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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산업의 위기 상황을 진단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민간 연구기관들이 머리를 맞댔다. 현재 건설업계가 직면한 위기는 규제 완화와 개선만으로는 해결이 쉽지 않다는 판단에 정부·민간·학계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과 대한건설정책연구원(건정연)은 지난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건설회관에서 '2024년 건설시장 및 건설산업 정책 진단 세미나'를 개최했다. 건설업계가 공동으로 현안을 진단하고 협력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고금리와 저성장, 자재비 상승 등 외부 요인이 수년째 지속되고 공사비 책정과 안전 문제 등 규제로 건설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확산됐다. 이에 건설업의 패러다임 전환과 성장을 위한 정책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한승구 대한건설협회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건설산업이 직면한 현재의 어려움은 국가경제의 안정성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산업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하다"며 "종합건설과 전문건설이 업역 구분을 넘어 협력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학수 대한전문건설협회 회장은 "건설업 전반에 '혁신의 마인드'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전문건설협회도 생산구조의 정상화와 적정 공사비 확보, 양질의 인력 수급 등으로 공생과 협력의 미래가 펼쳐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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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로 리스크 가중… 산업 전반 구조 개혁 필요
세미나는 '건설시장 패러다임 전환과 대응방향'과 '건설정책 소고와 바람직한 발전방안'으로 세션을 나눠 발전 과제를 제시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나경연 건산연 경제금융·도시연구실장(연구위원)은 '건설투자 활성화 및 시장 안정화를 위한 정책 방향'이라는 주제로 건설투자가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 ▲소비 ▲격차 해소 등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 수주는 전년 대비 16.8% 감소한 206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나 실장은 "전국 건설업체가 9만여개라는 점을 고려하면 약 1만5000개 업체는 일감을 잃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건설투자는 단기 내수 활성화는 물론 장기 성장 동력 마련의 수단"이라며 "건설시장 안정화를 유도하기 위해 '공급-수요-재원'의 총체적 확대와 내수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김태준 건정연 신성장전략연구실장은 '건설산업 환경변화에 따른 리스크와 대응 전략' 주제 발표에서 "한국 건설업은 성숙기를 지나 쇠퇴기에 진입해 수익성 하락이 예상된다"며 "구조 문제에 코로나 팬데믹, 신냉전,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 등 글로벌 이슈가 더해져 리스크가 가중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건설산업의 위기관리체계를 고도화하고 변화관리체계도 구축해야 할 것"이라며 "미래 경쟁우위를 담보하는 시공 중심의 핵심 역량 확보에 기업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고 했다.
홍성진 건정연 산업정책연구실장은 '건설산업 육성·진흥 정책의 현황 및 과제'를 주제로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건설업체 이익률은 2021년 이후 감소 추세이며 2023년 건설업의 영업이익률은 2%대에 불과했다.
홍 실장은 ▲리스크 완화 ▲스마트건설기술 ▲외국인근로자 ▲계약제도 ▲중소건설업 육성 분야의 보완 필요성을 제시했다. 그는 "건설경기 활성화를 위해 지방소멸 위기 극복과 지역 경기 활성화, 미래 도시 등 미래 지향 정책과의 연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전영준 건산연 실장은 'Ruler(지배자)에서 Player(구성원)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주제로 현 건설산업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전 실장은 "건설업은 규제·수주산업 특성상 정부의 국정 기조와 정당 입법 공약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음에도 단순 정책이 지속 반복되고 있다"며 "비용 상승, 업체 수 급증, 생산성 저하라는 3대 산업 악재가 심화하며 상황이 임계치에 다다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의 경우 건설산업을 진흥·육성의 대상으로 보고 장기 정책을 추진 중"이라며 "정부는 근시안적이고 규율 우선적인 시각을 탈피해 산업 구성원으로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급한 사항으로 공공 공사비 현실화와 민간공사 물가변동 합리화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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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좌담회에서는 이충재 건산연 원장과 김희수 건정연 원장의 토론이 진행됐다. 사회는 김한수 세종대 교수가 맡았다.
이 원장은 "여러 복합 요인이 작용하는 현 상황에서 단순 규제 완화나 제도 개선으로 위기 극복이 쉽지 않다"며 "구조 개혁과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건설산업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되찾고 산업구조를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등 중장기 관점에서 정부·민간·학계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건설산업 성장을 위해 고부가가치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스마트 건설기술을 도입해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한다"며 "전문건설기업과 종합건설기업이 각자 비교 우위를 바탕으로 공생 발전하는 생산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