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2년 2월5일 육군특수전사령부 제707특수임무대대 소속 육군 장병 47명과 공군 장병 6명이 탑승한 수송기 C-123이 눈이 내리는 악천후 속을 버티지 못하고 추락하면서 장병 53명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2월5일 특전사 제주도 순직 장병 35주기 추모식에서 유족들이 추락한 수송기 잔해를 살피는 모습. /사진=뉴스1
지난 1982년 2월5일 육군특수전사령부 제707특수임무대대 소속 육군 장병 47명과 공군 장병 6명이 탑승한 수송기 C-123이 눈이 내리는 악천후 속을 버티지 못하고 추락하면서 장병 53명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2월5일 특전사 제주도 순직 장병 35주기 추모식에서 유족들이 추락한 수송기 잔해를 살피는 모습. /사진=뉴스1

1982년 2월5일. 국군 장병 53명을 태운 군용 수송기( C-123)가 이륙했다. 하지만 수송기는 이륙한 지 5분 만에 정상 궤도를 벗어났고 연락이 두절됐다. 이날 수송기에 탑승했던 육군특수전사령부 제707특수임무대대 소속 육군 장병 47명과 공군 장병 6명은 전원 사망했다.

C-123은 2월6일 오후 4시쯤 한라산 해발 1060m 지점 개미목 부근에서 추락한 채 발견됐다. 당시 지역 경찰들과 구조대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고 현장은 사체와 수송기 파편 등이 사방에 널브러져 참혹한 상태였다. 명찰이 있는 시신 한 구를 제외하면 전부 추락에 이은 폭발로 갈기갈기 조각난 모습이었다.


다음날인 2월7일 국방부는 이들이 '대침투 작전'을 위해 제주도로 이동하다가 조종사의 조종 미숙으로 사고를 당했다고 발표했다. 이 작전명에는 국방부가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숨긴 진실이 있었다. 바로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씨의 경호 작전을 수행하기 위함이었다.

전씨는 2월6일 제주공항 신활주로 건설 준공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이에 준공식 참석 경호를 위해 공수특전단을 투입하라는 '봉황새 1호 작전'이 내려졌고 제707특임대 장병 53명은 영문도 모른 채 C-123 수송기에 탑승한 것이다.

이륙 불가 보고에도 "안 되면 되게 하라"… 전두환 "인명은 재천"

지난 2017년 2월5일 제주 한라산 관음사 충성공원 내 제주도 특전사 충혼비에서 거행된 육군 특수전사령부 제주도 순직 장병 35주기 추모식에서 유족이 제단에 술을 올리며 고인들의 넋을 기리는 모습. /사진=뉴스1
지난 2017년 2월5일 제주 한라산 관음사 충성공원 내 제주도 특전사 충혼비에서 거행된 육군 특수전사령부 제주도 순직 장병 35주기 추모식에서 유족이 제단에 술을 올리며 고인들의 넋을 기리는 모습. /사진=뉴스1

2월5일에는 C-123의 출발지인 성남공항과 제주공항에 바람과 눈보라가 치는 등 기상조건이 최악이었다. 이날 눈이 계속 내리는 탓에 성남 서울공항 통제국은 모든 항공기 이륙을 통제했고 제5전술 공수비행단도 이륙이 불가하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책임자는 "안 되면 되게 하라"고 지시했고 C-123은 눈 내리는 활주로를 날 수밖에 없었다.


C-123이 정상궤도를 벗어나 통신이 두절된 후 추락한 기체와 시신을 발견하기 전인 2월6일 오전 8시45분. 박희도 전 공수특전사령관은 해당 부대 대대장에게 "훈련 명칭 변경. 금번 훈련은 특별 동계 훈련으로 호칭한다"고 전했다. 작전명 '봉황새 작전'을 '대간첩 침투 작전'으로 호칭한다는 의미였다.

한라산 중턱에서 산산조각난 기체와 시신이 발견된 직후 제주를 떠날 무렵 분향소에 들른 전씨는 "이번 사건은 조종사 조종 미숙으로 발생했다"며 "인명은 재천인데 어떻게 하겠느냐"라는 한 마디만 남기고 서울로 떠나버렸다.

사고가 발생한 지 100일이 넘은 시점. 사고 장병의 어머니는 혹시라도 잔해가 남아있지 않을까 싶어 한라산을 오르고 또 올랐다. 그런데 사고 현장에는 널브러진 수송기 잔해와 시신 일부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미 영결식까지 치른 후였지만 당시 책임자들은 현장을 제대로 수습하지도 않고 빠르게 사건을 덮기에 바빴던 것이다.

이날 사고는 1980년대 대한민국 국군의 전근대성을 보여주는 흑역사 중 하나로 남았다. 특전사 충성공원 충혼비 비문 내용에는 불과 9년 전인 2015년에도 '대침투작전 훈련 중'이라는 문구가 남아있었다. 2015년 이후 이 문구는 '대통령 경호 작전 중'으로 변경됐다.

유족들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눈 덮인 산을 오르며 수십년 동안 국가와 싸웠다. 억울하게 희생 당한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1982년 2월5일의 진실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