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되자마자 한낮의 기온이 28℃까지 오르는 등 여름 날씨를 방불케 한다. 그러고 보니 5월5일 어린이날은 절기상 입하(立夏)로 이미 여름의 문턱을 지났다. 새학년 맞이가 정신없이 지나가더니 벚꽃도 흐드러지게 피었다 한순간에 사라졌다. 봄철 황사 이슈는 사시사철 가리지 않는 미세먼지 때문에 존재감이 예전만 못하다. 겨울이 지나고 이제 봄기운이 찾아오나 싶었는데 어느새 여름이다.
◆ 옛날에는 어떻게 무더위를 견뎠을까
5월 초순부터 여름이 찾아오는 바람에 유독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은 벌써부터 숨이 턱턱 막힌다. 차 안, 집, 식당, 은행, 카페 등 실내에서는 에어컨의 냉기를 즐길 수 있지만 잠깐의 도보로 느도 느낄 뙤약볕과 한증막 같은 열기는 상상만 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어릴 땐 이렇게 더웠던 것 같지 않은데 지구 온난화와 이상고온 현상 때문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선풍기, 에어컨, 냉장고 등이 없어도 우리 조상들은 지혜롭게 여름을 났다. 시원한 계곡에 발을 담그고 사방이 탁 트인 정자에서 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혔다. 벼슬아치들은 임금이 하사한 석빙고의 얼음을 ‘별미’로 맛보며 특별한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대나무 돗자리, 죽부인, 부채, 삼베옷 등은 여름 필수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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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
여름 제철과일을 즐겨 먹고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며 삼복에는 삼계탕이나 개장국, 민어매운탕 등 보양식을 챙겼다. 재미있게도 복날에 냇가나 강가에서 목욕하면 몸이 야윈다는 속설이 있었는데 만약 초복에 목욕을 했다면 중복이나 말복에도 목욕을 해야 액땜이 돼 몸이 야위지 않는다고 한다.
◆ 여름, 다소 덥게…겨울, 적당히 춥게
하지만 현대인에게 에어컨이나 냉장고 없이 한여름을 보내라고 한다면 상상만 해도 지옥일 것이다. 벌써부터 한낮에는 실내에 에어컨이 가동되고 찬 음료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제 막 시작된 더위에도 시원한 곳, 차가운 것 등을 찾다 보니 콧물을 훌쩍거리고 기침을 콜록대는 경우도 있다. 여름에는 여름감기와 냉방병을, 겨울에는 난방병을 겪기도 한다.
한의학에서 여름은 다소 덥게, 겨울도 적당히 춥게 지내야 건강하다고 말한다. 일년 중 여름은 양기가 가장 왕성한 계절이다. 여름을 어느 정도 덥게 보내야 우리 몸에 적당한 양기가 쌓이면서 음양의 균형이 잘 맞춰져 면역력이 강해지고 음기가 강한 겨울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다고 봤다. 예컨대 겨울에 나타나는 감기, 천식, 비염, 장염 등은 우리 몸의 양기가 부족하고 찬 기운이 많아 생긴다. 다가올 겨울, 우리 몸의 음기 또는 찬 기운을 줄이려면 한여름의 양기를 ‘저축’해두는 것도 필요하다.
◆ 더위 즐기며 양기 쌓아두자
에어컨은 될 수 있는 한 나중에 켜자. 실내 온도는 24~25℃ 정도여도 살 만하다. 대신 더위가 느껴질 때는 선풍기를 가장 낮은 단계로 틀거나 부채로 해결하자. 이 정도 더위면 찬물로 세수만 해도 이길 수 있다. 창문을 열어 환기만 해도 실내 공기가 한결 시원해지지만 반드시 미세먼지농도를 확인한 후 환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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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
이마와 코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의 활동량은 필요하다. 더워지면 사람들은 운동이 아닌 이상 굳이 움직여서 땀을 내는 것을 싫어한다. 옷이 눅눅해지고 냄새가 나기도 하며 화장이 지워지면서 땀과 피지로 피부가 번들거리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적당히 땀을 내야 한다. 땀이 나면 피부에 몰린 열기가 식고 노폐물도 빠져나간다. 과도한 땀으로 진액(미네랄, 수분)이 소진되는 것은 조심해야 하지만 적당한 땀은 건강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찬 것만 먹고 마시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찬 음료나 빙과류, 찬 과일 등을 많이 먹으면 배탈, 설사 등으로 고생할 수 있다. 여름에는 우리 몸 안의 열기가 피부 바깥쪽으로 몰리는 반면 속은 냉해진다. 속이 냉할 때 자꾸 찬 것을 먹으면 배탈과 설사가 반복되고 자칫 입맛을 잃거나 소화에 문제가 생겨 기력이 떨어질 수 있다.
따뜻한 것과 시원한 것을 적당히 번갈아 먹고 닭고기나 생선, 콩, 두부, 강황(카레) 등 기력을 보하면서 속을 따뜻하게 하는 식품을 섭취하자. 수박·참외 등 제철과일과 인삼, 맥문동, 오미자로 만든 생맥산차(生脈散茶)는 더위와 갈증을 풀어주는 데 효과적이다.
◆ 여름과 폭염이 두렵다면 보약으로 원기보충
적당히 더위를 즐기고 싶어도 유독 여름을 타는 사람이 있다. 여름 한복판으로 들어설수록 기력이 떨어지고 입맛이 없고 땀도 많이 흘린다. 더워서 에어컨을 가까이 하면 금세 냉기가 침입해 감기나 냉방병으로 골골 댄다. 어린 아이나 어르신 중에는 40℃에 가까운 폭염 때 맥없이 쓰러지기도 한다.
매년 여름나기가 두려울 정도로 더위를 탄다면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이럴 때 가장 효과적으로, 빨리 원기를 보충하는 방법 중 하나가 여름 보약을 챙기는 것이다. 가끔 "여름에 보약을 먹으면 땀으로 약 성분이 다 빠져나가지 않나요"라고 질문하는 경우가 있는데 땀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우리 몸 안의 미네랄·수분과 같은 진액이지 약효가 아니다. 여름 보약은 지난 계절의 병치레로 허약해진 기력을 보충하고 원기를 북돋운다.
또 과도한 땀으로 우리 몸의 진액이 소모되지 않도록 하고 몸 안에 열기가 과하게 쌓이지 않도록 해야 더위를 이길 수 있다. 폭염이 두렵다고 자연의 기운을 거스르며 무조건 더위를 피하기보다 더위를 이겨낼 수 있도록 허약한 몸을 보하자. 자연의 기운에 따르는 것이 몸 안에 양기를 쌓고 겨울을 건강하게 보내는 방법이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