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마일하이씨티(One mile high city). 미국 중부의 콜로라도 덴버를 부르는 애칭이다. 록키산맥을 끼고 있는 덴버는 도시 전체가 해발 1마일(1.6km)의 높이에 있기 때문이다.

고도가 높다 보니 덴버에 처음 가면 어지럼증을 느끼기 쉽다. 건조한 지역이어서 탈수증도 잘 걸린다. 1년 중 250일 이상은 맑은 날씨가 이어진다. '덴버에서 비를 맞으면 5분만 참아라'란 우스갯소리도 있다. 실제로 5분만 지나면 비가 그치고 쨍쨍한 햇빛을 다시 볼 수 있다.

날씨와 고도 덕에 두 가지 특수시설이 덴버에 위치해 있다. 우선 미국 올림픽대표선수들의 훈련장이 덴버에 마련돼 있다. 운동선수들이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훈련하면 폐활량을 키울 수 있어서다. 날씨도 워낙 좋아 운동하기에 알맞다.

사시사철 맑은 하늘 덕에 공군사관학교와 북미항공우주방위군(NORAD)도 이곳에 위치해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덴버 옆 도시인 콜로라도스프링스에 위치해 있다. 기후와 상관없이 비행기가 쉽게 뜨고 내릴 수 있어 사관생도들의 비행 훈련에 안성맞춤이다. 북미항공우주방위군은 인공위성을 통해 캐나다와 미국을 비롯, 전세계 상공을 감시하는데 맑은 날씨가 최적의 조건을 제공해준다. 록키산맥의 험준한 지형은 방어에도 좋다고 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미국 동서문화센터가 공동주최한 한미언론인 교류 프로그램를 통해 미국 워싱턴DC와 콜로라도 덴버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워싱턴DC에 머물다 덴버로 이동하면서 미국의 시골도시에서 볼게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예술적 경험을 하게 됐다.

덴버 시내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는 16번가다. 16번가엔 각종 카페와 바, 쇼핑몰이 즐비하다. 젊은이들이 오가는 홍대거리나 압구정 로데오거리쯤 된다. 웃통을 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16번가에서 두블럭 떨어진 14번가에 위치한 콜로라도 컨벤션센터는 한국으로 따지면 코엑스, 킨텍스 쯤 되는 전시공간이다. 딱딱할 것만 같은 컨벤션센터 한켠엔 거대한 푸른 곰, 블루베어가 자리하고 있다. 블루베어의 포즈가 걸작이다. 유리벽을 사이로 컨벤션센터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위압적으로 만든 곰이 길거리를 내려다보던가 정문 좌우에 두마리의 곰이 위치해 입장객을 맞이하는 게 전형적인 모습이인데, 뒤로 돌아 건물 내부를 들여다보는 곰이라니 정말 기발하다.
 
예술의 도시 美 덴버가 부러운 이유

블루베어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고 있다'

블루베어의 작품명은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고 있다'(I see what you mean)다. 이 작품은 2005년 6월 캘리포니아 크레이슬러&어소시에이츠(Kreysler & Associates)란 건축예술디자인회사가 만들었다.

높이 40피트(12.2m)의 크기에 콘크리트와 철골 구조로 만들어진 블루 베어는 제작 비용만 42만5000달러(약 4억5000만원)가 들었다.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컨벤션 센터가 시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은 블루베어의 덕이다. 블루베어 덕에 컨벤션센터 자체가 시민들의 놀이터가 됐고 관광객들에게 인기코스가 됐다. 곰도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는 컨벤션센터 내부를 같이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도 든다.

블루베어는 1988년 페드리코 페나(Federico Pena) 덴버 시장이 만든 공공예술프로그램(Public Art Program)의 일환으로 조성한 펀드 덕에 가능했다. 페나 시장은 당시 100만달러짜리 이상의 건물을 짓는 건축주에게 1% 기금을 예술발전기금으로 내도록 했다. 이렇게 쌓인 펀드가 240만달러에 달했고 그 중 일부가 블루베어 프로젝트에 쓰였다. 덴버 공공예술프로그램은 시골도시 덴버를 색깔 있는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덴버공항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존 잭 스위거트 주니어의 동상은 덴버공공예술프로그램의 도움으로 런딘 형제가 만든 작품이다. 존 잭 스위거트는 덴버 출신으로 아폴로13호를 탔던 상원의원까지 지낸 우주비행사다.
 
예술의 도시 美 덴버가 부러운 이유

'실험적 비행'
덴버공항 곳곳에서 여러 예술 작품을 만날 수 있다. 140개의 종이비행기를 달아 놓은 '실험적 비행'(Experimental Aviation), '노틀담의 곱추'를 패러디한 '노틀 덴버'(Notre Denver), '아메리카', '왜 너를 사랑하지' 등 수많은 예술작품이 공항 곳곳을 꾸미고 있다. 25개의 작품이 전시돼 있으니 하나하나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덴버국제공항 홈페이지(www.flydenver.com/publicart)에 가면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덴버국제공항을 벗어나면 거대한 말 동상 '무스탕'을 만난다. 푸른 빛이 감도는 몸에 붉은 눈을 한 말 조각상이다. 콜로라도를 내달렸을 야생마의 에너지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루이스 히메네스라는 멕시코 조각가가 이 작품을 만들었다.

덴버 시내로 들어서면 예술의 향기를 더욱 듬뿍 느낄 수 있다. 16번가 곳곳엔 피아노가 설치돼 있다. 누구나 앉아서 피아노를 연주하면 된다. 피아노는 알록달록 색깔을 입혀 놓았다. 하루 종일 예술가들이 길거리에서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른다.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춘다. 이쯤 되면 길거리는 그대로 공연장이 되고 예술작품이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공공예술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작품은 경매를 통해 다시 일반인에게 팔린다. 주요 호텔 로비에 설치된 아크릴로 만든 버팔로상은 아마추어 예술작가의 작품이다. 공공예술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작품이 경매를 통해 일반에게 팔리고 이를 통해 마련한 펀드를 다시 아마추어 작가를 육성하는데 쓰는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졌다.

덴버 공공예술프로젝트는 약 300점의 작품을 후원했다. 이중 150점은 소장하고 있으며 나머지 150점은 민간에 되팔았다. 실외에 설치된 작품들도 있고 갤러리에서 보관하고 있는 작품들도 많다.

스마트폰을 활용해 가이드를 받으며 공공예술프로젝트가 후원한 작품들을 구경하는 가이드 투어도 마련돼 있다. 14번가와 16번가 일대를 걸어다니며 투어할수도 있고 자전거와 스쿠터를 활용하는 투어 코스도 있다. 15명이 예약하면 공짜로 가이드도 붙여준다.

서울에도 대형건물을 지을 때 건축비의 1%를 문화예술작품을 만드는데 쓰라는 규정이 있었다. 같은 값인데 덴버는 문화예술도시가 됐고 서울은 여전히 삭막한 콘크리트성이다. 예술산업 지원을 위한 체계를 다시 고민해볼 일이다. 4대강에 쓰인 십수조원의 자금 중 1%만 떼어도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