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매대 변두리에 머물던 자체브랜드(PB)상품이 언젠가부터 매대 중앙을 차지했다.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에 들어서면 PB상품을 한데 모아놓은 매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조만간 PB상품이 마트 전반을 점령할 기세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대형마트 PB상품은 ‘싼 게 비지떡’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야말로 가격만 저렴한 ‘미투 상품’에 불과했던 것. 하지만 요즘 PB상품은 다르다. 깔끔한 포장에 품질은 기존 제조사브랜드(NB)상품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판을 키운 것은 이마트. 이마트가 ‘노브랜드’를 필두로 PB상품을 유통시장의 본궤도에 올려놓으면서 대형마트들이 PB브랜드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롯데마트가 균일가 PB브랜드 ‘온리 프라이스’(only price)로 이마트 노브랜드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과거 점포 확장에 열을 올렸던 대형마트들이 이번엔 경기 불황을 타고 PB브랜드로 한바탕 대결을 펼칠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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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마트 온리 프라이스 상품. /사진제공=롯데마트 |
◆균일가 앞세운 롯데마트 ‘온리 프라이스’
롯데마트가 이례적인 가격 실험에 돌입했다. 올 초 론칭한 자사 PB브랜드 ‘온리 프라이스’ 상품 가격을 고정하기로 한 것.
롯데마트는 지난달 26일 서울 영등포 롯데리테일아카데미에서 ‘온리 프라이스’ 브랜드 전략 설명회를 열고 현재 134개 품목의 제품가격을 최소 9개월간 고정한다고 밝혔다.
남창희 롯데마트 MD본부장은 “원자재값의 급등에도 가격변동성이 크지 않도록 상품을 설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현재 2000원에 판매하는 ‘온리 프라이스 국내산 21곡 크리스피롤미니’의 경우 곡물값이 급등하더라도 외부적 요인과 상관없이 최소 9개월간 고정가격으로 판매하는 식이다.
온리 프라이스의 핵심 콘셉트는 '균일가'다. 경쟁사들이 PB제품에 990원, 9900원 등 10원, 100원 단위로 '최저가'를 내세우는 반면 온리프라이스는 1000원, 2000원, 1만원 등 1000원 단위로 가격을 측정해 '최적가'에 초점을 뒀다는 게 롯데마트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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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본부장은 “소비자들이 ‘피자치즈가 만원인데 좋더라’라고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가격을 책정했다”면서 “패키지에 적힌 가격은 제품이 단종될 때까지 바꾸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990원 등 10원, 100원 단위로 눈속임을 하지 않으며 원재료 가격이 올라도 같은 가격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정책은 제품 디자인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제품 색상을 흰색으로 통일하고 모든 제품 패키지에 가격을 크게 새겨 넣어 균일가라는 점을 강조했다. 노브랜드가 노란색 바탕에 '노브랜드'라는 로고를 크게 삽입한 반면 온리 프라이스는 가격을 로고보다 크게 표기한 것.
롯데마트는 온리 프라이스 상품 개발을 위해 중소기업들과의 협업도 강화했다. 좋은 기술을 가졌지만 판로가 막힌 중소기업 등을 적극 발굴해 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달 기준 온리 프라이스 상품을 생산하는 60개 업체 가운데 77%인 46개 업체가 중소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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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오픈한 노브랜드 양평점. /사진=박효선 기자 |
◆보폭 넓히는 이마트… 홈플러스, 단독 상품으로 승부
이마트는 자사 PB브랜드 노브랜드의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마트는 롯데마트의 ‘온리 프라이스’ 설명회 전날인 지난달 25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 노브랜드 전문점을 오픈했다. 같은 날 서울 경동시장·동대문구와 '경동시장 노브랜드 상생 스토어' 개점을 위한 협약도 체결했다.
노브랜드는 2015년 이마트가 출시한 PB브랜드다. 포장이나 광고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는 대신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춰 주목을 받았다. 현재 생활용품, 가공식품, 전자제품까지 1000여종의 제품이 노브랜드라는 이름을 달고 판매된다.
이마트는 노브랜드 전문매장을 확장하며 브랜드 강화에 힘을 싣고 있다. 오프라인 노브랜드 전문점은 지난해 8월 첫선을 보인 이후 최근 30여곳까지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전통시장과의 상생에도 신경쓴다. 전통시장 내에 입점하면서 임대료 일부와 편의시설 등의 부담을 떠안는 방식으로 위축된 상권을 살리며 상생 프레임을 만들고 있다.
홈플러스는 독특한 행보를 보인다. 판로를 넓히는 이마트, 균일가에 집중하는 롯데마트와 달리 홈플러스는 자사브랜드를 앞세우기보다 기성 제조업체와 손잡고 단독상품을 출시하는 형태로 차별화에 나섰다. 중소 수제맥주업체 세븐브로이와 손잡고 강서맥주, 달서맥주 등 지역 맥주를 선보여 청와대 호프미팅 공식 만찬주로 선정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PB 경쟁에 등 터지는 식품·중소 제조업체
이처럼 대형마트 PB상품은 소비 정체와 각종 규제로 고전하는 업계에 성장동력을 불어넣는 선례를 제시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자기브랜드를 가질 수 있어 좋고 중소제조업체는 판로를 확보할 수 있어 윈-윈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장기적으로 PB상품이 대형유통기업의 배만 불려주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국내 식품업계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식품업체 한 관계자는 “대형 유통업체들의 하청업체로 전락하게 생겼다”며 “유통공룡들이 PB브랜드를 통해 떡볶이, 어묵, 두부 등 대기업 진출이 제한되는 업종마저 변칙적으로 시장에 내놓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중소제조업체들이 대형유통사들의 단순생산공장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소제조업체 한 관계자는 “우리 제품이 PB상품화되면서 매출이 증가해 좋다”면서도 “아무래도 가격 결정이나 마진율 등의 계약을 할 때 유통업체 측에 끌려다니는 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제품의 경우 PB상품화돼서 괜찮지만 주변 업체들은 대형마트 PB로 인해 입지가 좁아진 게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2호(2017년 11월1~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