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인 디자인과 SUV를 넘어선 성능… 옵션은 아쉬워

레인지로버 벨라(오른쪽)과 레인지로버 4종 라인업. /사진=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제공
레인지로버 벨라(오른쪽)과 레인지로버 4종 라인업. /사진=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제공

고급SUV의 대명사인 랜드로버. 이런 이미지를 이끈 것은 랜드로버의 플래그십 ‘레인지로버’였다. 랜드로버는 레인지로버의 성공에 하위차급인 레인지로버 스포츠를 출시했고 이후 컴팩트SUV ‘이보크’에도 레인지로버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레인지로버를 일련의 라인업으로 인식시키기에 레인지로버 스포츠와 레인지로버 이보크의 간극은 너무 컸다. 이번에 국내 출시되는 ‘레인지로버 벨라’는 이 간극을 채워주는 모델이다. 벨라라는 이름은 1970년 랜드로버가 첫 레인지로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들었던 프로토타입의 이름을 계승했다. ‘감추다’ 또는 ‘장막’이라는 뜻의 라틴어 ‘Velare’에 뿌리를 둔 이름이다.
지난 22일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가 개최한 레인지로버 벨라 미디어시승행사에 참여해 레인지로버의 새로운 라인업을 타봤다.

◆ ‘아름다운’ 레인지로버의 탄생

벨라를 처음 접한 것은 지난 4월 열린 서울모터쇼에서였다. 당시 공개된 유려한 디자인에 많은 사람이 콘셉트카로 착각할 정도였다. 약 5개월이 지나 다시 마주한 벨라는 전시장 조명이 아닌 자연광에서 더욱 뚜렷한 존재감을 나타냈다.


외관 디자인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매끈함이다. 차량 실루엣 어느 곳에서도 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매끈하다. 이와 더불어 기존 SUV가 역동성을 강조하기 위해 관습적으로 넣던 주름을 극도로 절제했다. 이른바 ‘리덕셔니즘’(reductionism)이다. 따라서 SUV의 역동성이 반감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찔하게 구성한 라인이 주는 느낌은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했다.

전면부는 레인지로버 특유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더욱 현대적인 느낌을 강조했다. 넓은 프론트그릴의 양쪽으로 LED 헤드램프가 배치됐는데 레인지로버만의 독특한 형상을 담은 헤드램프가 더욱 얇게 적용돼 날렵한 느낌이 강해졌다.

디자인의 압권은 측면이다. 랜드로버의 전통인 짧은 프론트오버행과 뒤로 밀린 캐빈공간은 SUV라기엔 낮은 자세를 취한 루프라인과 더해져 마치 달리는 차처럼 역동적이다. 리어오버행은 길지만 위로 한껏 치켜올려져 전혀 둔해보이지 않는다. 차체 표면에 숨겨진 플러쉬형 도어핸들을 보면 매끈함에 대한 강박이 느껴질 정도다. 후면 디자인 역시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지루하지 않다.


실내에 들어서면 탄성이 나온다. 스마트 키를 가지고 숨어있는 도어핸들을 만지면 문을 열 수 있도록 핸들이 스르르 밀려 나온다. 차체 표면에 얼음이 덮여있어도 깨고 나올 수 있다는 게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진=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제공
/사진=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제공

실내로 들어서면 새로운 터치프로듀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눈에 들어온다. 센터페시아에 10인치 터치스크린이 위아래로 두 개나 배치됐다. 지도까지 띄울 수 있는 계기판까지 고려하면 차내에 디스플레이가 세개나 있는 셈이다. 플래그십인 레인지로버나 레인지로버 스포츠보다 더 고급스럽다.
아래쪽에 위치한 터치스크린은 기존 레인지로버 모델에 존재하던 버튼을 대부분 대체한다. 공조기부터 운전모드 변경까지 버튼으로 작동하던 모든 기능이 구현된다. 양쪽에 위치한 두개의 다이얼이 유일한 아날로그 버튼이다. 실내 디자인은 랜드로버브랜드 특유의 안락함이 담겼다. 질 좋은 가죽소재가 시트와 대시보드를 비롯해 살이 닿는 곳 대부분에 적용됐다.

◆ SUV 넘어선 주행감각


레인지로버 벨라는 3가지 엔진으로 출시된다. 엔진 라인업은 D240(디젤 2.0 터보), D300(디젤 3.0 터보), P380(가솔린 3.0 터보) 등이 있는데 모두 8단 자동변속기와 조합된다. 시승한 차는 D240 모델 SE트림.

시승구간은 서울 한강잠원지구 주차장에서 인천 영종도를 왕복하는 130㎞로 구성됐다. 랜드로버답지않게 시승코스는 모두 온로드로 구성됐다. 레인지로버 라인업 중 가장 온로드 주행성능에 초점이 맞춰진 차라서 이같은 코스를 준비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시동을 걸자 부드러운 엔진음과 함께 시동이 걸린다. 진동은 거의 느낄 수 없다. 주차장을 나와 곧장 올림픽대로로 향했다. 저속구간에서 스티어링의 감은 한없이 가벼웠는데 속도를 조금만 내도 이내 묵직해진다.

터치스크린을 눌러 주행모드를 다이내믹모드로 변경했다. 가속페달을 밟으니 2.0ℓ 엔진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가속력을 낸다. 2.0ℓ 디젤엔진에 터보차저가 더해져 240마력의 힘을 내뿜는다. 일반 디젤엔진 기준으로는 3.0ℓ급 엔진에서나 나오는 수준의 마력이다. 1500rpm에서 51.0㎏‧m의 토크를 발휘한다. 벨라 라인업 중 가장 낮은 출력을 가진 모델이지만 어지간해선 출력이나 토크의 부족을 느낄 수 없다.

주행감각은 마치 재규어브랜드의 스포츠세단을 타는 듯 하다. 특히 가장 인상적인 것은 조향감각과 차체의 반응. 한적한 인천공항고속도로에서 차를 좌우로 흔들어보고 코너에 다소 높은 속도로 진입해 봤는데 SUV라기엔 너무나 날카롭게 반응한다. 급격한 코너에서도 차체 쏠림이 없다. 육중한 차체가 이렇게 날렵하게 움직이는 것은 경험해보지 못한 느낌이다.

/사진=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제공
/사진=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제공

벨라는 재규어브랜드가 내놓은 첫 SUV인 F페이스와 뼈대를 공유하는 모델이다. 이로 인해 재규어 차량이 가진 온로드 주행의 노하우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으로 여겨진다.
오프로드 코스가 없어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랜드로버브랜드답게 ‘등산용 장비’는 모두 갖췄다. 랜드로버의 수준 높은 AWD시스템으로 어떤 험로에서도 네바퀴로 동력을 확보할 수 있고 에어서스펜션을 통해 지상고를 동급 최고치로 높일 수 있다. 터치스크린의 버튼 한번만 누르면 된다. 650㎜ 깊이의 물도 건널 수 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시승해본 벨라는 오프로드와 온로드 어디서도 아쉬움을 느낄 수 없는 차다. 디자인 역시 만족감이 높다. 물리버튼이 빠지고 터치스크린으로 구성된 인터페이스는 자동차에 있는 시간을 훨씬 더 풍족하게 만들어 줄 것으로 여겨진다. 사용이 다소 어렵다는 지적이 있지만 익숙하지 않아서다.

하지만 ‘레인지로버’라는 이름을 달고 출시된 만큼 가격은 비싸다. 이정도의 가치를 누리려면 이정도 비용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무언의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가격에 비해 부족한 옵션구성은 다소 아쉽다. 탑승한 모델은 SE트림으로 1억원이 넘지만 통풍시트가 적용되지 않는다. D300에 있는 HSE트림을 선택해야만 통풍시트를 넣을 수 있다.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도 마찬가지. 운전자지원기술(ADAS)은 차간거리 조절이나 자동조향 등의 기능이 지원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