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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에서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하는 자영업자 수가 2년6개월 만에 3배 넘게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대유행 때보다 자영업자의 소득은 줄고 대출은 더 늘어났다. 고금리와 내수 부진이 겹치면서 자영업자의 상환 능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29일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취약 자영업자 차주(다중채무자 중 저소득·저신용 차주)는 42만7000명으로 전년 말(39만6000명)보다 3만1000명 늘었다. 다중채무자 수는 줄었지만 저소득·저신용 차주가 더 빠르게 증가했다.
여기서 저소득 차주는 소득 하위 30% 이하, 저신용 차주는 신용점수(나이스신용정보 기준) 664점 이하인 차주를 뜻한다.
이들이 금융권에서 빌린 대출금은 2022년 말 115조7000억원이던 것이 2023년 말에는 125조4000억원으로, 1년 새 약 9조7000억원 늘었다. 취약 차주가 늘면서 연체 차주도 함께 증가했다. 전체 자영업자 가운데 금융권 대출을 제때 갚지 못한 연체 차주는 2022년 하반기부터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말 기준 14만80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2년 2분기 말(4만8000명)과 비교해 2년 반 만에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자영업자 전체의 대출 연체율도 0.51%에서 1.67%로 상승했다. 특히 ▲취약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3.96%에서 11.16%로 ▲비은행 금융기관 대출 연체율은 1.12%에서 3.43%로 급등하며 취약 계층과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연체 위험이 집중됐다.
자영업자 연체율은 최근 2~3년 동안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2021~2022년에는 대출금리가 급등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원리금 상환유예와 내수 회복세 등에 힘입어 연체율이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2023년 중반 이후 대출금리가 다소 하락세로 전환됐음에도 연체율 상승은 지속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자영업자의 연체율 급등 배경으로 내수 경기 부진에 따른 소득 감소를 지목했다. 보고서는 "금리 인하 등 금융 여건이 완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의 구조적 취약성과 서비스업 경기 부진으로 인해 자영업자의 소득 회복이 지연되며 연체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자영업자의 평균 소득과 대출을 추산한 결과 연체 자영업자의 1인당 평균 소득은 2020년 말 3983만원에서 2023년 말 3736만원으로 감소한 반면 평균 대출은 2억500만원에서 2억2900만원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전체 자영업자의 평균 소득은 4171만원에서 4157만원으로 소폭 줄었고 평균 대출은 3억3699만원에서 3억4169만원으로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소득은 줄고 대출은 늘어난 자영업자들이 연체의 늪에 빠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전체 자영업자의 평균 소득은 여전히 코로나19 이전 수준(2019년 말 기준 4242만원)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자영업 위기가 장기화되면서 자영업자 수 자체도 급감하고 있다. 최근 두 달 동안 자영업자는 20만명 이상 감소했으며 국내 자영업자 수는 약 550만명으로 줄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초기 수준으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보다도 적은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