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감은사지삼층석탑과 문무대왕수중릉을 돌아본 뒤 바다와 나란히 달리는 31번 도로를 타고 북으로 향했다. 경주와 포항의 경계지점이라서 포항 땅이 바로 나왔다.
차가 달리는 속도만큼 차창의 빗줄기가 사선에서 수평으로 눕는다. 비 오는 항구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싶었다. 그렇게 찾은 곳이 양포항이었다.
◆비에 젖은 바다 항구
바닷가 마을이 정겹다. 그 바닷가에서 달빛이 가장 먼저 닿는 곳이라고 해서 양포를 ‘양월’이라고도 한다.
빗줄기 속에 커피향이 진하게 퍼진다. 곧게 뻗은 방파제를 따라 걷는다. 방파제는 바다를 가르며 길게 이어진다. 항구 쪽 바다에는 일을 마친 배들이 한가롭게 떠 있고 바깥 바다는 출렁거린다.
그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이 보였다. 방파제의 소실점 끝 산비탈에 집들이 빼곡하다. 불빛이 창을 밝히는 밤이면 저 비탈 마을도 아름답겠다. 빗줄기가 굵어진다. 트럭 포장마차 아줌마가 일찌감치 판을 접는다.
양포항에서 나와 바닷가 길을 따라 북으로 차를 달린다. 해변 끝 멋들어진 갯바위에 소나무 몇그루가 있는 항구가 보였다. 양포항보다 작은 어항이다. 그냥 지나칠까하다가 방파제에 나가 보기로 했다. 방파제에서 돌아본 항구와 갯바위 풍경이 빗줄기 속에서 무겁게 흔들린다.
공기도 비에 젖어 눅눅하다. 기분이 젖은 바다처럼 무겁게 침잠한다. 항구에서 나와 다시 31번 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달린다.
비가 그치지 않는다. 빗줄기를 가르며 장길리에 도착했다. 바닷가 항구로 접어드니 ‘장길리복합낚시공원’이라는 이정표와 함께 다양한 시설물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 위에서 낚시를 할 수 있게 바다에 좌대를 띄웠다. 갯바위 낚시터도 있다. 물에 돔 형태의 숙박시설도 띄운다. 방파제 안 잔잔한 바다에서는 오리배도 탈 수 있다. 낚시 도구를 빌려주고 컵라면과 과자, 음료 등 간단한 먹을거리를 파는 매점과 횟집도 있다.
바다 위에 놓인 ‘데크길’을 따라 가다보면 맑고 푸른 바닷물 아래 바닥이 다 보인다. 낚시를 하지 않더라도 주변 바닷가 풍경을 감상하며 산책을 즐겨도 좋겠다.
‘장길리’는 원래 ‘장구목’과 ‘생길리’를 합치면서 두마을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이름이다. 행정적인 이름인 ‘장길리’보다 원래 마을 이름인 장구목, 생글리, 새뜸마을 등의 이름으로 남았으면 이 바다가 더 아름답게 보였을 것 같다.
‘장길리복합낚시공원’에서 나와서 북으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구룡포 읍내다. 그곳을 지나서 북으로 더 올라가면 해돋이로 유명한 호미곶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지는 그 방향이 아니다. 장길리에서 구룡포 읍내로 가다가 포항시내·오천 방향 31번 도로를 따라 좌회전해야 한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오천읍에 있는 원효와 혜공의 일화가 전해 내려오는 오어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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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어사, 오어지(왼쪽부터)
◆호숫가 산책길이 좋은 오어사
포항 여행의 백미는 오어사다.
오어사는 신라 진평왕 때 세워졌다고 하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진평왕의 재위 기간이 579년부터 632년까지니까 그 사이에 창건됐다고 보면 된다.
오어사는 원효, 자장, 혜공, 의상 등 당대의 고승들이 수도를 했던 곳이라서 유명하다. 오어사가 있는 운제산에는 원효암, 자장암, 혜공암, 의상암 등 암자가 있었고 그중 현재는 원효암과 자장암이 남아 있다.
오어사의 매력은 두가지다. ‘오어지’라는 호수가 절을 감싸 안고 있는 게 그 하나다. 호수는 오어사 진입로 왼쪽부터 시작해 절을 감싸고 돈다.
산 그림자 비친 호수가 푸르다. 잔잔한 물결에 마음까지 차분해 진다. 긴 가지를 늘어뜨린 물가 나무에서 새가 날더니 잎새 하나 떨어져 수면에 동심원을 그린다.
오어사 주차장 앞에 호수를 가르는 출렁다리가 놓였다. 다리를 건너면 숲길 산책로다. 다리를 건너 우회전해서 오솔길을 간다. 조금 걷다보면 원효암으로 올라가는 길과 오어사로 돌아오는 길이 갈라진다. 오어사로 돌아오는 길을 택했다. 짧은 길이지만 그 길에서 오어지가 감싸고 있는 오어사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숲길 자체도 좋다. 다리를 건너 절 뒷마당에 도착했다.
오어사의 매력 두번째는 원효와 혜공의 전설이다. 어느 날 원효와 혜공이 내기를 했다. 물고기를 먹은 뒤에 배변을 했을 때 물고기가 살아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 이기는 내기였다. 그런데 두마리 중 한마리만 살아서 헤엄을 쳤다.
이에 원효와 혜공은 서로 자기 물고기가 살았다고 ‘내 물고기, 내 물고기’ 했다는 데, 그래서 나 오(吾) 고기 어(魚) 자를 써서 오어사(吾魚寺)가 됐다고 한다. 원래 이 절 이름은 ‘항사사’였다.
오어사를 나와 왔던 길로 가다보면 길 오른쪽으로 운제산장 입간판이 있다. 백숙과 도토리묵, 동동주가 어우러진 한판 술상 앞에서 반나절은 금방 지난다. 백숙이 나오기 전에 도토리묵과 동동주를 곁들이면 기다리는 시간 지루함을 달랠 수 있다. 미리 시간을 예약해도 되지만 시간을 두고 맑은 공기와 여유로운 햇살을 즐기는 것도 괜찮을 듯. 죽까지 끓여 주기 때문에 토종닭 한마리면 어른 두셋은 충분히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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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시장 생선 말리는 풍경
◆낙조 포인트, 포스코를 배경으로
오어사에서 포항으로 나간다. 포항에서 해질 무렵이면 가야할 곳이 있다. ‘임곡휴게소’가 그곳이다. 임곡리 온천랜드 옆에 임곡휴게소가 있는데 그곳에서 보는 일몰 풍경이 아름답다. 포스코를 배경으로 바다가 석양에 물드는데, 눈부시다.
작은 어선 한두척이 황금빛 물비늘 위로 지나간다. 햇살 가득한 바다가 고즈넉하다. 주변에 식당이 있지만 이런 풍경에는 파라솔 친 간이탁자에 컵라면도 운치 있다. 낙조를 즐긴 뒤 바로 옆 해수온천탕에서 온천을 즐겨도 좋겠다.
또한 임곡휴게소에서 가까운 거리에 도구해수욕장이 있다. 포항에 있는 해수욕장 가운데 모래도 곱고 백사장도 꽤 넓은 편이다.
포스코를 배경으로 해지는 풍경을 감상한 뒤 포항 시내로 향한다. 죽도시장에서 회 한접시에 소주로 여독을 푼다. 그렇게 맞이한 다음날 새벽, 포항 여행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새벽 풍경이 죽도시장에서 펼쳐진다.
항에 정박한 고깃배들과 갓 잡아 올린 생선 경매가 구경거리다. 죽도시장에 배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활기찬 새벽 어시장의 풍경을 감상할 것.
새벽 풍경을 놓쳤다면 아쉽지만 그냥 장 한바퀴 돌며 구경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한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눈요기하는 발걸음으로 바다와 항구, 어시장을 한바퀴 도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
아줌마들이 나와 파는 해산물들이 싱싱하고 싸다. 그날 시세에 따라 가격도 들쭉날쭉 하다. 바다가 삶의 터전인 죽도 어시장 사람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죽도시장의 멋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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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제산장 백숙
[여행정보]
<길안내>
자가용
*서울~포항 : 경부고속도로-익산포항고속도로-포항IC
*오어사 : 포항으로 들어와서 포스코를 지나 청림삼거리에서 우회전. GS용산주유소 앞 삼거리에서 오른쪽 방향. 용산교 건너 약 4km 거리에 오어사.
*장길리복합낚시공원 및 양포항까지 해안도로 : 오어사에서 나와서 31번 도로를 만나면 구룡포 방향 - 호미곶온천랜드 지나 삼거리에서 구룡포항으로 가지 말고 오른쪽길(동해안로) - 하정리 - 장길리(장길리복합낚시공원) - 구평리 - 모포리 - 대진리 - 영암리 - 신창리(신창해변) - 양포리(양포항)
*도구해수욕장 : 포항으로 들어와서 포스코·공항 이정표 따라 쭉 간다. 포스코 지나서 공항방향 - 도구해수욕장.
*죽도시장 : 포항 시내 오거리부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오거리까지 약 600m 거리.
대중교통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포항까지 수시운행(심야버스 운행)
현지교통
*오어사 : 포항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려서 길을 건너 102번, 175번 버스를 타고 오천시장(오어사 행 버스 환승 하는 곳)에서 내린 뒤 오어사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오어사 가는 버스가 자주 없다.
*양포, 장길리복합낚시공원 : 포항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린 뒤 오거리까지 도보이동(약 5~10분 소요). 오거리에서 구룡포 방향 200번 버스를 타고 구룡포환승센터에서 양포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장길리(장길리복합낚시공원)에서 내리면 된다. 장길리복합낚시공원은 구룡포항에서 약 6~7km 거리다.
*오어사에서 양포나 장길리복합낚시공원으로 바로 이어지는 대중교통편은 없다.
*문의 : 신안여객문덕사업소 054-293-0320
<음식>
오어사 주변 운제산장 백숙 054-291-4448
<숙박>
*포항시내 호텔
코모도관광호텔 : 054-241-1400
라마다앙코르포항호텔 : 054-282-2700
필로스호텔 : 054-250-2000
스테이인호텔 : 054-274-8300
*구룡포항 주변 민박(펜션)
엘마르펜션(구룡포해변) : 010-4611-3080
해궁펜션(구룡포해변) : 054-276-2509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3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