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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자동차부품에 대한 '특별 추가 관세용 코드'(Special Tariff Provisions)를 신설하면서 국내 ICT 기반 전장 부품사들이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압박을 받게 됐다. 가격 인상이 불가피해진 가운데 SDV(Software-defined Vehicle,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전환 전략을 추진 중인 현대자동차그룹에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8일 미국 국립기록청의 'Federal Register'(연방 관보)에 따르면 미 정부는 지난 3일 미국 통합관세율표(HTSUS)의 제99장에 특별 추가관세용 코드를 신설했다. 자동차 관련 코드는 3개(9903.94.01·9903.94.02·9903.94.03), 자동차 부품 관련 코드는 2개(9903.94.05·9903.94.06)가 신설됐다. 전 세계 공용 수출입 물품 분류 체계인 HS코드와 달리, 특정 무역 조치나 제재를 위해 미국이 별도로 설정한 추가 분류 항목이다.
ECU(전자제어장치)·센서·전장제어기 등 전장·ADAS 핵심부품이 다수 포함될 전망이다. ECU(HS코드 8537), 구동축·차동장치(HS코드 8708.50), 와이어링 세트(HS코드 8544) 센서·제어기 (HS코드 9031~9032 일부)가 포함될 예정이다. 국내 ICT 기반 전장 부품사들의 공급망 재편이 불가피해 졌다. 광섬유케이블과 같이 SDV·자율주행차 시대를 대비한 미래 통신 부품들도 포함될 것으로 보여 관련 업계의 긴장감이 커진다.
한국무역협회(KITA) 등의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해 해당 부품들의 대미 수출액은 약 16억달러(한화 약 2조3497억원) 수준이다. 미국산 부품 비중 기준을 미달한 미국 내 생산차량도 관세 대상 포함되기 때문에 현대모비스, 현대오트론 등 국내 개발·수출 구조 중심 전장 부품 기업들의 타격이 예상된다. 제3국 조립 부품도 '비미국산'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생산구조의 전면 개편 필요하다.
해당 부품들의 미국 중심 공급망 재편 압박은 현대차의 SDV 전환 전략에 부담 요인이다. 핵심 부품의 조달비용 상승과 플랫폼 운영의 일관성 저하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SDV는 기능별 ECU를 통합해 차량의 모든 기능을 단일 소프트웨어 아키텍처에서 구현·운영하는 구조다. 통합 체계가 미국으로 분산하게 되면 SDV 플랫폼의 일관성과 개발 효율성도 저하될 수 있다.
차량 전장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소프트웨어 호환성이나 통신 규격, 시스템 통합 검증 등 기술 연계성 문제가 복합적으로 발생하면 그룹 전체의 전략이 지연돼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 미국 정부가 보안 또는 기술 주권을 이유로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 개발도 현지화할 것을 요구한다면 현대차의 SDV 아키텍처는 미국 시장 전용 버전으로 이원화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주요 협력사 변경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돼 증가된 관세를 부품사가 일정 부분 떠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영업이익률이 낮은 현대모비스나 현대오트론 등은 수익성 악화에 직면할 수 있다. 단가 인상 요구도 쉽지 않아 하위 협력사에 원가 부담이 전가될 가능성도 크다. 전장 부품 산업 특성상 납품 단가 협상력이 낮은 중소업체가 많아 공급망 전체로 구조적 부담이 확산될 수 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부 교수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SDV 전환에 속도를 낸 현대차그룹이 주도권을 뺏기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현대차그룹이) 타 완성차 제조사에 비해 앞서 있다고 해도 관세로 인한 차량 가격 상승 압박이 계속된다면 전환이 늦어지고 경쟁업체에 뒤질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그는 "차량가격 상승을 막기 위해서는 기업이 관세를 일부분 부담하는 방향으로 가야하는데 현대차에 비해 영업이익 마진이 떨어지는 현대모비스에게는 부정적"이라며 "하위 협력사에 비용 부담이 전가될 경우 결국 공급망 전체의 원가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2022년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약 18조원을 ▲SDV 개발 ▲소프트웨어 인력 확보 ▲글로벌 R&D센터 구축 ▲차량 OS·통합 제어 플랫폼 개발 등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현대차는 올해부터 출시하는 전기차를 시작으로 자체 차량 OS를 도입하고 글로벌 차량을 단일 소프트웨어 체계로 운영하는 수직통합형 SDV 전략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전장 부품 계열사(현대오트론·현대모비스)와 HMGICS 싱가포르 등 글로벌 SW개발센터를 통해 통합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