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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흥순 기자 @머니S MNB, 식품 외식 유통 · 프랜차이즈 가맹 & 유망 창업 아이템의 모든 것 |
[베지노믹스가 뜬다-하] 하루 만에 끝난 '채식 도전기'
기자에게 육류는 빼놓을 수 없는 음식 중 하나다. 적당히 부드러우면서 탄력 있는 육질과 한입 베어 물면 터져 나오는 육즙은 분명 ‘삶의 즐거움’이다. 삼시세끼 고기반찬을 먹기 위해 일을 하며 첫 월급의 절반을 육식으로 지출했다. 간혹 TV에 등장하는 채식 프로그램을 볼 때면 ‘먹고 싶은 것을 못 먹으면 건강에 더 좋지 않다’며 혀를 찬다. 한때 2주간 매일 프라이드치킨을 먹을 정도로 고기를 좋아하는 소위 ‘고기성애자’다.
그런 기자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채식을 자처했다. ‘채식을 하겠다’고 주변에 알리니 ‘다른 사람은 다 해도 너는 못한다’는 비웃음이 돌아왔다. 가까운 지인 중 한명은 “(그럴리 없지만) 채식주의자가 되더라도 고기 먹는 것을 지적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다. ‘채식이 뭐가 그리 어렵다고’. 오기가 생겼다. 그렇게 지난 1월 말 완전한 채식 단계인 ‘비건’(유제품, 난류, 어류, 조류 섭취 불허용)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을 찾았다.
기자가 방문한 비건 식당은 서울 이태원에 있는 곳으로 채식을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하다. 당초 계획했던 비건 식당이 방문 하루 전 문을 닫는 바람에 급히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인터넷으로 찾아본 두번째 식당 평가는 칭찬으로 가득했다. 기대감을 가지기 충분했다. 생애 첫 비건 식당 방문이었지만 두려움보다 기대감이 앞섰다. 콩고기에 대한 상상을 하며 식당 문을 연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비싸고 낯선 채식체험
저녁 나절 방문한 식당은 온통 식물로 가득했다. ‘정육식당에서 고기로 인테리어 하는 기분이네’라고 속으로 되뇌이며 녹색 풀 사이에 자리잡고 앉았다. 종업원이 건네 준 메뉴판을 받아 들고 한참 고민했다. 렌틸콩, 버섯미트볼, 퀴노아, 케일, 로메인이라는 낯선 단어가 가득 찬 메뉴판을 이리저리 살폈지만 와닿는 음식은 없었다. ‘뭘 먹어야 할까. 아니 먹을 수 있을까. 빵은 없나’라는 생각도 잠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칠리치즈버거, 두부시저랩, 렌틸베지볼, 레모네이드를 주문했다. 값은 4만3000원. 채식이 저렴할 것이라는 생각은 완전히 어긋났다. 통상 시중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고기메뉴와 비슷한 가격에 눈앞이 아찔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채식 수요가 적어 가격이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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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흥순 기자 |
주문한 음식은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나왔다. 동행한 이와 함께 먹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양은 꽤 푸짐했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할 새 없이 기자의 포크와 나이프는 칠리치즈버거로 향했다. 육식에 길들여진 탓일까. 채소만으로 구성된 패티와 유부칠리콩, 캐슈넛으로 만든 소스의 조합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패티는 특유의 탄력이 없었고 입안에서 쉽게 부서졌다. 마치 콩국수를 먹었을 때 느낌처럼 입안에 거친 분말이 남는 느낌을 받았다. 곁들임으로 나온 감자칩이 버거보다 맛이 좋았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두부시저랩에 손을 댔다. 각종 채소를 토르티야로 감싼 생김새는 마치 모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의 치킨 랩 같았다. 다만 그 속을 채운 채소의 두께가 성인 남성의 주먹과 비슷해 먹기가 쉽지 않았다. 돌돌 말린 토르티야를 풀어헤치자 시저샐러드 소스가 고약한 향을 풍겼다. 눈을 질끈 감고 한술 들어 입안에 털어 넣자 불현듯 삼겹살이 생각났다. 잘 구워진 노릇한 삼겹살과 함께 먹으면 어울릴 것이라는 느낌이 뇌리를 스쳤다.
채식시장이 커지면서 채식 인구가 늘고 레시피도 다양해졌지만 재료 본연의 맛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채소만을 사용해 만든 요리는 더 한계가 있을 터.
끝으로 렌틸베지볼에 손을 뻗었다. 이 메뉴는 렌틸콩, 옥수수, 체다치즈, 양배추 피클, 쌀 등을 한데 버무린 음식으로 외형은 얼핏 비빔밥과 비슷했다. 볼을 끌어안고 음식을 잘 섞은 뒤 한입 먹자 느끼한 마요네즈 밥과 토르티야의 중간이라는 생각이 났다. 밥알 사이사이 섞인 나초가 전해주는 염분 이외에 다른 강렬한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건강해지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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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흥순 기자 |
◆“채식 특별하지 않아요”
그의 말대로 최근 채식이 일상화되면서 산업이 급성장했지만 육식문화가 발달한 국내에서 채식주의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기자도 처음 채식을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혹자들의 눈에 기자는 ‘유난 떠는 사람’으로 보였을지 모를 일이다.
스스로 ‘락토 베지테리언’이라 칭한 직장인 B씨도 “3년 전 처음 공장식 축산을 알게 되고 채식을 선언했을 때 난감했던 적이 많았다”며 “이후 채식주의자인 나 때문에 동료들이 신경 쓰는 것이 마음에 걸려 점심식사는 도시락으로 혼자 해결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채식은 슬프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단지 개인의 신념으로 봐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79호(2019년 2월12~1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