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분향소에는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에게 추모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벽이 마련됐다. 다양한 언어로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메시지를 찾아볼 수 있다./사진=윤지영 기자
서울광장 분향소에는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에게 추모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벽이 마련됐다. 다양한 언어로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메시지를 찾아볼 수 있다./사진=윤지영 기자

지난해 10월29일 "친구들과 함께 핼러윈 이태원 구경을 가고 싶다"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현관문을 나섰던 아들은 그곳에서 친구 2명을 잃고 혼자 울며 돌아왔다. 10·29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 159명 중 마지막 희생자는 참사 43일 후 서울 마포구에서 스스로 세상을 등진 이재현군(당시 16세)이다.

이군은 참사 당일 함께 이태원을 찾았던 친구 2명을 잃었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외로움, 악플 등 2차 가해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극단적 선택으로 삶을 마감했다.


159번째 희생자 이군의 어머니 송해진씨(47)를 만난 곳은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둔 지난 25일 서울광장 합동분향소였다. 보라색 옷을 입은 송씨는 희생자들의 사진이 걸린 분향소 앞에 마련된 테이블에 유가족들과 둘러앉아 보라색 리본을 만들고 있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과 유가족을 위로하는 마음을 담아 전국에서 진행되던 노란리본공작소는 2023년 이태원 참사 이후 리본 색깔을 보라색으로 바꿔 다시 시작됐다. 이들은 앞으로 다른 색 리본은 절대 만들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리본을 만든다.

송씨는 어떤 마음으로 1년째 이곳을 지키며 리본을 만들고 있을까.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함께해요' 현수막을 젖히고 들어가면 보이는 '유가족 휴게실'이라고 쓰인 어둑어둑한 천막. 그곳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아들… 친구 잃은 뒤 세상 등져"

10·29 이태원 참사는 '평범했던' 누군가의 친구 또는 가족의 목숨을 앗아갔다. 사진은 지난해 11월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유실물센터에 유실물들이 놓여 있는 모습./사진=머니투데이
10·29 이태원 참사는 '평범했던' 누군가의 친구 또는 가족의 목숨을 앗아갔다. 사진은 지난해 11월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유실물센터에 유실물들이 놓여 있는 모습./사진=머니투데이

송씨는 아들을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희생자들을 유별나거나 특이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많지만 재현이는 친구들을 만나 노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고 회상했다.

참사 당일 "핼러윈 이태원을 구경하고 싶다"며 친구들과 놀러 나갔던 이군은 저녁을 먹고 귀가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가다 인파에 휩쓸렸다. 당시 친구 1명은 이군의 옆에서, 다른 1명은 이군의 뒤에서 의식을 잃었고 이군은 이를 지켜봐야 했다.

생존자였던 이군은 친구를 잃고 난 후 "친구들 몫까지 열심히 살겠다"며 씩씩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 순간에도 트라우마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다. 혼자 남겨진 고립감과 죄책감뿐 아니라 참사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도 그를 괴롭혔다.

이군은 참사 희생자들을 비난하거나 참사 원인을 희생자에게 돌리는 댓글들을 보며 크게 분노했다. 그는 참사로 세상을 떠난 친구에게 "최대한 안 아프게 빨리 갈테니깐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끝내 세상을 등졌다.

"정부, 일방적 태도로 일관… 심리지원 대책도 말뿐"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는 정부 대응과 진상조사의 미비를 지적하는 게시이 설치됐다./사진=윤지영 기자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는 정부 대응과 진상조사의 미비를 지적하는 게시이 설치됐다./사진=윤지영 기자

참사 이후 정부 대처에서 가장 미흡했다고 느끼는 점을 묻자 송씨는 "한두가지로 말할 수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가장 답답한 건 정부가 피해자·유가족과 상의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한 애도 기간 내에 모든 걸 끝내버리려는 태도"라고 꼬집었다.

송씨는 "정부는 우리와 아무런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애도기간을 정하고 그 기간 이후에는 참사를 없던 일처럼 취급하려고 한다"며 울분을 토했다. 또 그는 "참사 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가족들은 정부 측 응답을 단 한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군이 참사 이후 2차 희생자인 만큼 사후 대처의 부족함을 여실히 느꼈을 송씨는 "성인인 피해자들은 상담받길 원하는 센터를 직접 선택할 수 있지만 재현이는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부모인 내가 책임을 지고 센터를 선택해야 했다"고 밝혔다. 송씨는 이군이 제대로 된 상담과 치료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 정부에서 지정해 준 정신보건센터에 직접 전화를 걸어 심리지원에 대해 문의했지만 돌아온 건 형식적이고 기대 이하의 답변이었다.

송씨는 "참사 이후 생존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치료와 극복에 대한 의지"라며 "이런 곳에서 성의 없는 상담을 받으면 재현이가 심리치료 자체에 거부감을 갖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 정도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당당하게 피해자들을 위한 심리지원 대책을 마련했다고 발표했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전혀 와닿지 않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실제로 이군이 상담을 다녀오고 난 후 센터가 시행한 후속 조치는 이군의 아버지에게 문자메시지 몇 통을 전송하는 것이 전부였다.

"모두에게 아픈 상처… 기억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합동분향소를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5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이 헌화하고 묵념하는 모습./사진=윤지영 기자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합동분향소를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5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이 헌화하고 묵념하는 모습./사진=윤지영 기자

송씨는 이태원 참사가 피해자와 유가족뿐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아픈 기억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픈 기억이니 잊고 싶은 마음도, 회피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한다"며 "하지만 앞으로 내가, 그리고 나의 가족이 안전한 사회에서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기억하고 떠올리는 것을 힘들게 느끼지 않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참사 후 1년이 흐른 지금까지 유가족들이 분향소를 떠나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잊히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송씨는 "제일 답답한 점은 정부의 뜻대로 참사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있다는 것"이라며 "재판은 계속 지연되고 책임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참사 이후 어떤 진상이 규명됐으며 어떤 변화가 있었나"라고 반문한 그는 "이태원 참사는 국가 행정체계의 미비로 일어난 사건인데 제도적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앞으로도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년 전 너무나 허망하게 159명의 청년들을 떠나 보낸 우리들은 이태원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송씨는 간절하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를 잊지 말아주세요. 계속 기억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