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수출산업에 노란불이 켜졌다.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무역장벽이 낮아지는가 싶더니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각국의 수입규제가 오히려 본격화됐다. 이 중 우리나라를 향한 수입규제는 14개국에서 총 19건에 달한다. 19건 중 15건은 신흥국이고 4건은 미국 등 전통적인 수출시장이다.

가장 긴장하는 건 철강업계다. 강력한 보호무역을 천명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무역장벽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커져서다. 업체들은 “대미수출 비중이 크지 않다”면서도 판정결과가 다른 나라로 번지는 이른바 ‘도미노 효과’를 우려하며 미국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가별 총 규제는 인도가 33건으로 가장 많으며 미국은 23건으로 2위다. 중국과 태국이 각각 13건과 12건으로 뒤를 잇는다. 이들 국가가 주로 규제하는 건 철강·금속과 화학부문으로 전체 181건 중 88건(76%)에 달한다. 특히 철강·금속은 미국이 18건(20%)으로 규제가 가장 많았다.


[머니포커S] 철강업계, '트럼프 쇼크' 견딜까

철강업계는 미국의 창끝이 우리나라로 향한 게 중국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 중국의 철강업체들이 과잉생산으로 제품단가를 크게 떨어뜨리고 저가제품이 미국 철강업계의 생태계를 위협하자 미국정부가 대응에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은 보호무역 카드를 빌미로 중국과 한국 철강제품에 반덤핑 판정을 내리며 압박을 본격화했다.
◆덤핑을 문제 삼은 배경

세계 각국 정부가 수입규제 방법으로 흔히 쓰는 건 '반덤핑'(anti-dumping)이다. 우리나라가 연관된 181건 중 74%인 134건이 반덤핑 규제다. 이 중 30건은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당장 오는 29일에도 포스코 후판제품의 6.82% 덤핑마진에 대한 최종판결이 나온다. 두께 6㎜이상의 후판은 주로 선박 건조에 사용되며 미국 수출물량의 90%를 포스코가 차지힌다. 세아제강과 현대제철이 미국으로 수출하는 유정용 강관(원유와 천연가스 채취에 사용하는 고강도 파이프)에 대한 반덤핑 판정도 이달 내로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무역에서 덤핑은 수출국에서 통상적으로 거래되는 특정물품의 정상가격이 무역상대국(수입국)의 수출가격보다 높을 때를 뜻한다. 즉 국내판매가격보다 해외판매가격이 낮으면 문제가 된다는 얘기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액이 덤핑마진이다.

WTO(세계무역기구)는 덤핑으로 인한 시장 교란을 막기 위해 각국의 덤핑 규제를 허용한다. 특히 덤핑 판정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건 제품가격을 낮추는 데 수출국 정부가 어떤 도움을 줬는지 여부다. 전기나 수도요금할인 등 제품생산과정에 포함된 혜택이 모두 포함된다.

우리나라 철강제품이 세계 각국의 타깃이 된 건 그만큼 수출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지만 현지업체와 품목이 겹치는 경우가 늘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각국이 이처럼 무역장벽을 높이는 건 그만큼 세계경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며 “국내 수출기업들이 잘 대비해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외양간 타기 전에 고쳐야

지난해 미국 상무부는 한국산 열연·냉연 강판에 높은 반덤핑·상계관세를 부과했다. 반덤핑관세는 수출국 내수시장에서의 판매가격과 수출품 가격의 차액만큼, 상계관세는 수출국 정부의 부당한 보조금 지원에 대해 관세를 매기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7월 한국산 냉연강판에 대해 포스코 반덤핑 6.32%와 상계관세 58.36% 등 총 64.68%, 현대제철 반덤핑 34.33%와 상계관세 3.91% 등 총 38.24%의 관세율을 매겼다. 이어 지난해 9월 열연제품에도 포스코 반덤핑 관세율 3.89%, 상계관세율 57.04%로 총 60.93%의 관세율 판정을 내렸다. 현대제철도 반덤핑 9.49%, 상계 3.89% 등 13.38%의 관세율이 결정됐다. 이들 강판은 자동차나 가전제품 등 산업의 기초재료다.

‘관세폭탄’을 맞은 국내 철강업계는 본격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60% 이상의 관세가 책정되면 사실상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잃어 판매가 불가능해진다. 이에 업체들은 WTO에 제소하는 등 법적조치와 함께 수출국가를 다변화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관세폭탄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통상대응조직도 확대개편했다. 포스코는 2013년 철강사업본부 내 철강사업전략실에 무역통상그룹을 신설했다. 지난해에는 인력을 보강하고 역할을 늘려 통상부문의 지위를 격상했다. 현대제철도 지난해 하반기에 영업본부 아래 통상전략실을 만들고 3개 팀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관련업무를 하던 팀의 역량을 하나로 모아 역할을 강화한 것. 동국제강과 세아제강도 통상을 전담하는 팀에서 각국의 통상 관련 업무에 대응 중이다.

국내 대표 철강사들이 통상 전담부서를 만들고 역량을 모은 건 제소를 한 국가에서 답변서를 요청할 때 보다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해외 정부가 갑작스레 방대한 자료를 요청함으로써 불리한 판정을 이끌어냈기 때문에 이제는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 없다는 것. 따라서 각 사의 해당 부서에서는 제소국 정부요청에 대응하거나 해당국의 실사단을 만나 덤핑 마진율을 낮추는 등의 활동을 전담한다.

철강협회도 회원사들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협회 관계자는 “정부와 협회, 회원사 간 대책회의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반덤핑과 관련해 할 수 있는 건 사안에 맞춰서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국이나 인도 철강협회와도 정례적 미팅을 갖고 상호협력관계를 논의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철강업체 관계자는 “단순히 트럼프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팀을 강화한 건 아니고 장기화·다양화되는 이슈로 판단해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라며 “경쟁이 덜 치열한 제품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것도 업계의 생존전략 중 하나”라고 전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