별법
한편 지난해 10월 김선동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자살보험금 소멸시효 특별법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자살보험금 청구권이 소멸시효 만료로 사라지더라도 법 제정 이후 3년 간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보인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이은 탄핵정국 등 녹록지 않은 국회 상황 탓에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 각종 법안이 산적한 데다 국회 특별법 남발 논란이 제기된 상황이라 올해 안에 통과할 가능성이 낮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장기간 표류되거나 자동 폐기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김 의원실 측은 “이 법안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금융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민생법안으로 지난해 발의해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도 지급하도록 업계에 시그널을 주려했다”며 “올해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여야 의원들을 설득할 계획이었으나 현재 시국에 맞물려 상법 개정안 논의조차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어 예측 불가한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