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어리더 복장, 예비군복, 베트남 전통의상 등 안 입어본 옷이 없어요.”

가히 이벤트의 화신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CJ제일제당 인천1공장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선아 수석영양사(39)가 주인공이다. 이 영양사는 CJ프레시웨이 소속이고 CJ제일제당은 고객사다. 그녀는 매주 색다른 이벤트로 고객사의 고객들을 즐겁게 만드는데 천부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다.

예비군의 날을 앞두고 이 영양사는 공장 근무자를 붙잡고 자체 설문에 들어갔다. 예비군하면 떠오르는 것이 뭐냐는 질문이었다. 동전던지기와 컵라면이 떠오른다는 대답이 상당했다. 4월2일 예비군의 날, 이 영양사는 아는 분의 옷을 빌려 예비군복을 입었다. 동전던지기 이벤트 진행자로 분해 컵라면을 상품으로 전달하는 역할이었다. 야근에 시달리는 공장 근무자들이 몇 십분씩 줄을 서가며 참여했을 정도로 호응도가 높았다.
고객사 마음잡는 '이벤트의 화신'

그녀의 이벤트는 매번 이런 식이다. 해병대의 날에는 해병대 복장으로 잔반 남기면 고객을 잡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치어리더 복장을 하고 지치고 힘든 고객들에게 재롱을 부리기도 한다. 봄맞이 릴레이, 여름 공포 등 계절적 이벤트는 물론 웰빙메뉴, 월드컵, 추억의 7080, 대장금, 신데렐라 등 열거하기조차 어렵다.

의상은 거의 막무가내로 조달한다. 소방관 옷이 필요하면 소방서를 찾아가고, 경찰관 옷이 필요하면 경찰서에 찾아가는 식이다. 해당 기관에서 회사에 ‘당신네 회사 직원 맞냐?’는 확인전화가 종종 걸려올 정도로 열성적이다.

“야간 식사시간이었어요. 그날 베트남 요리 이벤트가 있어 베트남 전통모자인 논(non)과 하얀색 아오자이를 빌려 입고 입구에서 고객들을 기다리는데 밤 12시가 다 되도록 한분도 안오시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멀리서 흰 옷 입은 이상한 여자가 서 있어서 다가갈 수 없었다는 거지 뭐예요. 전 그 옷을 입으려고 밥까지 굶어가며 살뺐는데…”

엄마보다 더 엄마같은 영양사

이선아 영양사의 고객 관리는 철저하다. 300명에 이르는 고객사 직원들의 이름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외운다. 이름 뿐 아니라 개인의 생일, 결혼식, 결혼기념일, 아기 돌, 심지어 자녀 수능까지 온갖 경조사까지 모두 기억하고 챙긴다.

현장에서 만난 날도 한 직원의 생일에 맞춰 간단하지만 정성스런 선물까지 준비하는 ‘센스’를 선보였다. 이승엽 선수와 이름이 똑 같은 직원에게는 ‘홈런볼’과 함께 응원문구를, 결혼기념일인 직원에게는 뽀뽀를 또 하라며 ‘뽀또’를 선물하는 식이다.

열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고객사의 동호회 활동이나 주말 농장에 깜짝 등장해 작은 선물을 준비한다. 선물은 누룽지 같은 간단 메뉴지만 인기만큼은 고급 스테이크 저리가라다. 이 영양사의 열정 때문일까? 고객사 회식은 물론이거니와 공장장 지시사항이 그녀의 메일로 빠짐없이 올 정도로 한 식구나 다름없다.

이 영양사는 인천1공장 기숙사에서 엄마로 통한다.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하루 네끼를 책임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진짜 엄마처럼 음력 정월대보름 새벽 배식때는 올 한해 아프지 말라며 한명한명의 부럼을 깨기도 할 정도다.
 
“한번은 50살이 넘으신 고객님이 부장으로 승진하셨기에 ‘승진 축하드려요’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엄마가 잘 챙겨주신 덕분이죠’라고 답문이 왔어요. 지점장님도 저보고 엄마래요.(웃음)”

음식물쓰레기, 종적을 감추다

이 영양사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사실 다른 곳에 있다. 지난 3월 CJ프레시웨이가 ‘2009년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우수 실천사례 부문’에서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는데 이 영양사의 공로가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잔반통을 아예 없애면 음식물쓰레기 대부분을 줄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본인이 직접 실천에 옮겼다. 현재 인천1공장의 잔반율은 98%나 절감됐다. 고객사 직원들도 잔반을 남기지 않는 것이 몸에 배었다. 현장을 찾은 날도 수백명이 남긴 잔반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양이 남았을 뿐이다. 겨우 성인 한명 분의 분량이었다.
 
이 영양사가 ‘음식물쓰레기 제로화 운동’을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다. 그 당시만 해도 고객들의 머릿속에는 ‘먹는 것 가지고 너무 치사한 짓이다’라는 목소리가 많았다. 음식물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고객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은 것도 이때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인천1공장점에서는 지난 2007년 환경의 날에 맞춰 본격적으로 잔반통을 없앴다. 외부 방문객 등 부적응자를 위해 식당 뒤편에 잔반통을 배치했다. 식당을 나와 한참을 돌아야만 잔반을 버릴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잔반통을 없애기 전인 2007년 5월 인천1공장점의 음식물쓰레기량은 120g(1인 1식 기준)이 넘었지만 현재는 2.5g 정도로 대폭 줄었다.

이 영양사의 사례는 사내 온라인커뮤니티의 ‘스타킹 따라잡기’ 코너를 통해 다른 영양사·조리사에게 전파됐다.

1992년 입사이래 지금까지 고객 일기를 작성하고 있는 이 영양사는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활동을 하면서 시작한 고객의 칭찬과 격려 노트에 칭찬글이 올라올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면서 “고객덕분”이라고 공을 돌린다. 우리나라 전체에서 발생하는 하루 평균 음식물 쓰레기가 1만5000톤, 금액으로 연간 18조원을 소비하는 시대에 이 영양사의 등장이 반갑게만 느껴진다.

수상내역
2007년 단체급식 최고 이벤트 달인으로 열정상 수상
2008년 CJ그룹 온리원 대상(고객만족·서비스 부문) 수상
2008~2009년 상·하반기 Lean Awards 4회 연속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