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면세점은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불렸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관광객이 늘어나자 정부는 면세 특허권을 5년 단위 입찰제로 변경했고, 2년간 무려 3차례 입찰 대전이 치러졌다. 이 과정에서 신규 업체가 시장에 대거 진입해 서울시내 면세점만 두배 이상 폭증했다. 그만큼 경쟁이 심해졌지만 중국인관광객의 꾸준한 증가로 면세점사업은 성장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그러나 결국 우려했던 사태가 터졌다. 출혈 경쟁이 심화된 와중에 올해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악재가 겹치면서 국내 면세점업계는 활기를 잃었다. 특히 ‘중국 소비자의 날’인 지난 15일을 기점으로 중국인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겨 면세점업계는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난해 우후죽순 생겨난 신규면세점과 올 연말 오픈을 앞둔 사업자의 미래는 더욱 불안하다. 아직 입지를 굳히지도 못한 상황에 사드 보복 직격탄을 고스란히 맞고 있어서다. 폐업이 속출했던 1990년대 ‘면세점 자멸 사태’가 재현될 조짐을 보인다.


◆‘승자의 저주’ 면세점 잔혹사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관광 금지령이 지속될 경우 올해 한국으로 들어오는 중국인관광객은 400만~600만명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중국인관광객 감소는 면세점 매출 감소로 직결된다. 매출의 70% 이상을 중국인관광객에 의존해온 면세점들은 올해 매출이 4조원가량 급감할 것으로 우려한다. 이는 지난해 면세점 시장규모의 3분의1에 달할 정도로 큰 비중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면세점사업자가 최근 2년간 급증했다는 점이다. 2015년까지 롯데, 신라, SK, 동화 등 4개 사업자가 6곳의 면세점을 운영했지만 이후 두차례 추가 선정을 거치면서 올해 말 기준 사업자 수는 13개다. 2015년 말부터 지난해 오픈한 HDC신라면세점, SM면세점, 두타면세점, 신세계면세점 명동점, 갤러리아면세점63 등을 포함해 10개 사업장이 영업 중이다. 올해 말에는 현대백화점면세점 무역센터점과 신세계면세점 센트럴시티점, 탑시티(중소·중견기업) 등 3개가 추가로 문을 연다. 


특히 간판을 내건 지 얼마 안된 신규면세점의 한숨이 깊다. 기존 사업자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고 개별 관광객들에게 인지도가 높지 않아 사드 후폭풍 우려가 더욱 크다. 신규면세점 중 그나마 HDC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올 들어 겨우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중국 사드 보복이라는 강력한 악재에 부딪히면서 이달부터 다시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아직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두타면세점, 갤러리아면세점63, SM면세점의 전망은 더욱 불투명하다. 한화갤러리아가 지난 2015년 12월 서울 63빌딩에 문을 연 갤러리아면세점63은 지난해 430억원가량의 당기순손실을 봤다. 증권가에서는 올해도 약 330억원대 규모의 영업적자를 낼 것으로 점친다. 중국인관광객 감소 규모에 따라 적자 폭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지난해 5월 오픈한 두산의 두타면세점도 지난해 상반기에만 16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으며 연간 300억원대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하나투어가 운영하는 SM면세점 역시 지난해 279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중국의 사드 배치 보복으로 한산해진 국내 면세점. /사진=뉴시스DB
중국의 사드 배치 보복으로 한산해진 국내 면세점. /사진=뉴시스DB

◆뿌리째 ‘흔들’… 인원감축부터 매각설까지
급기야 면세점들은 ‘위기경영’에 돌입했다. 2015년 12월 문을 연 갤러리아면세점63은 개점 1년을 겨우 넘긴 시점인 올 초부터 허리띠를 졸라맸다. 모든 임원이 연봉의 10%를 자진 반납하고 부장과 차장, 과장 등 중간관리자들까지 연 800% 수준이던 상여금 중 100%를 반납했다. 부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명예퇴직도 접수 중이다. 지금까지 10명 이상의 직원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파악됐다.

두타면세점은 면세점을 오픈한 지 1년이 채 안됐지만 벌써 대표이사가 세번이나 바뀌었다. 2015년 11월부터 두산의 면세점사업을 이끈 이천우 대표가 물러나고 지난해 동현수 두산 사장이 면세점을 운영했으나 올해는 조용만 비즈니스그룹(BG)장이 두타면세점을 맡았다. 또 실적 부진으로 새벽 2시까지였던 영업시간을 밤 12시로 단축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면세점사업을 이끌 새 수장(황해연 현대백화점 부사장)을 선임하고 경력직원 채용에 나서며 오는 12월 오픈 준비를 본격화하고 있다. 정확한 경력직 채용 인원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이번 사태로 당초 업계에서 추정했던 규모(200~300명)보다 적은 수준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신규면세점뿐 아니라 기존면세점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국내 최초 면세점인 동화면세점은 경영권을 넘기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동화면세점의 최대주주인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이 호텔신라에 동화면세점 경영권을 내놓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정작 호텔신라 측은 동화면세점의 주인이 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특허권 남발에 망가진 면세점 사업

면세점들은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동남아, 중동 등으로 시장 다변화를 모색하지만 어떤 전략도 중국인관광객의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다.

면세점업계는 답답함을 호소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을 다변화하라고 얘기하는데 이미 예전부터 일본, 동남아 등 다른 나라 관광객을 위한 마케팅을 꾸준히 해왔다”면서 “그럼에도 70~80%가량을 차지하는 중국인관광객을 당장 다른 나라 관광객으로 채우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면세점 특허권을 놓고 벌어진 혼란은 국내 면세점시장 경쟁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의 보복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중국인관광객 수요를 낙관한 정부의 특허권 남발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며 “면세점 사업권을 5년마다 원점에서 재심사하는 ‘5년 한시법’은 되레 면세점 전반의 수익성을 악화시켰고 고용 불안을 초래해 성장을 가로막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허가제로 인해 면세점의 경쟁력이 약화됐고 이 과정에서 특혜 의혹만 불거졌다”며 “지금의 허가제를 시장 원리에 맡기는 신고제(등록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