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3일 국내 첫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가 공식 출범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이 이미 자리를 잡았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세계 최초로 설립된 건 1995년이다. 미국의 시큐리티퍼스트네트워크뱅크(SFNB)가 가장 먼저 출범했고 이듬해 넷뱅크, 1998년 영국 에그뱅크가 순차적으로 탄생했다. 이들은 지급결제서비스의 패러다임을 바꾸려 했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당시로선 파격인 인터넷뱅킹, 즉 마우스 클릭으로 은행거래가 가능한 서비스를 선보였다. 기존 은행거래비용보다 낮은 수수료를 내세워 금융소비자를 확보한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마케팅비용 등 초기발생비용 증가, 자금운용 실패, 낮은 고객 신뢰도 등의 원인으로 모두 일찍 문을 닫았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이 활성화된 시기는 2000년대다. 2000년대 이후 탄생한 세계의 인터넷전문은행은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통해 본격적으로 금융권의 일정 파이를 점유했다. 2000년대 초반 설립돼 살아남은 인터넷은행과 3~4년 전 출범해 파이를 키우고 있는 곳 모두 각사만의 강점을 바탕으로 기존 은행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통점이 있다.
◆유럽-헬로뱅크, 모바일앱으로 젊은층 유입
해외 인터넷전문은행 가운데 가장 성공한 모델로 꼽히는 곳은 유럽의 헬로뱅크다. 2013년 5월 글로벌 금융그룹 BNP파리바가 설립한 헬로뱅크는 젊은 고객층을 타깃으로 신선한 금융서비스를 출시해 호평받았다. 유럽의 여느 은행과 달리 전자거래 시 수수료를 면제하고 휴대전화번호·QR코드로 자금이체가 가능하도록 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헬로 퍼스널’을 통해 비대면 계좌개설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고객의 편의성을 높였다. 특히 이 앱은 고객의 수입·지출패턴을 인포그래픽으로 파악할 수 있어 젊은 고객층의 유입을 늘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칫 소홀할 수 있는 고객 사후관리에도 신경을 쓴다. 고객은 모바일채팅, 트위터, 음성통화 등으로 각종 불편사항을 주 6일간 상담받을 수 있다. 헬로뱅크는 벨기에·독일을 기점으로 출범한 이후 프랑스·이탈리아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최근에는 라트비아에도 진출했다.
◆미국-자동차·비은행 금융회사 운영 ‘시너지’
미국은 제조업체나 비은행 금융회사의 자회사 형태로 인터넷전문은행이 운영된다. GM·BMW 등 완성차제조업체의 고객 기반을 바탕으로 자동차금융 중심의 특화서비스를 제공해 시너지를 내거나 카드·증권계열사로 설립돼 기존 고객에게 금융서비스를 확대하는 식이다.
GM의 금융계열사인 알리뱅크, BMW의 계열사 BMW뱅크가 대표적인 제조업 기반 인터넷전문은행이다. 찰스슈왑뱅크는 증권사 계열사로 미국 내 총자산 규모 기준 최상위권 인터넷전문은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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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
◆일본-대주주 사업모델 연계 수익성 창출
일본의 인터넷전문은행은 대주주 역량을 기반으로 특화업무를 집중 육성해 성공한 케이스다. 대주주의 사업모델과 연계해 수익성을 창출했다는 얘기다.
야후재팬이 주주인 재팬넷뱅크는 야후재팬의 결제플랫폼을 활용해 특화된 지급결제서비스를 선보였다. 야후재팬 회원은 ID와 비밀번호만으로 재팬넷뱅크 계좌에서 각종 대금을 인출할 수 있다. 지분뱅크는 통신업체인 KDDI와 합작한 인터넷전문은행으로 모바일 송금서비스를 특화했다. 모바일을 통한 외화예금·송금 등 외국환서비스를 비롯해 환율정보도 제공한다.
국내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도 각각 지분뱅크와 재팬넷뱅크의 비즈니스모델을 참고할 것으로 예상된다. 각각 KT와 카카오가 주도해 설립한 만큼 이들의 업무역량을 활용하면 수익성 창출이 보다 쉬울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개인금융팀장은 “카카오뱅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기반으로 출범하는 세계 최초의 인터넷전문은행”이라며 “카카오뱅크의 비즈니스모델은 재팬넷뱅크와 가장 유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객 신뢰확보·특화서비스 ‘관건’
해외 인터넷전문은행이 처음부터 성장한 것은 아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주요 6개 인터넷전문은행이 순이익을 실현하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5년이다. 2001년 6월 설립된 라쿠텐뱅크는 2010년 3월 순이익을 달성했다. 실적을 내는 데 8년9개월이 걸린 셈이다.
이처럼 인터넷전문은행이 순이익을 실현하기까지 오래 걸리는 건 높은 초기투자비용에 비해 고객유치가 쉽지 않아서다.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하려면 풀뱅킹(Full-banking)시스템 구축과 금융공동망 참가·유지, 보안투자 등 기본적인 인프라 구축에만 최소 600억~7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기존 은행보다 인지도와 신뢰도가 낮아 고객 확보를 위한 마케팅비용도 만만찮다. 실제 2000년대 초 미국 인터넷전문은행들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막대한 마케팅비용을 투입한 후 유동성 위기에 빠져 2년을 넘기지 못하고 도산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도 인터넷전문은행이 차지하는 파이가 크다고 볼 수도 없다. 전체 은행 대비 인터넷은행이 차지하는 자산과 당기순이익 비중을 보면 미국의 경우(2014년 말 기준) 3.0%, 2.9%이며 일본(2014년 3월 기준)은 1.1%, 1.35%에 불과하다. 총예금과 총대출 비중 역시 미국은 2.8%, 3.4%이고 일본은 1.24%, 0.68%다. 정 팀장은 “이 수치가 지난 2~3년간 조금 올랐겠지만 앞 단위가 바뀌진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의 경우 인터넷전문은행이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이 해외보다 좋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중은행은 물론 카드사, 캐피털사 등 비은행권도 비대면서비스를 시행하는 등 핀테크 역량을 강화하는 데다 최근 P2P(개인간)대출시장도 급성장해서다. 신용평가모델을 특화하고 중금리(5~15%) 신용대출로 수익화에 나선다는 전략이지만 기존 금융권이 제공하지 못한 특화 서비스를 선보이지 않으면 실패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위원은 “(인터넷전문은행이 성공하려면) 고객 신뢰확보가 관건”이라며 “금융업은 신뢰를 기반으로 이뤄지는데 해외의 비즈니스모델을 보면 100% 금융업이라기보다 비금융업과 합쳐 부가가치를 만들어낸 모델이다. 그런 면에서 은행 본연의 업무를 중심으로 성공했다고 말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국내 시중은행 간에도 금리차이가 나지만 고객이 유지되는 건 결국 사업적 효용보다 고객과의 신뢰관계가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