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26일 해상에서 경계임무를 수행중이던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피격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지난해 3월26일 평택 제2함대사령부에서 거행된 천안함 14주기 추모식에서 유가족들이 46용사에게 헌화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2010년 3월26일 해상에서 경계임무를 수행중이던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피격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지난해 3월26일 평택 제2함대사령부에서 거행된 천안함 14주기 추모식에서 유가족들이 46용사에게 헌화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2010년 3월26일 인천 백령도 서남방 2.5㎞ 해상에서 경계 임무를 수행 중이던 대한민국 해군 평택 제2함대사령부 소속 천안함(PCC-772)이 피격됐다.

이날 천안함은 평소와 같이 북측의 고속정이나 간첩선 남하를 저지하는 경계임무를 수행중이었다. 그러던중 밤9시22분쯤 뜻하지않은 기습 어뢰 공격을 받았고 충격 천안함은 반파됐다. 이후 약 6분뒤 함미(군함의 뒷부분)를 시작으로 함수(군함의 앞부분)까지 완전히 가라앉았다.


피격 사건 발생 직후 인근 지역에서 훈련 중이던 포항급 초계함인 속초함(PCC-778)과 백령도 해역에 있던 참수리급 고속정, 해경 함정에 의해 천안함 생존 승조원 58명이 현장에서 구조됐다.

당시 한국 정부 합동조사단은 "북한 잠수정 기습 어뢰 공격으로 인해 천안함 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전사 실종하고 58명이 구조됐다"고 긴급 발표했다. 이후 우리 군은 실종된 천안함 승조원을 수색·구출하기 위해 피격 발생 다음날인 3월27일부터 실종자 가족들의 작전 중단 요청일인 4월3일까지 UDT와 SSU를 투입해 작전에 임했다.

군은 4월4일부터 가라앉은 천안함 함미를 인양했다. 이 과정에서 함미에 갇혀 탈출하지 못한 실종자 36명이 주검으로 발견됐다. 침몰 29일째인 4월24일 군은 함수까지 인양했지만 해군 용사 6명은 여전히 실종된 상태로 캄캄한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군은 4월29일 제2함대사령부와 대전 현충원에서 영결식을 치르고 천안함 용사 46명에게 1계급 특진과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천안함 사건 전사자, 장병뿐만이 아니다

2010년 3월26일 해상에서 경계임무를 수행중이던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피격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2010년 4월3일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거행된 고 한준호 UDT준위 영결식 모습. /사진=머니투데이
2010년 3월26일 해상에서 경계임무를 수행중이던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피격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2010년 4월3일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거행된 고 한준호 UDT준위 영결식 모습. /사진=머니투데이

천안함 사건으로 전사한 건 탑승했던 장병뿐만이 아니었다. 실종자 수색 작전에 투입된 50대 베테랑 UDT 한주호 준위가 작전 중 잠수병으로 실신해 결국 전사했다. 한 준위는 작전 투입 명령이 없었으나 "자식같은 아이들이 바다에 있다"며 작전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안함 실종자 수색을 돕던 민간어선 98금양호가 상선과 충돌해 금양호 승조원 2명이 사망하고 7명이 실종되기도 했다. 천안함 사건은 6.25 전쟁 이후 가장 많은 국군 장병 희생자를 낳은 사건으로 알려졌다.

천안함 사건 15주기, 진실 논란… 어뢰 피폭 or 좌초 후 충돌

2010년 3월26일 해상에서 경계임무를 수행중이던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피격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2010 4월4일  인천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상에서 인양된 천안함(PCC-772) 모습. /사진=머니투데이
2010년 3월26일 해상에서 경계임무를 수행중이던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피격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2010 4월4일 인천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상에서 인양된 천안함(PCC-772) 모습. /사진=머니투데이

천안함이 피격된 후 올해로 15주기가 됐음에도 대한민국 내에서 천안함 사건 원인과 진상 규명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정부 합동조사단 조사 결과 발표를 두고 일부에서는 조사 과정의 투명성과 결론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의문은 공개적인 논란으로 이어졌고 사회 갈등 원인 중 하나가 됐다.


정부는 2010년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의 정확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정부 공식 조사 결과에 불복해 추가 조사나 재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를 상대로 정보공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국가 안보와 관련돼 있다는 이유로 일부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당시 민간합동조사위원이었던 신상철 전 위원은 "천안함이 피폭이 아닌 좌초 후 충돌했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신 전 위원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은 약 12년간 걸쳐 이어졌고 법원은 이러한 주장이 명예회손에 해당하지 않는다 설명하며 신 전 위원에게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사건 진실 행방은 여전히 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