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정상화 과정에서 ‘유동성 위기’라는 구렁텅이에 빠진 대우조선해양에 금융당국이 다시 한번 동아줄을 던져줬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3월23일 서울정부청사에서 열린 '대우조선 구조조정 추진방안' 설명회에서 “대우조선에 부족한 유동성을 적기 공급해 수익창출이 가능한 경영구조로 전환시키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판단했다”며 대우조선에 추가자금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사진=뉴스1 임세영 기자
/사진=뉴스1 임세영 기자

◆ 원칙보다 현실 택한 금융당국
금융당국은 이날 대우조선 채무 재조정을 조건으로 2조9000억원의 신규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패키지로 묶인 출자전환 2조9000억원과 만기연장 9000억원을 포함하면 실질적으로 대우조선에 6조7000억원 규모의 유동성이 지원되는 셈이다. 2015년 10월 4조2000억원의 신규자금을 투입하며 "더이상의 추가지원은 없다"고 못박았던 임 위원장은 결국 말을 바꿨다.

그는 “조선업의 장기 시황부진을 충분히 예측하지 못했고 대우조선의 위험요인을 보수적으로 판단해 대응하지 못했던 부족함이 있었다”며 “책임자로서 져야 할 책임이 있다면 회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추가지원을 해야 한다는 입장만큼은 분명히 전달했다. 대우조선이 현상태로 주저앉는 것은 국가적으로 59조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히는 ‘재난’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금융위는 신규자금 지원에 앞서 ‘모든 채권자의 자율적 채무조정합의’를 요구했다. 2조9000억원의 지원만으로는 대우조선 정상화가 불가능하므로 국내은행 및 사채권자 등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논리다. 합의가 무산될 경우 바로 법정관리의 일종인 사전회생계획제도(P플랜)에 돌입한다. 이 경우 법원에 의한 채무조정이 실시된다.

금융당국의 이같은 방안은 지난해 구조조정을 실시한 현대상선의 사례와 유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대상선도 구조조정 당시 모든 채권자의 손실분담을 전제로 했고 합의가 무산되면 ‘법정관리’에 돌입한다는 배수의 진을 쳤다. 법정에서 강제적으로 채무조정이 실행될 경우 채권회수 비율이 낮으므로 채권자 합의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하지만 대우조선이 현대상선처럼 모든 채권자의 합의를 이뤄낼 지는 미지수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현재 대우조선의 무담보채권 1조6000억원어치를 100% 출자전환하기로 했고 시중은행도 700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과 만기연장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1조5000억원 규모의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이다. 대우조선은 200명 규모의 전담팀을 꾸려 사채권자 설득에 나선다는 방침인데 사채권자 집회가 열리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사채권자를 설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3900억원어치의 회사채를 보유한 국민연금의 결정이 관건이다.


만약 채권자 합의에 실패해 P플랜에 돌입하더라도 금융당국은 대우조선에 신규자금을 지원한다. 하지만 이 경우 선박을 발주한 선주들의 선수급환급요청(RG콜)이 이어질 수 있어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우조선은 P플랜 가동을 대비해 선주사와 사전협의를 진행해 리스크를 줄인다는 방침이지만 손실을 피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대우조선이 수주할 당시보다 현재의 선박 단가가 더 싸기 때문에 선주들이 P플랜을 빌미로 RG콜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며 “대우조선 입장에선 채권자 합의가 최선”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23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유일호 경제부총리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뉴스1 임세영 기자
지난 3월23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유일호 경제부총리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뉴스1 임세영 기자

◆ 살아날 수 있을까
본질적인 문제는 이번 자금 추가투입으로 대우조선이 살아날 수 있을지 여부다. 채권자 합의가 도출돼 계획대로 구조조정이 이뤄진다 해도 대우조선이 ‘홀로서기’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이번만큼은 확실히 정상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산업은행은 이번 정상화 방안은 신규수주뿐 아니라 소난골 드릴십 인도지연 문제 등 모든 위험요인에 대해 최대한 보수적인 관점을 반영해 불확실성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 구조조정 계획은 보수적인 관점의 진단을 기반으로 설정됐다. 신규 수주목표는 올해 20억달러, 내년54억달러에 불과하다. 소난골 드릴십도 인도대금을 받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산업은행은 차질없는 구조조정을 통해 대우조선의 체질을 확실히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경쟁력 없는 플랜트 부문은 사실상 정리하고 경쟁력 있는 상선과 특수선 부문의 효율화에 집중할 방침이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지속한다. 임금 반납·무급 휴직을 통해 올해 인건비를 25% 줄이고 현재 1만명까지 감원한 직영인력은 내년 상반기까지 1000명 더 줄이기로 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회사의 몸집을 줄이고 차세대 신선박사업과 첨단기술을 활용한 수출방산사업에 모든 역량이 집중된 기업으로 변화시키겠다는 것”이라며 “경쟁력 있는 회사로 만들어 인수할 주인을 찾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설명했다.

변수는 조선업황 개선이다. 대우조선이 아무리 혹독한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일감이 말라버린다면 홀로 설 수 없다. 이번 유동성 위기의 본질적인 원인도 ‘수주가뭄’이었다. 대우조선 정상화를 자신하는 금융당국의 계산 속에는 내년 이후 조선업황이 나아질 것이란 기대가 포함됐다. 당국은 최악의 수주절벽에 직면했던 지난해를 저점으로 세계 선박 발주량이 개선될 거란 클락슨의 예상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 조선업계에서는 2020년 선박 배출가스 관련 국제 규제 시행을 앞두고 올해 하반기부터 발주가 서서히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싹트고 있다.

하지만 업황개선을 단언하기는 어렵다. 또 치열한 국내외 조선사들과의 경쟁 속에 대우조선이 수주를 ‘확실히’ 늘릴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업황이 개선되더라도 바닥까지 떨어진 대우조선의 대외 신뢰도가 수주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