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명의로 임대아파트가 있으면 소득이 없어도 최대 1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합니다. 금리는 연 14~24%입니다.” (A저축은행)
“신용대출은 어렵지만 담보대출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 담보대출 상담원을 연결해 드릴까요?” (B저축은행)
기자가 직장이 없는 무직자로 가장해 저축은행 5곳에 전화했더니 두 군데의 상담직원이 안내한 내용이다. 기자가 직장을 잃어 소득이 전혀 없는 상태라고 소개했지만 대출상담직원은 다른 방법으로 대출신청이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다만 신용카드나 자동차 등을 담보로 대출이 가능한지 물었을 땐 “어렵다”고 짧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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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고승민 기자 |
◆저축은행 대출영업 또 ‘도마 위’
저축은행의 불공정 대출영업방식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소득이 없는 무직자에게도 대출을 권하고 있어서다. 국내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무직자들은 지난해 말 2만명을 넘어섰다. 금융감독원이 박찬대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최근 3년간 저축은행 무직자 대출현황’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 전체 저축은행의 무직자대출자는 2만736명으로 나타났다. 이 중 만 29세 미만 대출자가 전체의 54.3%(1만1262명)에 달했다. 소득이 없는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이 제2금융권에서 고금리대출을 받은 셈이다. 연체율도 높다. 20대 대출자의 연체율은 10.14%로 두자릿수를 기록했다.
대출금리는 거의 살인적인 수준이다. A저축은행은 임대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으면 최대 연 24%대의 금리를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대부업 평균대출금리보다 높은 수준이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대부업 평균대출금리는 연 23.5%였다.
물론 모든 저축은행이 무소득자에게 대출해준 것은 아니다. 기자가 통화한 저축은행 5곳 중 3곳의 저축은행 대출상담 직원은 소득증빙이 없으면 신용대출이 불가능하다고 안내했다. 하지만 일부 저축은행은 여전히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무직자에게도 고금리 장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내년부터 법정 최고금리가 인하되고 인터넷은행 출범 등으로 대출경쟁이 심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며 “다만 이런 영업방식은 소수 저축은행에만 해당된다. 대다수 저축은행은 소득이 없는 계층에겐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의 불공정 영업방식은 이뿐만이 아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 SBI·OK·웰컴저축은행 등 14개사에 경영유의 제제조치를 내렸다. 경영유의란 금융회사의 주의 또는 자율적 개선을 요구하는 경징계다. 금융당국이 경징계를 내린 이유는 이들 저축은행이 자기 입맛대로 대출금리를 책정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은 2014년 도입된 대출금리체계 모범규준에 따라 대출금리를 자금조달비용, 차주의 신용도 등을 평가해 합리적으로 대출금리를 산정해야 하고 금리산출이 적정한지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 은행은 고신용자에게도 연 20%대 수준으로 대출금리를 책정하는 등 합리적인 신용평가체계를 만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SBI저축은행은 하위 신용등급 차주에게는 무조건 법정 최고금리를 책정했으며 HK저축은행은 2년 누적 부도율을 1년 단위로 환산하지 않고 신용대출금리를 정해 부도율을 실제보다 더 높게 반영한 것으로 조사됐다. OK저축은행 역시 금리변동 등으로 대출원가가 수차례 바뀌었음에도 신용대출상품 출시 당시의 금리를 그대로 유지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제재를 받은 저축은행들이 합리적으로 고객에게 금리를 책정했는지 꾸준히 보고 있다”며 “또다시 적발될 경우 제재수위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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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 강화, 서민금융창구 넓혀야
저축은행의 부당한 대출영업 관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매년 국정감사 시즌만 되면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융당국의 제재수위가 약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의 견해다.
금리는 기본적으로 시장논리에 따라 금융회사가 자율적으로 책정한다. 자칫 금융당국이 금리결정에 과도하게 개입할 경우 관치금융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서다. 따라서 당국에 적발될 가능성이 적고 설사 제재를 받아도 경징계에 그치기 때문에 저축은행들은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이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대표는 “매년 지적을 받아도 영업관행이 바뀌지 않는 것은 개선 의지가 없다는 걸 의미한다”며 “당국이 불공정 영업을 하다 적발되면 영업정지 등으로 강하게 규제해야 관행이 바뀔 것”이라고 조언했다.
금융회사의 금리체계에 금융당국이 직접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일부 저축은행은 알게 모르게 담합해 금리를 조정한다”며 “불공정한 금리를 책정해 적발될 경우 영업정지 등 강도 높은 제재를 내리거나 당국이 직접 금리책정에 관여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넘치는 수요도 불공정한 대출영업방식이 멈추지 않는 이유로 꼽힌다. 최근 정부는 가계부채 대란을 막기 위해 제1금융권 대출 문턱을 높이는 상황이다. 이에 시중은행에서 내쫓긴 수요층이 제2금융권으로 대거 이동하는 상황이다. 이른바 풍선효과다.
조 대표는 “금리가 높아도 대출을 받겠다는 고객이 많다 보니 각종 편법영업이 난무하는 것”이라며 “이를 막기 위해선 정부 차원의 서민지원정책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0호(2017년 10월18~2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