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대장주 셀트리온의 소액주주들이 코스피 이전상장을 제안했다. 코스피시장으로 옮기면 셀트리온의 기업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다고 기대해서다. 앞서 카카오도 같은 이유로 코스피로 넘어갔다.
당초 코스닥시장은 미국의 나스닥을 표방하며 IT(정보통신), 바이오 등 신기술기업이 성장할 기반을 마련해주기 위해 설립됐다. 하지만 나스닥은 애플, 알파벳,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기업이 포진해 정체성이 확립된 반면 코스닥시장은 코스피로 진출하는 교두보라는 인식이 짙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원인을 코스닥의 신뢰성에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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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트리온헬스케어의 코스닥시장 신규상장기념식. /사진제공=한국거래소 |
◆잇단 ‘코스닥 엑소더스’… 기업가치 제고 기대
지난 8일 셀트리온은 코스피시장으로 이전하는 안건을 다루는 임시주주총회 소집요청에 대한 주주들의 동의서를 수령했다. 앞서 셀트리온 소액주주들은 한 온라인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지난 4일부터 셀트리온 소액주주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셀트리온 코스피 이전상장을 위한 임시주총 소집운동’을 벌였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셀트리온 소액주주들은 당초 목표했던 1만명의 동의를 받는 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셀트리온은 임시주총 소집청구와 관련된 상법 등 규정 충족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상법에 따르면 지분 3% 이상의 주주가 모이면 임시주총 소집을 청구할 수 있다. 지난 1분기 말 기준으로 셀트리온은 약 10만명의 소액주주가 전체 66.02%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단순 계산으로 1만명의 주주가 모이면 6% 이상의 지분에 따른 권리행사가 가능한 셈이다.
셀트리온 소액주주들이 코스피 이전을 요구하는 주된 이유는 악성 공매도 세력을 줄이고 셀트리온의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다. 셀트리온은 2012년 서정진 회장이 직접 ‘공매도와의 전쟁’을 선포할 만큼 공매도에 민감하다. 주주들은 셀트리온이 코스피시장으로 넘어가면 상대적으로 기관과 외국인투자자의 수급이 활발해져 공매도로 인한 주가하락을 방어할 것으로 기대한다.
셀트리온의 코스피 이전상장 요구에 불을 붙인 것은 카카오의 코스피 이전이다. 코스닥 시총 2위였던 카카오는 지난달 10일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이전상장했고 이어 지난달 28일 코스피200지수에 특례편입됐다. 코스피200지수 특례편입은 신규상장 후 15거래일간 평균 시총이 코스피 50위 이내인 경우 가능하다. 이후 카카오는 코스피200 편입과 카카오뱅크 흥행 돌풍의 겹호재에 힘입어 한때 코스닥시장 3개월 평균주가보다 20% 오르는 강세를 보였다.
카카오 이전에도 코스닥시장에서 코스피시장으로 옮긴 사례는 많다. 2008년 네이버가 대표적이다. 네이버는 코스피로 이전하기 전까지 3년간 코스닥시장에서 시총 1위 자리를 고수했다. 이후 코스피시장에 가서도 승승장구를 거듭해 당시 18만원대였던 주가가 지난 10일 기준 4배 이상 올랐다. 코스피 시총 순위도 7위를 기록 중이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가 2.4배 뛴 것에 비하면 큰 폭의 상승세다.
네이버 이후에도 신세계푸드, 무학, 에이블씨엔씨, 하나투어, 한국토지신탁, 동서 등이 코스닥시장에서 코스피시장으로 이전상장했다. 이 중 지난해 옮긴 동서와 한국토지신탁을 제외한 에이블씨엔씨(200%), 무학(136%), 하나투어(63%) 등은 이전상장 1년 후 주가가 모두 크게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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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전문은행으로 선정된 카카오뱅크와 K뱅크 컨소시엄에 참여한 주주들의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 /사진=뉴시스 DB |
◆코스닥 이탈 막으려면… 적절한 규제 필요
코스닥에서 성장한 기업이 코스피로 옮겨가는 이유는 우선 안정적인 투자자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코스피는 단기매매 위주의 개인투자자보다 장기투자하는 기관·외국인의 비중이 높아 상대적으로 주가 변동성이 낮다. 주가가 안정되면 기업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고 자금조달이 용이해진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코스피시장에서 외국인투자자가 보유한 주식은 572조4000억원으로 전체 시가총액의 37%를 차지했다. 반면 코스닥시장에서는 전체 시총의 11.2%만을 보유했다. 코스닥시장의 시총 70% 이상은 개인투자자의 자금으로 이뤄졌다.
시가총액이 큰 기업의 경우 코스피200지수에 편입돼 패시브펀드 자금 유입도 기대할 수 있다. IBK투자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코스피200지수에 포함된 카카오의 경우 600억원에 가까운 패시브펀드 자금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이 코스피를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는 기업 이미지 제고다. 해외로 진출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코스닥보다 코스피에 상장되는 편이 글로벌기업에 신뢰를 주기 쉽다. 상대적으로 공개된 정보가 많고 코스피 상장사가 더 우량하다는 인식이 있어서다. 외국인투자자들이 코스피시장을 선호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전문가들은 코스닥시장에서 나타나는 투기적 행위나 불공정거래 등이 코스닥의 이미지를 실추시킨다고 지적한다. 시장에 미공개정보이용, 시세조종, 부정거래 등이 많을수록 투자자들의 시장 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주식시장에서 적발된 불공정거래 혐의 건수 177건 중 107건(62.2%)이 코스닥시장에서 발생했다.
특히 불공정거래의 경우 기업의 주가변동률이 소속 업종 평균보다 19배 이상 차이를 보인 소형주에서 많이 나타난 것으로 조사됐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시가총액 1000억원 이하 종목 중 대주주 지분이 낮거나 유통주식수가 적은 종목은 불공정거래의 주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업의 코스닥시장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코스닥 상장사들의 불공정행위를 근절하는 규제가 선행돼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코스닥시장은 아직도 불공정행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인식이 남아있다”며 “이를 개선하고 시장의 신뢰성을 높이면 더 많은 투자자가 코스닥시장에 진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투자자가 몰린다면 기업 입장에서도 코스닥시장에 잔류할 수 있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시장 신뢰도 제고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1호(2017년 8월16~2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