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정책의 일환으로 대기업이 운영하는 공익재단 전수조사 카드를 꺼내들었다. 대기업이 소유한 공익재단이 설립취지와 다르게 운영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한 조치다. 공익을 위한 재단이라는 간판 이면에 오너일가의 지배력 강화 및 승계과정에서의 절세라는 진짜 목적이 숨어있다는 것. 과연 그럴까. <머니S>가 삼성·현대자동차그룹의 공익재단 운영실태를 살펴봤다.
◆삼성 공익재단, 오너일가 숨은 힘
국내 재계서열 1위 삼성그룹은 삼성생명공익재단·삼성문화재단·삼성복지재단·호암재단 등 4개의 공익재단을 운영한다. 이 중 호암재단을 제외한 나머지 3곳이 계열사 지분을 보유했다.
국세청과 삼성 등에 따르면 삼성생명공익재단은 1982년 5월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함으로써 체계적인 사회공익사업을 수행한다는 취지로 설립됐다. 주요사업은 삼성서울병원(의료서비스), 삼성노블카운티(노인복지), 삼성행복대상(여성·효), 삼성어린이집(영유아교육),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교육·문화)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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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서울 서초사옥. /사진=뉴시스 추상철 기자 |
지난해 말 기준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총자산은 2조1066억원이다. 기부금과 기타사업 수입을 합한 지난해 총수입은 1조4169억원이다. 이 중 고유목적사업비는 어린이집 운영지원 76억원, 상찬사업 7억원, 연구지원 40억원 등 총 124억원이다. 총수입의 0.87%만 본연의 역할에 맡게 사용한 셈이다.
반면 이 재단은 지난해 2월 삼성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 주식 200만주(1.05%)를 3063억원에 매입했다. 이미 보유 중인 삼성생명 2.18%(436만주), 에스코어 0.14%(3만6939주), 미라콤아이앤씨 0.14%(8804주) 주식을 더하면 자산총액에서 삼성계열사 주식이 차지하는 비율은 25.51%에 이른다.
삼성문화재단은 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 선대회장이 1965년 4월 나눔의 철학을 바탕으로 설립해 50여년간 다양한 문화예술사업을 전개했다. 주요사업은 미술관 운영(호암·리움), 문화예술지원, 장학사업이다.
삼성문화재단의 총자산은 7806억원이다. 기부금과 기타사업 수입을 더한 지난해 총수입은 797억원이며 이 중 고유목적사업비로 장학사업 86억원, 문화학술단체지원 9억원 등 총 95억원을 사용해 총수입의 11.9%를 목적에 맞게 사용했다.
삼성문화재단은 자산총액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율이 8.41%로 높지 않지만 핵심 계열사의 주식을 골고루 가졌다. 특히 삼성생명 주식 4.68%(936만주)를 보유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20.76%), 삼성물산(19.34%)에 이어 3대주주다. 또 삼성화재 3.06%(145만1241주), 삼성전자 0.02%(3만7615주), 삼성물산 0.60%(114만4086주), 삼성SDI 0.58%(40만723주), 삼성증권 0.25%(19만5992주) 주식도 갖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5년 5월부터 두 재단 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은 공익법인에서 출연한 계열사 지분에 대해 5%(성실공익법인 10%)까지 상속·증여세를 면제해준다. 사실상 이 부회장이 세금 한푼 내지 않고 두 재단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만큼 지배력을 강화한 셈이다.
이와 관련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경제개혁연대를 이끌던 시절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취임→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삼성물산 지분 매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공익법인이 그룹 내 지주사 격인 삼성물산 지분 확보를 통해 이 부회장의 승계를 지원한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삼성복지재단은 이건희 회장이 ‘함께 잘 사는 사회’라는 제2창업 이념 구현을 목표로 사재를 출연해 1989년 12월 설립됐다. 이후 저소득층 가정을 위한 보육사업(삼성어린이집), 보육프로그램 개발, 장학사업(삼성드림클래스) 등의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삼성복지재단의 총자산은 428억원, 지난해 총수입은 323억원이다. 이 중 고유목적사업비를 살펴보면 장학사업 192억원, 어린이집 운영지원 65억원, 사회복지시설 운영 및 학술연구 지원 4억원 등 총 261억원을 지출해 목적사업비 지출 비중이 80.8%다.
이를 감안하면 삼성이 소유한 공익재단 중 유일하게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재단으로 분류된다. 다만 삼성화재(17만517주·0.35%), 삼성SDI(17만100주·0.24%), 삼성물산(8만946주·0.04%), 삼성전자(8만9683주·0.06%) 등 핵심계열사의 주식을 적지 않게 보유한 점은 개선이 필요한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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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현대차 본사. /=뉴시스 김진아 기자 |
◆현대차, 글로비스 4대주주 주목
재계 2위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차정몽구재단을 통해 공익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재단은 정몽구 회장이 2007년 11월 인류와 사회의 이익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해 미래인재 양성, 소외계층 지원, 문화예술 진흥 등의 활동을 한다.
현대차정몽구재단의 총자산은 8274억원, 지난해 총수입은 227억원이다. 이 중 고유목적사업비 지출은 저소득층교육지원사업 70억원, 공공의료지원사업 39억원, 문화예술지원사업 23억원, 기타사업 55억원 등 총 188억원으로 총수입 대비 82.8%를 본래의 역할에 맞게 사용했다.
이 재단은 외형상 공익재단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지만 삼성복지재단과 마찬가지로 핵심 계열사 지분을 다수 보유한 상태다. 현대글로비스 4.45%(167만1018주), 이노션 9.00%(180만주) 지분을 보유해 자산총액에서 현대차계열사 주식이 차지하는 비율이 43.62%다.
특히 현대글로비스 지분의 경우 정의선 부회장(23.29%), 정몽구 회장(6.71%), 현대차(4.88%)에 이어 4대주주다. 현대글로비스는 정 부회장으로의 승계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할 계열사로 꼽히는데 현대차정몽구재단이 보유한 지분도 그의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 관계자는 “고유목적사업 이행을 위한 준비금 마련이 필요한 공익법인의 회계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목적사업비 지출이 50%도 안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50%가 넘는 재단도 자산을 오너일가의 지배력을 높이는 데 이용한다면 정부가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5호(2017년 11월22~2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