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 상표권 사용조건을 놓고 벌어지는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채권단 간사인 KDB산업은행의 지루한 핑퐁게임은 언제 누구의 승리로 끝날까. 일각에선 상표권 이슈가 해결되면 금호타이어 매각 과정이 빠르게 종결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매각 완료를 위해선 ‘본 게임’이 남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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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 박준배 기자 |
◆ 상표권 핑퐁게임, 금호산업의 '한수'
인수권자인 더블스타는 회사를 인수하더라도 당분간 금호타이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길 원한다. 하지만 금호라는 이름은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그룹이 상표권을 가지고 있어 더블스타 마음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
상표권 사용 여부는 기업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종종 문제가 된다. 때문에 산은은 본격적인 매각을 준비하던 지난해 9월 금호산업에 상표권 사용 허여 의사를 물었다. 이에 대해 금호산업은 “사용료의 액수 및 조정 기준, 기타 주요 조건에 대해 합리적인 수준의 합의를 전제로 5년 동안 사용권을 허여할 의사가 있다”고 대답했다.
상표권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채권단은 거래과정에서 실수를 범했다. 금호산업과 별도의 합의 없이 매각 선행조건으로 상표권 사용 조건을 넣은 것. 채권단은 더블스타가 0.2%의 요율로 20년간 상표권을 사용하도록 허용하고 의무사용기간 5년 이후에는 더블스타가 원할 경우 언제든 해지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졌지만 자금을 마련할 방도가 없어 인수를 일단 포기해야 했던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은 상표권 카드를 절묘하게 사용했다. 채권단은 “박 회장이 상표권을 가지고 고의적으로 매각을 방해한다”고 주장하지만 금호산업의 요구가 회사의 이익을 위한 당연한 권리인 만큼 이를 매각방해로 단정할 명분은 없다.
당초 0.5%의 사용료율에 20년의 의무사용기간을 제시한 금호산업에 산은은 0.5%의 요율로 12년6개월간 비용을 보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금호산업은 이 조건을 일부 수용하기로 했다. 요율과 사용기간은 그대로 하되 비용보전이 아니라 ‘원칙대로’ 매년 상표권을 지급받겠다는 게 금호산업의 최종 입장이다.
재계에선 이 조건을 금호산업이 낼 수 있는 최선의 수라고 본다. 채권단이 경영권과 우선매수권 박탈 등을 운운하는 상황에서 마냥 거절의 입장을 보일 수는 없어 마지노선으로 내놓은 비책이란 것. 산은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산은의 약점을 파고든 것이다. 채권단은 더블스타와의 계약내용을 다시 검토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했다.
더블스타가 매각 선결조건을 유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을 내비치고 있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채권단이 손해를 감수하면서 상표권 차액을 보전할 경우 더블스타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재계 관계자는 “채권단이 더블스타에 제시할 수 있는 방안은 인수금액 조정뿐”이라며 “다만 그 폭이 클 경우 국내의 비판여론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본게임은 ‘고용보장 협약’
상표권 문제가 해결될 경우 금호타이어 매각이 순조롭게 이뤄질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진짜 중요한 게임은 이제 시작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의 매각 진행상황은 박 회장과 채권단의 갈등에 집중돼 본질이 희석되는 측면이 있다”며 “상표권 문제가 걷히고 나면 더블스타와 산은, 노조간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쟁점은 고용 안정성 유지 여부다. 쌍용차사태를 겪은 우리나라는 성급한 매각이 불러올 참사를 목도한 바 있다. 아직 더블스타와 채권단은 고용유지 및 이른바 먹튀방지 등에 대해 큰 틀에서만 합의했을 뿐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조정이 필요하다.
허용대 금속노동조합 금호타이어지회장은 “그간 고용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박삼구 회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왜곡되는 경향이 있어 공식적인 언급은 자제했다”며 “상표권 문제가 마무리되면 더블스타가 구성원의 고용을 보장할 수 있는 회사인지, 채권단이 먹튀방지장치 등을 제대로 마련했는지 본격적으로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금호타이어 노조의 공식 입장은 ‘고용보장 확인 없는 매각 반대, 부실경영자 박삼구 회장 인수 반대’다. 얼핏 양비론으로 보이지만 고용보장을 확답할 수 있다면 더블스타의 인수를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상표권 문제가 정리되면 고용보장·국내설비투자·먹튀방지장치에 대한 3자 협상을 진행하자고 산은에 요청한 상태다.
노조 관계자는 “금호타이어 매각은 일자리, 지역경제, 국익의 관점에서 충분한 정보공개와 협의를 통해 합리적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매각주체인 산은은 국책은행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우려와 걱정을 해소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 역시 이 사안에 관심이 큰 것으로 여겨진다. 노조는 지난 18일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과 면담을 가졌고 충분히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어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은 여야 4당대표와의 오찬회동에서 “금호문제는 ‘고용이 완전히 보장돼야 한다’는 내용으로 인수계약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고용 완전보장’이라는 방침을 밝힌 만큼 협상과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재계 한 관계자는 “중국과 한국의 노사문화가 크게 다르다보니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릴 가능성이 높다”며 “쌍용차를 상하이차에 매각할 때도 고용보장을 약속했지만 먹튀를 막지 못한 만큼 이번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용안정과 일자리는 문재인정부의 존재가치이므로 만약 쌍용차사태가 재현된다면 정권의 입지가 흔들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498호(2017년 7월26일~8월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