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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고한 자동차 상호관세 시행이 다가옴에 따라 완성차업계의 미국 현지 생산 이전 움직임이 포착된다. 부품 공급망 전반의 재편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에 생산거점을 둔 현대모비스와 HL만도 등 국내 부품사는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일 자동차 부품업계에 따르면 최근 현대자동차가 주요 수출 차종의 미국 생산 이전을 검토하면서 쇼크업소버·댐퍼 등 서스펜션 부품을 납품하던 ZF삭스코리아가 납품 축소 또는 업체 변경 리스크에 직면하게 됐다. ZF삭스코리아의 모회사인 ZF 프리드리히샤펜(ZF), 수미모토, 발레오, 야자키 등 미국에 생산시설을 갖추지 못한 주요 글로벌 부품사 다수가 피해를 볼 것으로 전망된다.
25% 관세 부과가 6개월 이상 장기화되면 미국에 생산 공장 있는 현대모비스·HL만도 등에는 유리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미국으로 생산이 이전되는 차종이 늘어날수록 기존 부품 협력사 변경 가능성도 커진다. 완성차 제조사는 생산라인을 이전할 때 물류·납기 리스크, 비용 구조 재설계, 현지 법규·규제 및 인증 이슈(FMVSS) 등을 고려해 공급망을 전면 재정비한다.
완성차 한 대가 출시되기까지는 막대한 선투자가 필요하다. 금형 개발, 내구 테스트, 인증 등 각종 절차에 수년이 소요되며, 플랫폼(차체·구동·전자 구조 통합 단위) 하나가 평균 5~7년, 페이스리프트·후속모델까지 포함하면 최대 10년 이상 유지된다. 플랫폼이 바뀌더라도 거래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는 품질 리스크, 물류 재정비, 조립 공정 변경 등 변수로 인해 공급사 교체에 따른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진입 장벽이 높은 시장에서 트럼프발 관세 리스크는 오히려 미국 현지 생산기지를 갖춘 부품사에게는 기회다. 글로벌 톱3 부품사인 ZF는 미국에 일부 연구개발(R&D) 시설과 소규모 생산 기지를 운영하지만 대규모 제조시설은 독일과 멕시코 등에만 있다. 생산규모, 리드타임(납기기간) 등은 HL만도가 우위에 있다.
ZF는 지난해 414억유로(약 65조4616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세계 2위 자동차 부품사 자리를 지켰다. ZF는 현가·제동·조향 부품을 포함해 전동화, ADAS, 자율주행 기술 등 HL만도와 유사한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어 국내에서는 HL만도의 주요 경쟁사로 꼽힌다. HL만도는 지난 10년간 40~50위권에 머물며 ZF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ZF는 전기차 부문 매출이 14.3% 줄면서 영업이익률이 전년 대비 5.1%포인트 하락한 3.6%를 기록했다. 인력 1만4000명을 줄이는 대규모 구조조정까지 단행해 미국 내 사업 확장 여력은 한계에 봉착해 있다. HL만도는 ▲샤시 ▲전동화 ▲자율주행 기술을 삼각축으로 한 유사한 기술 로드맵을 구축해온 만큼 이번 기회를 통해 점유율 반등을 노릴 수 있다.
HL만도의 지난해 미국 매출은 1조5186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17.16%를 차지했다. 2003년 앨라배마 공장을 시작으로 2012년 조지아에 두 번째 공장을 설립하며 북미 시장 내 생산 인프라를 확대해왔다. 기존에는 한국에서 현대차 또는 현대모비스를 통해 납품하는 구조가 주였기 때문에 미국 매출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한국 공장의 평균 가동률이 90% 수준인 데 비해 미국 공장은 58~76% 정도였고 연간 가동일도 252일에 불과했다.
지난해 전동화 부품 전용 라인을 증설하며 생산능력을 37.5% 끌어올린 만큼 미국 내 전동화 부품 시장에서의 확장이 기대된다. 올해 전동화 부품 비중은 67%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ESC(전자식 제어장치), R-EPS(전자식 조향장치) 등 전자화된 제동·현가 부품 생산 중심지로 미국 공장을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주 고객사인 현대차뿐 아니라 GM 등 현지 완성차 업체와의 협업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에는 현대차그룹의 미국 조지아 공장(HMGMA)에 아이오닉5·9용 통합 전동화 모듈 납품을 시작한데 이어 GM의 전기차 플랫폼 '얼티움(Ultium)' 전용 라인도 신규 구축했다. 올해 2분기부터는 GM 허머EV 시리즈에도 이 부품이 적용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