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텐진시 지에팡베이루 82번가 중국은행 지점 앞. 한 남자가 이곳을 서성거리던 또 다른 남자 곁으로 다가선다. “환전하려구요? 엔, 유로, 달러 모두 가능해요.” 상대방이 머뭇거리자 남자가 더 적극적으로 접근한다. “아이구, 여기서만 20년간 환전했어요. 난 믿어도 돼요.” 그제서야 상대방 남자는 이 남자가 ‘따오예’로 불리는 ‘불법 환전상’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달러 환율을 물으며 거래에 나선다.

요즘 중국에서 불법 환전상이 때 아닌 대목을 누린다. 중국 외환(달러)보유고가 갈수록 줄어들면서 지난해 12월31일 중국 국가외환관리국이 개인의 외화 매입을 엄격히 관리하겠다고 엄포를 놨기 때문이다.


국가외환관리국은 개인이 달러 매입 시 작성하는 외환신고서 내용을 한결 세분화하는가 하면 은행에도 외환거래 증빙서류를 더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기업은 물론 개인까지 앞다퉈 ‘달러 사재기’에 나서자 외환당국이 강력한 규제의 칼을 빼든 것이다.

◆불법 환전상에 몰려드는 사람들

은행 창구마다 ‘달러 매입’ 주문이 눈에 띄게 급증한 것은 1년이 채 안된다. 특히 지난해 12월 미국이 금리인상에 나서면서 중국인 사이에서는 “지금이라도 달러를 사둬야 한다”는 열풍이 불었다.


중국은 지난해 외환보유고가 3000억달러 이상 줄어들며 외환보유고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3조달러’ 가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외환당국은 부랴부랴 자국 기업의 해외투자나 외국기업의 해외송금제도를 바꾸며 달러 반출 ‘속도 조절’에 나섰다. 하지만 한번 붐을 이룬 사재기는 개인에게로 옮겨붙어 좀처럼 식을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인민은행은 지난해 말 외환보유고를 간신히 3조105억달러로 맞췄지만 3조달러의 둑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더욱 철저한 관리·감독이 절실한 상황이다. 일련의 외환 매입 강화제도도 그렇게 나온 조치다.

하지만 규제에는 늘 풍선효과가 있는 법이다. 은행 기록이 남지 않는 거래를 원하는 개인들은 이제 불법 환전상으로 몰려든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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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쏠쏠한 재테크 수단 '각광'
중국의 달러투자 열기는 수익률의 유혹 때문이다. 지난해 달러당 위안화 환율은 정확히 6.67% 올랐다. 연초에 달러를 사뒀다면 단순 계산으로 6.67% 수익을 얻은 셈이다. 특히 올해도 미국은 2~3차례 금리를 더 올릴 전망이다. 강달러 국면에서 앞으로도 위안화 ‘환율 상승’(평가절하)이 불가피하다는 게 달러 투자에 매달리는 개인 투자자들의 노림수다.

일부에서는 올해 달러 수익률이 지난해보다 더 높을 것으로 내다본다. 지난 1월18일 위안화 기준 환율은 달러당 6.8525위안. 연초부터 7위안 턱밑까지 치솟던 환율은 단기적으로 6.8~6.9위안대에서 안정을 찾는 모습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너무 빠른 속도의 ‘7위안’ 돌파를 바라지 않는 인민은행이 환율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가뜩이나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이라고 압박하는 상황에서 7위안 돌파는 자칫 걷잡을 수 없는 위안화 절하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국이 올해 2~3차례 추가 금리인상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하며 위안화 환율이 달러당 7.5위안까지 오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7.5위안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근처에만 가도 연 수익률 8~9%는 너끈하다는 계산이다.

◆불법 환전상 수익률 50% 상승

사실 중국에서는 여윳돈이 갈 데가 없다. 중국의 1년 정기예금 금리가 1.75%로 소비자물가 상승률(2.30%)보다도 낮은 상황에서 마땅히 돈 굴릴 곳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불법 환전상은 1인당 100만위안(1억7200만원)은 물론 200만위안 환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달러 투자자를 끌어모은다. 굳이 재테크 목적이 아니더라도 해외 여행객이나 유학생, 해외 부동산 구입 예정자, 수입기업 등 불법 환전상을 찾는 이는 널려 있다.

이렇다 보니 모처럼 대목을 맞은 ‘따오예’의 수익도 덩달아 뛰고 있다. 환전상 경력별로 차이가 있지만 큰 거래에서는 1만달러 환전 시 대개 600위안의 중개수수료를 뗀다고 한다. 100만위안을 환전한다면 14만7000달러 정도를 바꿔줄 수 있으므로 환전상은 당장 8820위안(152만원)을 거머쥘 수 있다. 이런 수수료는 최근 1년 새 급등한 것이다. 원래는 1만달러당 400위안 정도를 수수료로 뗐는데 달러가 귀해지며 수수료가 600위안으로 껑충 뛰었다. 거래금액이 작으면 수수료는 더 높아진다. 100달러 기준으로 그때그때 환율에 따라 수십위안을 떼는 식이다. 불법 환전상들은 수십명의 신분증을 확보해 이들 명의로 달러 밑천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일부 불법 환전상은 주 수입원이 아예 따로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대표적인 것이 위조 지폐다. 불법 거래의 특성상 달러나 위안화를 위조 지폐로 사용한다 해도 딱히 호소할 곳이 없다. 따라서 거래는 불법 환전상과 하더라도 거래 장소는 반드시 은행이어야 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들린다. 은행에서 지폐 감식기부터 돌린 뒤 거래에 나서라는 뜻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불법 환전상은 신용을 중시하기 때문에 절대 이런 사취를 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불법 환전상이 위안화 환율의 바로미터?

중국정부의 강력한 단속은 불법 환전상에게는 여전히 치명적이다. 특히 베이징의 불법 환전상 밀집지역인 야바오루는 외환당국 감시 강화로 이전 같은 성업이 힘들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중국정부의 강력한 단속에도 불법 환전상은 계속 건재할 수 있을까. 일부에서는 불법 환전 수요 감소로 환전상들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으로 내다본다. 중앙재경대학 은행업연구원 궈텐용 주임은 “외환 매입 한도가 정해져 있고 정규 외환시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불법 환전시장이 유지되고 있다”며 “하지만 위안화 평가절하가 갈수록 안정되고 은행이나 불법 환전상의 환율 격차도 감소세여서 이 시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반면 불법 환전상들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한 환전상은 “해외 여행객과 유학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달러를 원하는 사람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며 “외환당국이 1년 5만달러로 매입 한도액을 정해놓는 한 누군가는 우리를 계속 찾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환전상은 지난해 6월 홍콩에서 168만달러(19억6100만원)짜리 아파트를 매입한 루모씨 사례를 들었다. 이 아파트 매입 당시 환율은 달러당 6.59위안인데 현재 집값 상승과 무관하게 루씨는 환차익만으로 5% 수익을 올렸다는 것이다. 불과 6개월 만에 한화 9800만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미·중 간 팽팽한 환율조작국 공방 속에서 달러의 슈퍼사이클이 과연 도래할지, 누구보다 중국의 불법 환전상들이 잘 알 수도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설합본호(제472호·제4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