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들의 반발과 정부의 규제 강화로 물적분할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현물출자를 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소액주주들의 반발과 정부의 규제 강화로 물적분할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현물출자를 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기사 게재 순서
①"대주주만 살찌우는 '물적분할' 반대"… 행동나선 개미들
②'물적분할' 막힌 기업들… 자금조달 어떻게?
③'물적분할'만 아니면 괜찮나?


정부 규제 강화와 소액주주들의 반대로 물적분할 추진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대안으로 현물출자 방식을 추진할 것이란 관측이다. 현물출자는 모회사가 자회사를 100% 지배한다는 점에서 물적분할과 대동소이하다. 주주총회와 같은 최소한의 주주권 보장 장치를 갖추지 않아도 돼 부담 역시 적은 편이다. 전문가들은 형태를 불문하고 일부 사업부 분할 및 상장 시 회사가 주주가치 보호 조치를 취했는지 확인 후 상장을 허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물출자 나선 기업들… 물적분할 비판 피하기 꼼수(?)

'물적분할'만 아니면 괜찮나?

국내 일부 기업들이 현물출자 방식의 지배구조 개편을 시도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10월5일 이사회를 통해 모듈과 부품을 각각 생산하는 자회사 2곳에 대한 현금출자(총 700억원)를 의결했다. 내년 상반기에는 신설회사에 대한 현물출자도 진행할 계획이다. 현대모비스에 앞서 KT는 1조6000억원 규모의 현물출자, 1500억원 규모의 현금출자를 통해 데이터센터와 가상서버 사업을 영위하는 KT클라우드를 출범시켰다.


현대모비스와 KT가 각각 현물출자 방식으로 기업 분할에 나선 것은 물적분할 효과를 누리면서도 사회적 비판을 피하기 위한 의도로 관측된다. 현물출자와 물적분할은 모회사가 자회사를 100% 소유한다는 점에서 같다. 두 방식 모두 신설된 자회사가 상장하면 소액주주들의 주주가치가 훼손될 가능성이 크지만 시장에선 물적분할에 대해서만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정부 규제도 현물출자 방식보다는 물적분할에 초점이 맞춰졌다.

주주들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기업이 현물출자 방식을 택한 배경으로 꼽힌다. 물적분할은 이사회 의결을 마친 후 주주총회를 통해 주주들의 찬성을 받아야 하지만 현물출자 방식은 이사회 의결만으로 진행할 수 있다. 현물출자 시 기업은 출자하려는 자산이 적절하게 평가됐는지 법원으로부터 검사받아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이 과정에서도 주주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는다. 물적분할과 같은 효과를 내면서도 주주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커지고 정부 규제가 강화되면서 기업들이 물적분할을 추진하기 어렵게 됐다"며 "앞으로 주주들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적은 현물출자 방식을 택해 신설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물적분할 vs 현물출자… 문제는 '이중상장'

스위스 취리히에서 구글 로고 앞을 지나는 행인. /사진=로이터
스위스 취리히에서 구글 로고 앞을 지나는 행인. /사진=로이터

전문가들은 물적분할 자체보다 회사와 자회사가 이중으로 상장해 모회사의 주주가치를 떨어트린다는 점을 문제라고 본다. 해외에선 부진한 사업부를 떼어내 정리할 때 물적분할을 사용한다. 국내 기업이 핵심 사업부를 분리해 상장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물적분할이든 현물출자든 자회사를 만드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자회사 상장으로 모회사 주주가치가 훼손되는 것이 문제"라며 "미국에서도 물적분할을 하긴 하지만 주변 사업부 등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것일 뿐 핵심 사업부를 분할해 상장하려는 발상 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물적분할은 상당히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고 해외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기법"이라며 "회사가 사업부를 정리할 때 사업부 매각보다는 법인을 쪼개서 매각하는 게 다양한 부작용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활용된다"고 말했다.

외국에선 지주사를 상장하고 자회사는 상장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대표적인 예로 알파벳과 구글이 있다.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은 수많은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는데 그중 상장된 회사는 알파벳뿐이다. 애플, 버크셔해서웨이 등도 여러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으나 이들을 물적분할해서 상장시키지 않는다.

해외 기업들이 한국처럼 모회사와 자회사를 이중으로 상장하지 않는 이유는 주주들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구글이 바보라서 유튜브를 상장하지 않는 게 아니다"라며 "상장 후 알파벳 주주들이 민사적으로 제기할 법적 문제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자회사 쪼개기 상장으로부터 '주주가치' 지킬 해법은

전문가들은 정부가 제시한 주식매수청구권 등이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본다. 주식매수청구권 대상이 물적분할에 한정돼 현물출자로부터 주주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 연구원은 "현물출자는 물적분할에 비해 조건이 더 붙기는 하지만 핵심 사업부를 쪼개는 게 어렵지 않다"며 "물적분할이 악용되면서 정부가 개입한 것은 이해하지만 이로 인해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본시장에선 소액주주 권리를 보호할 추가 제도 마련에 대한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합병, 분할, 영업양수도 등의 중요 안건이 주주총회에 상정된 경우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인의 결정권을 제한하는 '일반 주주 과반 결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주주 보호 요건 충족 여부를 상장심사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일반 주주의 의결권을 확대하고 이중상장 대상인 자회사에 주주 보호 조치 여부 등을 검토하도록 상장심사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업들이 소액주주들의 주주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법을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 교수는 "일반주주 권리 보호를 위해 국내에서도 회사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이 활발해져야 한다"며 "최근 주주들이 연합해 기업의 물적분할을 막아냈는데 자본시장에서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회사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