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살인자’로 불리는 미세먼지는 크기가 10㎛ 이하로 사람의 머리카락 굵기(50~70㎛)보다 훨씬 작다. 이 같은 미세먼지가 대기에 얼마나 있는지 알려주는 PM10의 예보등급은 농도에 따라 ‘좋음’(0~30 ㎍/㎥), ‘보통’(31~80 ㎍/㎥), ‘약간 나쁨’(81~120 ㎍/㎥), ‘나쁨’(121~200 ㎍/㎥), ‘매우 나쁨’(201~ ㎍/㎥)으로 구분된다.
특히 봄철에는 미세먼지에 중국발 황사까지 기승을 부려 이를 걸러주는 마스크가 날개돋친 듯 팔린다. 면으로 된 일반마스크는 미세먼지를 예방하는 효과가 적어 부직포로 만든 특수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내도 미세먼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공기청정기제조회사도 함박웃음을 짓는다. 가격비교사이트 에누리닷컴에 따르면 지난달 공기청정기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45% 증가했다. 이마트, G마켓, 하이마트의 공기청정기 판매량은 각각 41%, 50%, 41% 성장했다. 특히 전자랜드는 올 1분기 공기청정기 판매량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267%나 증가했다. 저가형보다는 가격대 높은 제품이 오히려 더 많이 팔리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마시는 공기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면 큰 돈도 기꺼이 지불할 수 있다는 심리를 보여준다.
◆뇌세포 침투·기형아 출산 위험
미세먼지가 유발하는 질병은 무엇일까. 상식적으로 코와 목을 통해 들어오는 만큼 호흡기질환이 생길 수 있고 폐 등에 안 좋을 것으로 인식된다. 피부와 점막을 자극해 생기는 질환을 염려하는 사람도 있다.
코에 들어가면 점막을 자극해 콧물, 코막힘, 재채기를 유발하고 알레르기성 비염을 악화시키며 기관지로 들어가면 기도에 염증이 생겨 가래·기침 등 감기와 비슷한 증상이 야기된다. 피부에 닿으면 피부를 자극해 모공을 확대시키고 가려움증이 생기며 아토피 피부염과 여드름이 악화된다. 눈에 들어가면 눈이 가렵고 눈물이 나는 안구결막염이 발생한다. 폐에서는 산소교환율 감소로 폐기능이 저하돼 숨찬 증상이 나타나며 만성폐질환·천식·만성기관지염이 악화된다. 미세먼지에 장기간 노출되면 폐암 발생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환경부가 발표한 ‘실내 미세먼지 조사’에 따르면 밀폐된 공간에서 고등어를 구울 때 발생하는 미세먼지는 등급상 ‘나쁨’에 비해 농도가 30배 이상 높다. 삼겹살은 19배, 달걀 프라이는 14배다. 중국에서는 가스 불에 볶아 음식을 만드는 주방장의 폐암 발생률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되기도 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에서 약 46만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조사한 결과 흡연자의 폐암 발생률은 남녀가 비슷한 반면 비흡연자의 폐암 발생률은 여성이 남성보다 뚜렷이 높았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2013년 10월 대기오염물질 가운데 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실제로는 어떨까. 미세먼지는 폐, 호흡기, 피부, 눈뿐만 아니라 우리 몸 대부분의 세포를 손상시키고 심장과 뇌까지 망가뜨리는 등 우리 인체에 예상보다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혈관까지 침투해 혈액의 점도를 높이고 온몸을 돌면서 구석구석 악영향을 준다. 점도가 높은 피는 뇌졸중·뇌경색·심근경색 등 심혈관계질환 발병률을 높인다. 또 혈액 속 산화 스트레스가 증가해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지는 부정맥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을수록 고혈압 증상도 빈번하게 생긴다.
임신부가 미세먼지를 많이 흡입하면 염증이 생겨 혈액이 끈적해지고 태반을 통한 혈액공급이 원활하지 않게 된다. 이 경우 태아는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해 성장이 저하되고 태어난 아이의 지능이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 연구진의 조사에서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지역에 거주한 산모의 경우 순환기가 기형인 아이를 더 많이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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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
미국 하버드대학 연구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초미세먼지에 많이 노출된 산모가 자폐증에 걸린 자녀를 출산한 비율이 높았다. <간 연구저널>(Journal of Hepatology)에 실린 미국 웨인주립대 장 케홍 교수팀의 논문은 직경 2.5㎛ 이하(PM2.5)의 초미세먼지가 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간 섬유증을 촉발하는 것을 입증했다.
뇌는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이고 손상됐을 때 재생되지 않아 잘 보호해야 할 부위다. 따라서 혈액이 뇌 조직으로 들어갈 때는 유해물질을 걸러내는 장벽을 거친다. 뇌혈관을 둘러싼 세포층인 혈뇌장벽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을 비롯해 대부분의 외부물질이 통과하지 못하고 물·산소·포도당 등 대사에 필요한 극소수의 물질만 통과한다. 그런데 미세먼지는 이 장벽을 뚫고 뇌로 직접 침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동물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지난해 9월에는 대기오염으로 발생한 초미세먼지 성분을 사람의 뇌에서 발견한 미국 란체스터대 교수팀 논문이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다. 사람 뇌 속까지 초미세먼지 입자가 직접 들어간다는 사실이 최초로 확인된 것이다.
초미세먼지에 장기간 노출되면 기억력·사고력 등 고등 기능을 수행하는 전두엽을 포함해 주요 뇌 부위의 회색질과 백질의 용적이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초미세먼지 3.5㎍에 노출될 때마다 백질의 용적은 6㎤씩 줄어든다. 러쉬대학병원 연구팀은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곳에 사는 사람일수록 뇌 인지기능 퇴화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알아냈다. 인지기능이 떨어질수록 치매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학 칼렙 핀치 박사가 지난 2월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초미세먼지에 자주 노출될 경우 인지기능 저하 위험이 81%, 치매 발생률이 92%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뇌세포 표면에 형성돼 치매를 일으키는 주범인 독성 단백질 베타 아밀로이드 플라크의 축적이 가속화돼서다.
◆한국 공기질 전세계 꼴찌 수준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더 나은 삶 지수’를 발표했는데 한국은 환경부문의 대기오염 수치가 OECD 회원국 중 꼴찌였다. ‘2016 환경성과지수(EPI)’ 보고서에는 한국의 공기질 수준이 전세계 180개국 중 하위권인 173위이고 초미세먼지 부문은 중국과 같은 174위를 기록했다. 세계에서 가장 공기 오염이 심한 3대 도시로 중국 베이징, 인도 델리와 함께 서울이 뽑혔다. 올 들어 한국에서 미세먼지 경고를 발동한 횟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증가했다.
미세먼지의 원인은 국내배출과 중국 등의 영향으로 구분되는데 국외 영향이 절반 정도 차지한다. 고농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달 17~21일에 중국발 초미세먼지비율이 최대 86%에 이르렀다.
지난 5일에는 미세먼지와 관련해 한국과 중국 정부를 상대로 사상 처음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제기됐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와 안경재 변호사가 날로 심해지는 미세먼지의 정확한 원인을 밝히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대한민국과 중화민주주의인민공화국(중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
자동차배기가스, 난방보일러의 연료, 공장 매연 등 연소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에는 황산염·질산염·암모니아 등 각종 유해 화학성분과 납·비소·카드뮴 등 중금속이 포함돼있다. 중금속이 발암물질임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최근 정신적으로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드러났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도관 교수 연구팀은 시·도별 대기오염지수와 자살률을 비교 분석해 미세먼지 속에 포함된 중금속 성분이 몸에 들어가면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촉진해 충동성이나 우울증이 심해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PLOS>(Public Library of Science) 발표했다.
우리 몸 여러 부위에 전방위적으로 악영향을 미치는 미세먼지는 여름이 되면서 기온이 오르면 대기상층으로 확산돼 줄어든다. 그때까지는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