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가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하면서 은행권에도 정규직 전환 바람이 분다. 최근 은행은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업무범위나 복지, 급여혜택이 적은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은행 취업자들은 쾌재를 부른다. ‘취업의 꽃’으로 불리는 은행에 정규직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 그야말로 희소식이다.
하지만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큰 것이 사실. 그동안 새 정부 정책에 화답했던 은행의 행보가 지속성이 떨어졌다. MB정부 시절 시중은행은 녹색성장금융상품을 판매했고 박근혜정부가 주도한 통일금융상품과 청년희망펀드는 은행장이 직접 나서 가입을 독려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후 상품가입이 시들해졌고 운용 자체가 유명무실해졌다.
특히 청년 실업문제 해소를 위해 조성된 청년희망펀드는 관치펀드로 전락했다. 이 펀드에 모인 돈은 권력자의 욕심을 채우는 데 활용된 것으로 드러나 펀드를 모금한 은행에도 비난이 쏟아졌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일자리정책은 일반 금융상품과 비교하기 힘들다. 은행원 인생이 걸린 중대한 이슈다. 오랫동안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일자리 제공이 핵심인 만큼 지속 가능성을 따져봐야 한다.
먼저 은행 곳간부터 들여다보자. 은행이 수익침체로 인력과 점포를 줄이는 상황에도 불어난 인건비를 충당할 수 있을지 살펴봐야 한다.
디지털이 잠식한 금융시장에 희망퇴직과 정규직 전환을 같이 추진하는 일은 사실상 모순이다. 은행이 정규직 전환으로 늘어난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면 또다시 고비용 인력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이 일어날 수 있다.
기존 정규직과 임금을 조정하는 작업도 고려할 부분이다. 앞서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시중은행 역시 직원간 임금체계가 달라 같은 직급이라도 월급 격차가 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직원간 보이지 않는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다.
2007년 우리은행이 1년간 정규직 임금 동결에 합의한 후 마련된 재원으로 사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했듯 구성원 전체의 고통분담 의지도 중요하다. 그래야 경영진의 새로운 인사정책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정부의 현실적인 일자리정책도 요구된다. 저금리 기조로 수익 악화를 겪는 은행이 무리하게 정규직 전환을 추진할 경우 무늬만 정규직을 낳을 뿐 근본적인 취업난을 해소하지 못할 수 있다. 이는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무기계약직을 또 다시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다.
새 정부가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외치는 만큼 제대로 된 정책을 무기로 해묵은 논쟁에 확실한 마침표를 찍을 때다. 제대로 하든지, 시장에 맡기든지.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