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타이어 인수전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우선매수청구권의 ‘제3자 양도금지 조항’ 해석문제로 채권단과 갈등을 빚고 있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금호그룹) 회장이 우선매수권 행사를 포기했지만 인수전은 더욱 복잡한 수 싸움으로 돌입하는 모양새다.
◆ 우선매수권 행사안한다는 박삼구 회장
박삼구 회장은 채권단 대표격인 산업은행이 주장한 우선매수권 행사시한 마감을 하루 앞둔 지난 18일 “우선매수권 행사를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앞서 전날까지 우선매수권자의 컨소시엄 구성을 통한 인수 허용여부를 확정해달라고 산은에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같은 의사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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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사진=뉴스1 황희규 기자 |
박 회장 측은 그간 우선협상대상자인 더블스타가 컨소시엄으로 인수에 나서기 때문에 우선매수청구권자에게도 전략적투자자(SI)와의 컨소시엄을 허용해줘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채권단은 “자금조달 계획서를 가지고 오면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금호그룹은 “산은이 우선협상대상자인 더블스타에게는 컨소시엄을 허용하고, 우선매수권자인 금호아시아나에게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최종 통지해 왔다”며 “부당하고 불공정한 매각절차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고 우선매수권도 행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회장의 우선매수권 사용 포기가 금호타이어 인수를 포기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금호그룹 측은 입장자료를 통해 “부당하고 불공정한 금호타이어 매각 절차를 즉시 중단하고, 금호타이어 매각을 공정하게 재입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매각을 무산시키고 차후 기회를 노리는 전략을 취한 것으로 여겨진다. 채권단과 더블스타가 6개월 안에 매각 절차를 마치지 못하면 더블스타 우선협상권은 소멸되고 박 회장은 다시 원점에서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진다.
다만 금호그룹 측은 매각 무산을 위해 가장 직접적인 방법인 매각무효 가처분 신청 등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금호그룹 측은 “금융권을 상대로 한 소송은 이번에는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산은이 아시아나항공·금호산업 등의 주채권은행이라 직접적인 소송이 부담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금호그룹 측은 “부당하고 불공정한 매각이 진행돼 금호타이어의 기업가치와 성장이 저해되는 경우에는 법적인 소송을 포함하여 모든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더블스타의 금호타이어 인수가 엄연히 시장논리와 원칙에 의해 결정된 만큼 무를 수 없다고 말한다. 산은 관계자는 “더블스타는 정상적인 입찰과정을 거쳤고 채권단과 우리나라 경제에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시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며 “박 회장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참여했더라면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었는데 부당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어 “매각 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법적으로 따지면 될 일”이라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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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타이어 중앙연구소. /사진제공=금호타이어 |
◆ 무게 실리는 ‘매각무산’
금호그룹 측이 채권단에 직접적인 소송을 제기하기는 어렵지만 매각을 지연시킬 방도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금호그룹이 가진 카드 중 하나는 ‘상표권’이다. 현재 ‘금호’라는 이름에 대한 상표권은 박 회장이 지배하는 금호산업이 가지고 있다. 계열분리된 금호석유화학과 상표권을 놓고 조정 중이긴 하지만 금호산업의 동의가 없이는 회사명에 금호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 금호타이어는 브랜드 사용료로 연간 매출의 0.2%를 금호산업에 내고 있다.
문제는 더블스타와 채권단의 계약에 금호브랜드 상표권과 관련한 내용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계약내용에는 금호 상표권을 5년간 사용하고 15년동안 선택사용 등의 내용이 전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산은은 지난해 9월 금호산업이 이사회를 열어 5년간 상표권 사용을 허용키로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호그룹 측의 이야기는 다르다. 금호그룹 관계자는 “앞서 이사회의 결의 내용은 합리적 조건이 협의되는 것을 전제로 상표권 사용을 허용할 의사가 있다는 것”이라며 “산업은행으로부터 어떤 협의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무조건 허용해야 하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만약 상표권을 불허할 경우 금호타이어에서 발생하는 브랜드 수익을 포기하는 셈인데 배임 등의 소지가 있지 않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금호 상표권과 관련한 문제는 금호산업 이사회에서 금호그룹의 이미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브랜드 사용조항이 무산될 경우 더블스타가 인수를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채권단이 계약내용을 이행하지 못한 것이므로 위약금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더블스타 측은 “상표권과 관련해 어떤 것도 확정되지 않은 시점에서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계약 내용에 대한 사항은 채권단과 금호아시아나 측이 결정할 문제”라고 일축했다.
지역사회와 노조도 더블스타의 인수에 부정적이다. 중국기업에 매각하면 기술만 유출되고 버려지는 ‘제2의 쌍용차 사태’를 맞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우려다. 금호타이어가 중국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더블스타가 국내 설비를 지속적으로 운영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데다 더블스타와 채권단이 협의한 금호타이어 고용보장 기간이 2년에 불과한 것이 알려지며 노조 측의 반대 목소리는 더 커지는 상황이다.
지난 11일 상경집회를 벌인 노조 관계자는 “중장기적 고용보장에 대한 현실적 방안이 없는 중국업체나 과도한 인수부채로 재부실화의 우려를 받는 박삼구 회장이 인수하는 것 모두 동의할 수 없다”며 “금호타이어 전 구성원의 고용보장 내용이 명확히 담보되는 것이 아니라면 매각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