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가네굴비. /사진=부산경찰청 @머니S MNB, 식품 유통 · 프랜차이즈 외식 & 유망 창업아이템의 모든 것
구가네굴비. /사진=부산경찰청 @머니S MNB, 식품 유통 · 프랜차이즈 외식 & 유망 창업아이템의 모든 것
4대째 전통 굴비 가업을 이어온 곳으로 알려진 용우상사가 중국산 조기를 섞은 굴비 상품을 100% 국내산으로 둔갑, 홈쇼핑·대형마트·백화점·오픈마켓 등을 통해 판매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해당 굴비가 상당량 거래된 것으로 관측된다.
홈쇼핑·대형마트·백화점·오픈마켓 등 유통업체는 납품업체에서 마음먹고 속이면 사실상 판별할 방법이 없어 감쪽같이 속아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국내산 굴비와 중국산 굴비를 구별하기가 힘들고, 수협 수산물수매확인서 위조 여부조차도 단번에 알아내기가 어렵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런 취약점을 노려 폭리를 취하는 유통업자가 날로 늘어나는 이유다. 업계 일각에서는 농·수산물 원산지 인증체계와 규정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중국산과 섞어 홈쇼핑서 124억어치 판매

부산경찰청 해양범죄수사대는 지난 14일 중국산 조기를 국내산 ‘영광굴비’로 둔갑시켜 판매한 용우상사 구모 대표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과 농수산물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용우상사 ‘구가네 굴비’는 영광 여행코스 특산물로 인기몰이를 한 히트상품이다. 2010년 GS홈쇼핑 전체 인기 품목 중 8위에 오르고 지난해에는 명절선물 만족도 조사에서 식품·건강 분야에서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매출을 올렸다. GS홈쇼핑 외에 롯데홈쇼핑,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신세계백화점, G마켓, 11번가 등에서도 판매됐다.


경찰에 따르면 구 대표는 지난 2014년부터 2016년 초까지 2년에 걸쳐 GS홈쇼핑 등에 ‘짝퉁 굴비’를 유통시켰다. 자신이 운영하는 전라남도 영광군 소재의 수산물 가공공장에서 국내산과 중국산 조기를 6대4 비율로 섞은 뒤 100% 국내산이라고 속인 것.

또 구 대표는 문제의 굴비를 홈쇼핑 등에 납품할 때 허위로 작성한 수협 수산물수매 확인서를 제출했다.

용우상사 측에서 소개한 굴비 가공방법도 허위로 드러났다. 업체는 국내산 참조기를 사용하고 1년 이상 묵은 천일염으로 간을 한 뒤 해풍에 건조시켰다고 홍보해왔지만 경찰이 전남 공장을 현장 수색한 결과 자연건조 방식이 아닌 냉풍기로 인공 건조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구가네굴비 측에서 소개한 굴비 가공방법. /사진=구가네굴비 공식 블로그
구가네굴비 측에서 소개한 굴비 가공방법. /사진=구가네굴비 공식 블로그

이 같은 방법으로 구 대표가 2014년부터 2년 동안 챙긴 부당 매출은 124억원, 부당이익은 23억원, 해당 굴비를 사들인 소비자는 16만명에 이른다는 게 경찰의 추산이다.
현재 구 대표는 검찰에 송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용우상사는 폐업한 상태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경찰 조사가 시작되자 지난해 말 폐업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구 대표 지인이 해당 업체를 인수, 운영하고 있었다.

◆굴비 원산지세탁 ‘천태만상’

문제는 구가네 굴비뿐 아니라 중국산 조기들이 국내산으로 원산지를 바꾼 채 시중에 유통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이 같은 현상은 조기의 중국산과 국내산의 구별이 쉽지 않고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물량확보가 어려운 때문으로 분석된다. 구 대표 역시 2014년 이전까지만 해도 100% 국산 조기를 공급했지만 2014년부터 국내산 조기 수급에 어려움을 겪어 중국산을 혼합, 판매한 것으로 보인다. 

조기 어획량이 적다보니 중국산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게 업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크기에 따라 값이 천차만별인 조기 특성상 국내산만으로는 다양한 주문량을 소화할 수 없는 데다 중국업자들이 영세업체들에 현금거래 대신 외상으로 중국산 조기를 공급해서다. 

실제 법성포에서 팔려나가는 굴비의 10%가량이 중국에서 들여 온 조기로 추정된다. 이번 사태도 용우상사 측과 중국업자 사이에 갈등이 없었다면 조용히 넘어갔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특히 조기는 동일한 해상에서 어로행위가 이뤄져 전문가들조차 국산 조기와 중국산 조기를 구별하는데 애먹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자들 사이에서 “우리 배가 잡으면 국내산, 중국 배가 잡으면 중국산”이라고 할 정도다.

익명을 요구한 수산물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조기는 영광 앞바다가 아니라 서해 공해상이나 남중국해에서 잡히는 만큼 중국산과 국내산을 나누는 건 무의미해진 지 오래”라며 “결국 관건은 법성포가 갖춘 천혜의 환경 조건에서 천일염으로 염장하고 말리는 기술인데 이 과정을 건너뛰더라도 이를 판매업체나 인증서를 찍어주는 수협에서 정확하게 가려내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귀띔했다.

수협 수산물수매 확인서도 현실적으로는 중국산 여부를 가려내는데 별다른 효력이 없다는 시각이 대다수다. 물론 대부분의 중간유통업체들이 검수과정에서 인증서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실제 인증서를 발행한 것이 맞는지 수협에 재확인을 요구하더라도 수협 측에서조차 명확한 판별이 어렵다는 것.

수협중앙회 관계자는 “각 지역 조합에서 수많은 물량에 대한 인증서를 내주고 있다”며 “납품업자가 국산 물량으로 수협 수산물수배 확인서를 받은 뒤 향후 중국산을 섞어 판매하는 경우도 있어 이 모든 과정을 알 수가 없고, 확인서가 법적 효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어려움도 한몫한다. 중국산 조기를 국내산과 혼합해 작업하는 지능적인 방법이 동원되면서 제보 없이는 단속이 쉽지 않다는 게 경찰 측의 설명이다.

이처럼 원산지 속임수가 점차 지능화, 다양화되는 가운데 원론적으로 불법유통을 근절할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원산지를 속여 판 사례는 백수오 원료, 옥돔 등 과거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현재도 어디선가 진행 중”이라며 “원산지 허위표시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실형을 산 경우가 거의 없는데 그만큼 업자에 대한 처벌이 여전히 약하고 농·수산물 원산지 인증체계 역시 허술하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