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쪽 끝자락이자 고양시 향동지구와 인접한 은평구 수색동·증산동 일대는 강북의 대표적 낙후 지역으로 꼽힌다. 지은 지 몇년 안된 신축 빌라나 10여년 남짓한 소규모 아파트도 더러 있지만 전체적으로 노후주택이 많고 기반 시설도 열악한 편이다. 최근 방문한 이곳은 재개발을 앞두고 이주를 준비 중인 곳도 있고 이미 동네 건물을 모두 철거해 터파기 공사가 한창인 곳도 있다. 직선거리로 200여m 남짓한 마포구 상암동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개발에 들어가 현재는 고층 빌딩과 아파트·오피스텔이 즐비한 첨단업무지구로 변했지만 수색동·증산동 일대는 이제 시작이라 그만큼 기대감에 들떠 있다.

◆DMC역이 가른 상반된 두 동네


서울 지하철 6호선과 공항철도·경의중앙선이 만나는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역을 경계로 너무나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두 동네가 있다. 남쪽은 서울의 대표 첨단 업무지구로 발돋움한 상암동이고 북쪽은 대표 낙후 지역으로 꼽히는 수색동·증산동 일대다.

경계를 지나는 DMC역 철길이 마치 남한과 북한을 가르는 휴전선을 연상케 할 만큼 두 지역은 단절됐다. 보통의 역세권은 철길을 중심으로 반대편 동네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육교나 지하도 등이 있지만 DMC역은 환승구간을 지나는 데만 5분 이상 걸릴 만큼 역 구조가 기형적이고 철길의 폭이 넓다. 


수색동 재개발 지역 너머로 보이는 상암동의 고층 빌딩. /사진=김창성 기자
수색동 재개발 지역 너머로 보이는 상암동의 고층 빌딩. /사진=김창성 기자

또 DMC역 각 출입구가 역의 양쪽 끝에 위치해 반대편 동네를 오가려면 개찰구를 지나야만 이동할 수 있다. DMC역이 아닌 양쪽 동네를 연결하는 또 다른 차로는 2km가량 떨어진 수색교와 DMC역 인근 철길 밑의 증산지하차도, 불광천 동측의 2차선 도로가 전부다. 수색기차역 인근에서 상암동으로 통하는 오래된 지하도가 있지만 차량은 지날 수 없는 협소한 길이다.

최근 찾은 DMC역 주변 모습은 이처럼 가깝고도 먼 단절된 형태를 보이며 동네 분위기도 상반됐다. 상암동은 활기가 넘쳤다. KBS·MBC·SBS·YTN·JTBC·CJ E&M 등 방송국과 각종 정보기술(IT)·벤처기업 등의 빌딩이 가득하고 상권이 발달한 서울 서부권의 대표 업무지구로 매일 이곳을 드나드는 인구도 수만명에 달한다.
완공 10여년 된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초호화 주상복합아파트·오피스텔, 상암동 전체 크기만한 하늘공원과 노을공원, 평화의 공원에 한강 조망까지 갖춰져 상암동은 이른바 살고 싶은 동네로 통한다.

◆이주 준비 돌입… 이제는 우리 차례  


DMC역 5번 출구로 나와 도보로 3분여 걸어 뒷골목으로 향하니 오래된 주택이 곳곳에 즐비한 ‘수색증산재정비촉진지구’ 내 ‘수색9구역’이  나왔다. 

이 일대는 올 들어 모두 관리처분인가를 받았다. 그중에서도 재개발 시공사가 결정된 곳은 수색9구역(SK건설)과 바로 옆 증산2구역(GS건설) 등이다. 지하철 6호선, 공항철도, 경의중앙선이 지나는 DMC역과 붙은 트리플 역세권인 만큼 서울 중심지 접근성이 좋아 앞으로 시세 상승 여력도 충분하다는 평가다.

수색동 재개발 이주를 알리는 현수막. /사진=김창성
수색동 재개발 이주를 알리는 현수막. /사진=김창성

지역 곳곳에 재개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미 이사를 간 빈집도 많았다. 대문에는 출입금지를 알리는 스티커가 붙었고 담 너머에는 어지럽게 널린 빈집의 흔적이 보였다. 동네 안쪽은 아직도 거주민이 많았지만 DMC역과 가까운 동네 입구의 작은 언덕배기 골목은 빈집이 널렸고 몇몇 빈 가게에는 이전을 알리는 작은 현수막이 붙었다. 전체적으로 동네는 차분한 분위기 속 쓸쓸함이 감돌았다.


언덕을 내려와 옆 동네로 걷다 보니 다음달부터 3개월간 진행될 이주공고를 알리는 현수막이 보였다. 조금 더 가니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오래된 다세대주택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외관은 세월의 흔적이 엿보였다. 밖으로 노출된 도시가스관은 각종 이물질이 껴 부식된 것 같았다. 인근의 오래된 저층 빌라는 외벽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철골구조물은 심하게 녹슬었다. 심지어 관할 은평구청으로부터 재난위험시설 D등급을 받은 빌라도 있었다.    
◆휑한 동네, 상실감 너머 기대감

대로변으로 나와 수색역 방향으로 걸어 또 다른 재개발 지역인 수색4구역으로 향했다. 걷는 동안 재개발 관련 매물이나 토지매매를 알리는 광고로 도배된 공인중개업소가 자주 보였다. 낮 시간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재래시장도 눈에 띄었다. 사람 한명 지나가기도 벅찬 좁은 인도 옆으로 점포를 정리한다는 안내 문구를 붙인 가게도 더러 있었다. 근처에는 낡은 여관과 술집, 미용실 등이 들어선 좁은 골목길도 자리했다.

골목을 조금만 지나면 이미 철거에 들어가 가림막으로 둘러싸인 재개발 현장이 나오고 주변에는 관련 매물을 표시한 공인중개업소의 광고물이 눈에 띄었다. 철거현장을 지나면 이미 건물 철거가 완료돼 터파기 공사가 한창인 축구장 서너개 크기의 넓은 공터가 나온다. 곳곳이 찢어져 바람에 나부끼는 가림막 사이로 공사 관계자 몇명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빈 집 대문에 출입금지 스티커가 붙었다. /사진=김창성 기자
빈 집 대문에 출입금지 스티커가 붙었다. /사진=김창성 기자

앞서 방문한 ‘수색9구역’에서는 건너편의 입주 2년 된 DMC자이가 눈에 들어왔다면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철길 건너의 MBC와 고층 빌딩, 공사 중인 오피스텔 건물 등이다. 건물 철거가 완료된 곳에서 바라보는 건너편 상암동 풍경은 마치 딴 세상인 것처럼 화려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이 주변에서 재건축 시공사가 결정된 곳은 수색4구역(롯데건설)·수색6구역(GS건설)·수색7구역(GS건설) 등이다. 이 중 롯데건설은 수색4구역에서 1192가구(일반분양 495가구) 규모의 ‘롯데캐슬’ 아파트를 상반기 중 공급해 첫 분양 일정에 들어간다. 일반 분양가는 평당 1700만~1800만원선으로 전망되며 서울 중심지 접근성이 좋은 만큼 1억원 이상의 웃돈 거래까지 점쳐지는 분위기다.


이곳에서 30년째 거주중인 주민 B씨는 “철거과정에서 일부 마찰도 있었고 모든 사람이 기분 좋게 떠난 게 아니라 착잡한 마음이 든다”며 “동네에 오래 산 만큼 애착도 강해 상암동을 보며 그동안 상실감이 컸지만 바뀔 동네를 생각하니 뿌듯한 마음도 크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