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원 판결이 노조 편향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최근 법원 판결이 노조 편향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법부가 노사관계 관련 소송에서 잇따라 노조 측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법원은 최근 공장 불법 점거로 생산라인이 멈췄더라도 노조 측이 고정비용 및 매출 감소 등 회사 측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앞서 지난해 말에는 11년 동안 유지되던 통상임금 판례를 뒤집는 등 산업계에 혼란을 불러오는 상황. 재계는 노조 측 손을 들어준 부산고법의 이번 판결은 불법 쟁의행위로 입은 기업의 피해 회복을 명시한 기존 법리와 배치되는 것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10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부산고등법원 민사6부(재판장 박운삼)는 현대자동차가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및 지회 노조원들에 대해 불법 쟁의행위로 비롯된 손해를 배상하라며 낸 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현대차 측의 청구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가 2012년 8월 사내하청 비정규직 근로자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울산공장 의장라인 등을 불법으로 멈춰 세웠으나, 해당 기간 초래된 매출 감소 및 고정비용 손실 등 회사 측 손해에 대해 배상 책임이 없다고 본 것이다. 앞서 법원은 1심과 2심에서 현대차 측의 일부 승소를 판결했으나 대법원은 2023년 6월 손해배상액을 재산정하라며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한 바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이 민사소송법의 기본 원칙인 '입증책임의 원칙'을 외면했다는 지적을 제기한다. 노조 측 책임을 인정한 1심 및 2심 판단과 달리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파업 후 추가 생산을 통해 부족 생산량이 만회됐다'는 노조 측의 일방적 주장을 수용했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노조 측이 파업 후 추가 생산으로 부족분이 만회됐는지 여부를 증명해야 함에도 노조는 재판 내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의 불법 쟁의행위로 생산하지 못한 부족 생산량을 만회하기 위한 추가 생산 역시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불법 파업 종료 후 상당 기간 내 추가 생산을 통해 부족분이 만회되었는지 여부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와도 배치된다.


이번 판결을 두고 법원이 증거 및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채증법칙'(採證法則)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재판부는 불법 쟁의행위가 일어났던 2012년 8월에는 당초 계획 생산량보다 1만2700대 적게 생산됐지만 연간 계획 생산량 기준 3300대가 더 생산됐다며 파업 이후 추가 생산이 이뤄진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에 대해 현대차 측은 매년 초 세우는 '계획 생산량'은 미확정 단순 목표치에 불과하며 시장 상황에 따라 매월 탄력적으로 운영되는 실제 '운영계획' 상으로는 2012년 연간 목표 대비 1만6150대가 적게 생산됐다는 점을 입증했다. 피고 측 증인도 실제 운영계획은 계획생산량 대비 수정된다는 취지로 증언했다고 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불법 쟁의행위로 인한 부족 생산량이 모두 만회됐다고 결론지었다.
현대차는 노조 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 /사진=뉴스1
현대차는 노조 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 /사진=뉴스1

현대차의 생산방식을 두고서도 재판부는 고객이 원하는 차종과 사양을 정하면 그에 맞는 차를 생산하는 '주문생산방식'이라고 판단했다. 일시적 생산 지연에도 고객이 곧바로 매매계약을 취소하지 않을 개연성이 높고, 따라서 매출 감소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취지다. 자동차업계에서는 고객 주문이 없더라도 일정 물량 이상의 재고를 확보해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대차 역시 고객 주문 물량 외에도 다양한 옵션의 차종을 미리 생산하고 있다. 불법 쟁의행위에 따른 조업 중단 시 생산 및 판매 차질이 불가피한 이유다.

현대차는 재판 과정에서 주문생산방식으로 차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점을 다양한 증거를 통해 입증했고 노조 측 증인 역시 인정했지만 마찬가지로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파기환송심 판결은 법리를 오해하고 채증법칙을 위반해가며 생산시설 점거와 같은 불법 쟁의행위에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며 "향후 다양한 불법 변칙 쟁의행위를 조장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번 부산고법 판결에 앞서 이뤄진 대법원 통상임금 판례 변경에 따른 후폭풍도 국내 기업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통상임금을 정하는 기준에서 고정성을 폐기했다. 소정근로 제공에 대한 대가로 지급받는 정기성과 일률성이 있는 임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하면서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했다. 일한 대가로 조건 없이 지급되는 '고정성'이 있어야 통상임금이라는 2013년 판례를 11년만에 뒤집은 것이다.

통상임금은 다양한 수당 등을 산정하는 기준이다. 때문에 통상임금으로 인정받는 임금이 늘어나면 이에 연동되는 수당도 증가해 노동자에게는 유리하지만 기업에는 인건비 증가 부담요인으로 작용하는 만큼 대법원 통상임금 판결은 노조에 유리한 결정으로 받아들여진다.

판결 이후 노조의 과도한 요구로 경영계에는 후폭풍이 불고 있다. 대법원은 판결 당시 소급적용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일부 대기업 노조는 과거 소급분까지 받아내겠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고 노조 지도부가 주도하는 소송전에 수만명이 참여하는 실제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2심까지 회사 측이 승소한 기존 통상임금 소송이 대법원에서 유사한 이유로 파기환송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해외에서는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경쟁심화 등으로 힘겨워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저성장 속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사법부의 노사관계 관련 최근 판결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처지에 놓인 기업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