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6월1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정의로운 민생정부, 국민이 행복한 나라, 함께 잘 사는 대한민국 공동체의 꿈을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대선을 앞두고 여당과 야당에서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화두는 '행복'이다. 또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을 비롯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까지 복지 확대를 시대정신으로 제시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성장과 복지, 행복을 동시에 성공적으로 달성해온 국가로는 스웨덴, 노르웨이 등과 더불어 덴마크가 꼽힌다. 이들 국가는 국가경쟁력, 행복지수, 1인당 국민소득이 동시에 세계 최상위권이다.
국민은 행복하지만 복지가 취약해 객관적인 사회환경은 뒤떨어지는 국가나 복지는 충분하지만 국가경쟁력이 취약해 경제가 추락한 국가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덴마크는 바이킹시대에 한때 영국의 일부까지 다스렸고 그 후 스칸디나비아 3국을 통합해 광활한 영토를 가졌지만 몇차례 전쟁에 패하며 계속 영토가 줄어들어 현재는 한반도 5분의 1의 면적으로 줄어들었다.
대부분이 불모지인 척박한 환경의 작은 땅덩어리에서 근성과 열정으로 악조건을 극복하고 근면성실하게 일해 경제를 발전시켰다. 사회적으로는 국민적 합의를 기반으로 제도를 계속 고쳐가면서 시대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해 오늘에 이르렀다.
지난 4월 유엔의 세계행복보고서에서 150개국 중 가장 행복한 나라로 덴마크가 1위를 차지했으며 생활수준을 측정하는 지수인 인간개발지수도 매우 높다. 1인당 GDP는 6만달러가 넘으며 지니계수가 0.225로 빈부갈등도 적다.
◆창의성 길러주는 레고의 본산지
필자는 여수엑스포에 들렀을 때 국제관에서 덴마크관을 꼼꼼하게 둘러봤다. 안으로 들어가니 많은 아이들이 바닥에 앉아서 뭔가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엄청나게 많은 레고를 바닥에 벌려 놓고 놀 수 있게 해놓은 것이다. 그런 모습이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의 이미지에 어울렸다.
블록완구의 대명사로 통하는 세계적인 완구업체 '레고'라는 회사명은 목수 출신인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이 덴마크어로 '재밌게 놀자'를 뜻하는 '레그 고트'(leg godt)의 앞 두글자를 조합해 만들었다.
모든 레고는 동일한 블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조립할 수 있고 그러한 과정에서 재미를 느낀다. 미리 정답이 정해져 있는 형태를 조립할 수도 있지만 이 세상에 하나만 존재하는 개성 있는 형태로도 만들 수 있다.
6개의 블록만으로 조립할 수 있는 모양이 무려 9억1510만가지가 넘는다. 비록 현실에서는 실패하는 사람이 없는 이상적인 국가가 불가능하지만, 그에 다가서는 방법의 힌트는 이러한 놀이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조립식 장난감은 직접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창의성이 길러진다. 뿐만 아니라 블록 만들기는 아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조립하는 과정이 수반되므로 목표의식과 책임감도 길러준다.
즉 행복하게 놀면서 창의성이라는 경쟁력과 사회구성원으로서 필요한 소양을 기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덴마크가 행복과 복지를 달성하면서도 경쟁력 있는 선진국이 될 수 있었다고 본다.
학교도 창의적인 교육제도로 운영되고 다양한 교육으로 각자의 경쟁력을 만들어간다. 수업시간에도 창의적인 활동이 많이 하는데 교사와 학생들이 둘러 앉아 토론도 하고 실습도 한다. 팀 수업이 많아 개인간 경쟁에 앞서서 협동을 중시한다. 교육을 통해 쌓은 자신만의 노하우를 자신의 방식대로 풀어나가는 것이 주입된 지식대로만 행동하는 것보다 효율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 자신감을 가지고 1등에 집착하지 않는 분위기가 특징이라 하겠다.
![]() |
◆덴마크인이 행복한 이유
세계에서 가장 투명한 정치를 한다고 알려진 덴마크. 정부는 효율적인 운영 덕분에 행복할 수 있다고 덴마크인들은 말한다. 세금을 많이 내지만 이로 인해 셀 수 없는 혜택을 받는다. 의료비와 교육비를 책임지는 복지시스템을 통해 어린이와 노인이 보호받고 국민들은 안락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다.
유아교육은 물론 대학교까지 학비를 전혀 내지 않지만 대학 진학 비율은 40% 안팎에 불과하다. 대학 진학을 위한 인문고등학교 대신 기술학교나 상업학교 등 직업훈련학교에 가면 3~4년 교육을 받은 후 간호사, 기능공 등 각 전문분야로 진출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학벌에 따른 차별이 심한 사회분위기로 인해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하고, 그에 따라 고학력 대졸 실업자가 많은 것과 대조적이다. 덴마크에서는 담임교사가 9년간 아이를 지켜본 후 아이에 대한 관찰결과와 시험결과를 가지고 학부모 및 학생과 면담해 인문고와 직업훈련학교 진학 여부를 상의한다. 담임교사가 아이를 정확히 파악한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담임교사가 직업학교를 추천하면 학부모는 대개 그대로 받아들인다.
어느 직업이든 세금을 많이 내야 하기 때문에 연봉이 직업 선택에 있어서 그다지 중요한 조건이 아닌 경우가 많다. 대신 덴마크인들은 성취감을 주는 직업을 택한다. 이들의 평균 업무시간은 경제수준이 동등한 다른 국가보다 짧으며 최소임금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따라서 가족과 안락한 생활에 더 많이 투자할 수 있다. 또다른 특징은 '포스트 소비지상주의' 사회라는 점이다. 그들은 최신기기들과 패션아이템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다(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그렇다고 해서 덴마크의 패션 문화가 결코 뒤처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소유욕보다는 삶을 더욱 풍요롭게 가꾸는데 관심이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이들은 여전히 다양한 분야에서 높은 성취도를 보인다.
아직도 덴마크읜의 행복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면 그들의 활발한 사회생활을 연구해봐야 한다. 540만 인구 중 160만명이 스포츠클럽에서 활동하고 90% 이상의 덴마크인들이 다양한 사교클럽에 속해있다.
그렇다면 공동체의식이 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 내의 강한 신뢰감일 것이다. 크리스챤 비욘스코 오르후스대 경제학 교수는 '행복경제학' 전문가이며 특히 덴마크를 집중 연구해왔다. 그는 "덴마크와 노르웨이, 스웨덴은 전세계에서 가장 사회 신뢰도가 높으며 가장 정직한 곳"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복지 제도도 중요하지만 높은 수준의 사회 신뢰도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은 덴마크를 단순히 모방하려는 정부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식일 수도 있다. 높은 신뢰도의 배경에는 덴마크인들만의 문화적인 특성이 깔려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출처: INSPIRING(A magazine about the happiest people in the world: The Danes), 2012년 5월).
![]() |
◆안정된 덴마크 노동시장
대부분의 덴마크인들은 자신이 속한 노동조합을 통해 실업수당이 보장되며 노조에서 실업수당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다. 기존 월급의 50~90%를 실업수당으로 지급받는데 이런 점만 봐서는 안 된다. 사업주가 직원을 쉽게 해고할 수 있으며 법인세율도 유럽 주요국보다 낮고 규제도 적다. 유럽에서 법인 설립에 시간이 가장 적게 걸린다.
기업이 이윤과 효율성을 위해 사람을 쉽게 자를 수 있는 반면 잘린 사람은 국가가 책임지는 정책이다. 대신 실업수당 대상자들은 정규적으로 실업수당 신청을 해야 하며 실직자들의 직무능력 향상을 위해 국가에서 권장하는 무료 교육과 채용 제의에 응해야 한다는 점도 함께 봐야한다.
정부가 제공하는 일자리를 특별한 이유 없이 외면하면 수당 지급이 중단된다. 따라서 실직자들이 마냥 놀고먹을 수만은 없다. 정부가 연결해주는 곳에서 일하거나 그러고 싶지 않으면 일하고 싶은 곳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제도를 택해 같은 일을 하는 한 회사에 오래 있어도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 임금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등급'으로, 실직자는 직업훈련학교에 다녀 '기술등급'을 올리면 된다.
덴마크인은 근면·성실하고 기술수준이 뛰어난 우수한 노동력으로 평가받으며 노사관계도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안정적이다. 주 37시간 근무에 연간 6주 휴가가 주어져 가족친지들과 어울리는 삶에 큰 가치를 둔다. 출산휴가는 12개월로 산모와 남편 모두 이 기간 중에서 나눠 휴가를 신청할 수 있다. 예컨대 엄마가 출산휴가를 6개월 쓰고 난 뒤 남은 6개월을 남편이 써도 된다.
덴마크인들은 사업수단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조사에서도 밝혀진 바 있다. 포브스에서 '경영투명성' 및 '사회공헌도' 등을 따져 '세계 100대 존경받는 기업'을 선정한 결과 덴마크의 기업이 10개나 포함된 바 있다. 바이오 연료와 풍력발전 에너지 생산수준은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덴마크는 글로벌 비즈니스환경 순위에서도 최고 점수를 받고 EU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국가로 꼽힌다.
◆많은 세금을 기꺼이 내는 이유
덴마크인들은 무려 월급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 GDP 대비 세금비율이 48.9%에 달한다(한국은 28.7%, 미국은 28.3%). 여론조사에서 더 많은 복지를 위해 세금을 더 내겠느냐는 질문에 3분의 2 이상이 복지혜택을 더 얻을 수 있다면 세금을 더 내겠다고 답했다.
세금은 돈 많은 다른 사람과 기업이 내고 자신은 혜택만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거나 수입을 정직하지 않게 신고해 탈세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덴마크식 복지국가가 불가능할 것이다.
덴마크의 공립학교 학비는 모든 고등교육기관을 포함해 전액 무료다. 덴마크인들은 12년 무상교육을 받은 대가로 사회에 진출한 후 일하면서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즉 공짜가 아니라 자신이 내는 세금으로 자신이 복지혜택을 받는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다수의 덴마크인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배경에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깔려있다. 덴마크 정치인들은 효율적으로 세금을 활용하려고 항상 연구 중이며 활발한 노동시장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실업률이 낮고 근로인력이 많을 때 세금도 많이 걷힌다. 활발한 노동시장은 건강한 국가경제의 밑바탕으로, 국민이 장기적으로 내는 세금이 없이는 복지시스템도 제 기능을 못하는 법이다.
덴마크는 고등교육을 받은 인력이든 고급기술이 없는 인력이든 모두 다양한 직업의 수요가 있어 효율성 최적화를 노리는 노동시장을 구축했다. 적지 않은 양의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함에 따라 평균 출근시간은 오전 9시 퇴근시간은 오후 5시다. 저녁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는 광경은 이상하게 보일 정도다.
◆한국이 배워야 할 덴마크의 강점
덴마크는 작은 반도국가라는 점, 자원이 풍부하지 않다는 점, 무역량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2에 달해 무역의존도가 높다는 점 등이 한국과 유사하다.
1973년 석유파동 당시 덴마크는 에너지의 99%를 수입했지만 20년간 다각적인 에너지 저소비 및 수입대체 정책을 펴 1997년 에너지 자급을 이룩했다. 같은 기간 덴마크의 경제규모는 두배로 성장한 반면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늘지 않았다. 에너지 소비효율을 그만큼 높였다는 얘기다.
열병합 발전과 지역난방, 환경세 부과, 풍력과 태양광을 비롯한 신재생 에너지 투자 등의 정책을 펼쳐 나갔다. 인구보다도 자전거가 많다고 할 정도다.
덴마크인의 몸매가 다른 서구인에 비해 훨씬 날씬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에너지 절약과 에너지 효율적 활용에 힘써 온 것에 한국은 배울 부분이 많다. 지난 3월에는 덴마크 의회가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에너지 정책'을 의결하면서 녹색 에너지 선두주자로서의 입지를 더욱 굳혔다.
지난해 5월 이명박 대통령이 덴마크를 공식 방문해 두 국가간 녹색성장동맹이 체결됐으며 올해 5월에는 프레데릭 왕세자의 공식 방한기간 중 제2차 회의가 진행됐다.
한·덴 녹색성장 동맹으로 녹색성장 동력을 촉진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덴마크의 높은 국민소득과 높은 행복지수가 어떻게 동시에 가능한지를 한국에서 벤치마킹하는 것도 중요하다. 오랜 세월 노사가 협력하는 전통과 평등주의에 입각해 튼튼한 사회적 안전망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왔음을 본다면 덴마크의 고용모델과 복지모델을 당장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가야 할 방향성 설정에는 참고가 될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믿을 수 있습니까"라는 설문에서 EU 국가 중 덴마크인의 신뢰도가 6.99로 가장 높았음에 주목해야 한다.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가 6.18,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7.13이며 국민이 정부와 제도를 믿는 신뢰의 선순환이 행복한 국가의 바탕이 됐다.
개인간 신뢰도도 높을 뿐 아니라 누구나 정직함을 기본자세로 여긴다. 어릴 때부터 집과 학교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남을 존중하고 남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