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과 지주사 한진칼이 배당관련 정관을 대폭 손질해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 이후 자금조달·구조재편·경영권 방어가 용이해졌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한항공의 신규 리버리 공개행사 '라이징 나이트'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모습. /사진=대한항공
대한항공과 지주사 한진칼이 배당관련 정관을 대폭 손질해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 이후 자금조달·구조재편·경영권 방어가 용이해졌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한항공의 신규 리버리 공개행사 '라이징 나이트'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모습. /사진=대한항공

대한항공과 지주사 한진칼이 정기 주주총회에서 배당관련 정관을 대폭 손질했다. 정관 변경은 이사회 권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이뤄졌다. 배당 정책을 유연화해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 이후 진행될 구조 재편과 자금 조달에 대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울러 이사회의 권한을 확대해 경영권 방어를 고도화하는 차원도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대한항공은 지난 26일 서울 강서구 본사에서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제7조의2(동등배당) 신설 ▲제12조(주주명부 폐쇄 및 기준일) 개정 ▲제51조(이익의 배당) 개정 등을 골자로 한 정관 변경안을 승인했다. 일반 주주들은 배당 시점과 자격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높아졌고, 유상증자나 전환사채에 참여할 경우 배당에서 불이익을 줄일 수 있게 됐다.

표면적으로는 전자증권제도에 따른 행정 정비지만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의 경영권 방어와 아시아나항공 통합 절차에 대비한 수순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배당과 관련해 이사회 권한을 강화하면서 이사회가 지분 구조 변화에 따라 우호 세력에 유리한 배당과 의결권 설계가 가능해졌다는 평가다.


가장 변화가 큰 항목은 신설된 제7조의2(동등배당) 조항이다. 배당기준일에 보유한 주식이라면 발행 시점과 관계없이 모두 동일한 배당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기존 '발행일에 따라 배당 대상에서 제외되는 주식'이 존재했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꾼 것이다.

유상증자나 전환사채로 배당 기준일 직전에 발행된 신주는 배당 대상이 아니었다. 정관 개정 이후에는 기준일 보유 여부만으로 배당 자격이 결정된다. 대한항공이 향후 아시아나 통합과정에서 추가 자본 조달에 나설 경우 신주 투자 매력을 높일 수 있다.

특히 KDB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 배당 보장을 조건으로 지분을 확대할 경우 배당의 형평성을 정관에 명시해두는 것이 유리하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지배구조 분쟁이 발생할 때 우호 주주에게 빠르게 배당 이익을 부여해 지지를 확보하는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RSU(조건부 주식 보상)을 경영진에게 신주를 신속히 발행하고 동일한 배당 혜택을 부여해 우호 세력에게 유리한 지분 재편도 가능하다.

눈에 띄는 또 다른 변화는 제12조(주주명부 폐쇄 및 기준일)의 개정이다. 종전에는 매년 12월31일을 기준으로 주주 권리를 확정해왔다. 개정 이후에는 이사회가 기준일을 임의로 정할 수 있게 됐다. 2주 전 공지만 하면 의결권과 배당 등 권리 기준일을 변경할 수 있다.

배당, 의결권 등 주요 권리의 귀속 시점을 이사회가 통제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뀐 셈이다. 이사회는 향후 구조조정 진행 시 주총 표결 구도를 유리하게 설계할 수 있다. 지배주주인 한진칼 등 우호 지분이 많은 시점을 기준일로 잡아 소액주주나 반대 세력의 영향력을 제한할 수 있다.

제51조(이익의 배당) 개정으로 이사회 권한을 강화했다. 기존에는 결산기말 주주에게 배당이 이뤄졌지만, 앞으로는 '이사회가 정한 기준일의 주주'에게 배당이 돌아간다. 이사회가 기준일을 조정하면 일정 시점 이후 주식을 매입한 특정 투자자에게는 배당이 지급하지 않을 수 있다.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관련 배당 규정은 삭제됐다. CB·BW 발행 시 배당 기준이나 시점을 이사회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배주주 측이 유리한 방식으로 지분을 조정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대한항공은 제7조에서 관련 내용을 포괄해 중복 조항을 정리한 것이라 설명했다.

이번 정관 개정을 통해 제도적으로 경영권 보호를 강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2020년 사모펀드 KCGI는 반도건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연합해 한진칼 지분 46.71%를 확보하며 경영권 탈취를 시도한 바 있다. 당시 조 회장(지분율 41.4%)은 델타항공(10%)과 한국산업은행(3.45%), 우리사주조합, 카카오 등 56.67%의 우호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을 방어했다.

정관 변경이 향후 통합 과정에서 발생할 구조개편과 자금조달을 염두한 변화인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우기홍 대한항공 부회장은 "이번 변경은 주주권리 강화를 위한 것"이라 선을 그었다. "(배당과 관련한)일반주주들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 주주들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