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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중국산 레거시(범용) 반도체에 대한 추가 제재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의 이번 조치로 한국 반도체 기업이 수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초ㅚ근 주요 외신 보도 등에 따르면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11일(현지시각) 중국산 레거시 반도체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불공정 거래 조사를 위한 무역법 301조에 따라 진행된 청문회 안건은 '중국의 반도체 산업 지배를 위한 행위·정책·관행에 관한 조사'다. 청문회에서는 중국산 레거시 반도체에 추가 관세 부과 등 제재 강화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미국 정부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재임 당시였던 지난해 12월 중국산 레거시 반도체 공급 증대에서 미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통상법 301조에 따라 조사에 착수했다. 올해 1월1일부터는 중국산 반도체에 대해 50%의 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 레거시 반도체에 강력한 제재를 가한 데에는 관련 기업들의 두드러진 성장세가 주효했다. 중국 반도체 기업은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 레거시 반도체를 중심으로 세계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14년부터 반도체 사업을 국가전략사업으로 지정하고 세 차례에 걸쳐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중국은 ▲1기 약 1387억위안 ▲2기 약 2041억위안 ▲3기 약 3440억위안 등 약 130조원 이상을 반도체 산업에 투입했다.
미국이 중국 반도체 기업들에 기술적 통제를 가했던 것도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됐다. 미국은 ▲2019년 화웨이 블랙리스트 지정 ▲2020년 TSMC·삼성전자 등 파운드리 업체의 화웨이 반도체 생산 금지 등을 지시했는데 중국이 위기 돌파구로 '기술 자립'을 택하면서 폭발적 성장을 이룬 것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메모리 반도체 기업 CXMT(창신메모리)는 2016년 문을 연 이후 빠른 속도로 성장해왔다. 최근 CXMT는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레거시 메모리 시장에서 기존 기업들의 점유율을 위협하고 있다.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PC와 서버에 적합한 DDR4, 모바일 기기에 적합한 LPDDR4가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중국이 첨단 반도체 기술은 아직 부족한 반면 레거시 반도체 기술은 성공적으로 구현해냈다"며 "이번 제재는 계속되는 기술 패권 경쟁 속 미국이 중국의 성장을 억누르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 속 미국의 중국 레거시 반도체에 대한 제재가 국내 기업에 호재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제품 가격이 하락해 골머리를 앓았던 국내 기업에 수익성 개선의 계기가 된다는 분석이다. 중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수요가 국내 기업으로 옮겨지면서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김 연구원은 "중국 업체에 일부 빼앗겼던 국내 기업의 레거시 반도체 점유율을 되찾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미국의 제재 범위에 따라 수혜 대상 및 여부는 달라질 수 있다. 중국 팹리스까지 범위가 확장되면 오히려 이들의 위탁생산을 맡는 국내 파운드리 기업 매출에는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 레거시 파운드리 공정 사업을 운영하는 국내 기업에는 삼성전자, DB하이텍, SK키파운드리 등이 있다.
김 연구원은 "미국이 중국의 팹리스 업체까지 제재를 가하면 이들의 위탁생산을 맡고 있는 국내 기업은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도체 패권 경쟁이 갈수록 심화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도 차별화된 시장 전략이 요구된다. 강세를 보이는 메모리 분야에서 기술 격차를 벌리는 게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김 연구원은 "근본적으로는 독자적인 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게 필요하다"며 "국내 기업 역시 미국의 제재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의 간섭을 받지 않는 원천기술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김 연구원은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며 "지금 당장 필요한 방안은 정부의 협상력을 통해 국내 기업이 미국의 각종 제재에서 예외 또는 완화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