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총수의 보기 드문 법정구속이 최 회장의 결심공판을 앞두고 이뤄졌다는 점과 최근 정치권의 이슈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로 쏠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여론 역시 사법부의 재벌 때리기에 동조하고 있어 최 회장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 회장은 현재 배임과 횡령 혐의를 받고 있다.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투자된 SK텔레콤 등 그룹 계열사 자금 497억원을 횡령한 사건에 개입했는지 여부와 SK 임원에게 성과급을 지급하고 이를 다시 현금으로 돌려받았는지 여부가 사건의 쟁점이다.
최 회장 측은 합법적 투자이며 검찰의 오해라는 입장이지만 검찰은 최 회장이 사건을 주도했다며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만약 검찰 측의 주장대로 최 회장의 개입여부가 밝혀진다면 이전과 다른 강도 높은 형량이 구형될 수도 있다.
마침 김 회장의 법정구속이 있던 날 최 회장은 22번째 공판에 불려갔다. 이르면 9월 검찰 구형을 앞둔 최 회장의 호재와 악재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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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재=사회적 기업 이미지+하이닉스로 증명된 경영 능력
김승연 회장의 법정구속이 있기 이틀 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례적으로 기업 총수의 실명을 거론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반 총장은 14일 유엔글로벌콤펙트(UNGC) 한국협회 간담회에서 “최 회장이 리우 회의에서 사회적 기업을 확장시켜 나가기 위한 모델로 제안한 글로벌 액션 허브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평가했다.
최 회장이 내놓은 아이디어가 적극적인 국제문제 해결을 위한 UNGC 가입 기업의 좋은 선례라는 의미였다. 글로벌 액션 허브는 사회적 기업 및 투자자간 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정보기술 플랫폼이다.
SK그룹은 그간 사회적 기업 이미지 구축에 힘을 쏟아왔다. 2010년 대기업에서 처음으로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고 설립하는 사회적기업사업단을 행복나눔재단 내에 설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500억원 규모의 기금조성을 통해 지원하겠다는 계획인데, 여기에 최 회장의 제안이 힘을 발휘했다는 후문이다.
나아가 직접적인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기도 한다. 방과 후 학교 위탁사업을 하는 행복한학교재단, 출소자들의 기술 교육과 실무경험을 쌓는 행복한뉴라이프재단, 결식아동에게 도시락을 제공하는 행복도시락급식센터 등은 SK가 자랑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비인기 스포츠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도 최 회장이 2012 런던올림픽에서 드러난 공적이다. 세계 1위 국가로 급부상한 펜싱을 비롯해 값진 은메달 두개를 따낸 수영, 악조건 속에서도 4강이라는 감동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낸 여자핸드볼 등은 최 회장이 지원하고 있는 스포츠 분야다.
올해 인수한 하이닉스에 대한 평가도 자랑거리다. 지난해 3분기부터 이어온 적자를 2분기부터 228억 흑자로 전환했고 투자도 20% 늘은 4조2000억원으로 확대시켰다. 그 사이 미국 비메모리반도체업체인 람스와 이탈리아 랜드 플래시 개발업체인 아이디어플래시를 인수했다.
SK그룹은 SK하이닉스의 성장에 카리스마, 성장전략, 스킨십이라는 최 회장의 '3강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다.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놓인 기업을 6개월만에 변모시킨 최 회장의 리더십이 재계에 필요하다고 법원에 항변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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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재=정치권 재벌 타도 바람+발목잡는 과거
하지만 김 회장이 법정구속됨에 따라 사회적 기여도 법원의 판단에 무용지물이 아니냐는 시각이 많아졌다. 사격 지원으로 올림픽 호재를 누리고 다양한 공익활동을 했음에도 법정구속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그간 공익적 활동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 미국의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 연방교도소에 수감된 로버트 김의 생활비를 수년간 지원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또 천안함 사태로 인해 생겨난 유가족을 한화 계열사에 특별 채용하기도 했다.
그룹 운영 역시 최 회장과 견주어 부족함이 없다. 최근 9조원의 이라크 재건사업을 수주하는 등 굵직한 행보를 이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회장은 결국 법정구속이라는 상황을 면치 못했다.
정치권의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바람도 최 회장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민주통합당이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법안발의를 당론으로 내세운 데 이어, 여권의 대선주자인 박근혜 새누리당 전 대표 역시 “재벌 총수의 사면이 법질서 바로 세우는데 악영향을 준다”고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김 회장의 1심 판결은 정치권이 재벌총수의 횡령, 배임 등에 실형을 선고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입법 추진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첫 사례여서 향후 판결도 비슷한 방향으로 흐를 공산이 커진 상태다. 이번 재벌총수의 사례가 정치권이 추진하는 법안의 소급적용 대상은 아니지만 김 회장의 판결에 영향력을 줬다는 것이 정·재계의 공통된 견해다.
과거 최 회장이 비슷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는 것도 악재다. 2003년 최 회장은 1조5000억원 규모의 분식 회계 혐의로 구속 기소돼 2008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수감 78일만에 그를 특별 사면했다.
검찰의 주장대로 사면 이후 곧바로 최 회장이 횡령·배임을 했다면 검찰은 낮은 구형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존 범죄행위에 대한 반성이 없다는 이른바 ‘괴씸죄’가 적용될 수 있어서다. 검찰 구형은 법원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검찰은 7월에 열린 김 회장의 결심공판에서 징역 9년에 벌금 1500억원을 구형했다. 통상 집행유예가 선고되려면 3년 이하의 구형이 나와야 한다.
최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의 ‘자전거 사고’ 역시 최 회장 일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최 부회장은 이번 횡령 사건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6월 보석으로 풀려난 뒤 6일 만에 자전거 충돌사고를 일으켜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법정 출석 당시 최 부회장이 목발을 짚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고, 그의 건강상태가 법원의 보석 허가에 영향을 줬던 상황을 고려하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여론은 법원이 재벌에 공정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며 사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형제를 동시에 구속하지 않는다’는 최 회장의 불구속 사유가 화제가 되기도 했던 SK 총수일가의 횡령 배임 사건이 어떻게 결론지어질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