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8곳 공모형 PF사업 줄줄이 좌초… '정상 진행' 손꼽을 정도
 
사업규모 31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면서 다른 공모형 프로젝트파이낸싱(PF) 개발사업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공모형 PF 개발사업은 모두 28곳. 수조원대 대형프로젝트 사업들 중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공모형 PF 개발사업은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토지에 민간 출자사들이 개발에 참여하는 민관합동개발방식을 말한다. 장밋빛 청사진을 그렸던 공모형 PF 개발사업들은 부동산경기 침체로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속속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서부이촌동 주민들이 용산개발사업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다.
서부이촌동 주민들이 용산개발사업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다.

무너지는 '마천루의 꿈들'
◆전국 30여 PF사업장 "나 어떡해"

용산 개발사업 부도 이후 업계에서 가장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공모형 PF 개발사업은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랜드마크 빌딩사업'이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빌딩(133층, 656m)을 세우고자 했던 당초 계획과 달리 해당 부지는 4년째 텅 빈 채로 남아있다.

시행사인 서울라이트타워가 토지대금을 치르지 못하고 사업자로 선정됐던 대우건설컨소시엄마저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업을 포기하면서 취소절차가 진행 중이다. 서울시가 지난해 6월 용지 매매계약을 해지해 사업은 표류 상태에 놓였다. 이후 사업에 참여한 업체들이 층수를 70층으로 낮추는 등 수정안을 내놓기도 했으나 서울시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속철도(KTX) 오송역 일대를 개발하는 '충북 오송역세권 사업'도 용산쇼크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충북도에 따르면 도와 충북개발공사는 오송역세권 사업을 위한 투자자 공모에 나섰으나 신청한 업체는 한군데도 없었다. 유력한 투자자로 거론됐던 삼성물산과 롯데관광개발은 용산 개발사업 무산의 여파로 사업참여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상태다.

충북도 관계자는 "용산 개발사업이 차질을 빚으면서 기업들이 투자에 더욱 신중한 입장을 보여 투자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추진한 사업이 오히려 애물단지로 전락할 위기"라고 말했다.

17조원 규모의 인천 '송도 랜드마크시티 사업'은 상징인 인천타워가 2008년 이후 지금까지 한층도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천안시가 발주한 4조6000억원 규모의 '천안국제비즈니스파크 개발사업'도 출자사들이 추가 투자를 꺼리면서 사업비 조달에 실패해 사실상 무산됐다.

이밖에도 대다수의 대형프로젝트들이 출구전략을 찾지 못하고 있어 전국 각지에서는 '제2의 용산 디폴트 사태'가 도미노 현상처럼 발생하지 않을지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청라 국제업무타운
청라 국제업무타운

송도 랜드마크시티
송도 랜드마크시티
◆타협…희생…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수많은 대형프로젝트들이 쓰러져 가는 가운데 반전에 성공한 곳도 존재한다. 5조원 규모의 '판교 알파돔시티 사업'이 대표적이다. 이 사업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자금 조달 문제로 중단될 위기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민간 출자사들의 고통 분담과 함께 LH공사가 적극 뛰어들어 해결책을 마련했다. 토지와 건물 선매각 등으로 6368억원을 조달해 토지대금을 납부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 1월 성남시로부터 사업승인 변경 인가를 받아 올해 안으로 1단계 사업인 주상복합아파트 착공과 분양에 들어갈 예정이다. LH공사·대한지방행정공제회·롯데건설·현대백화점 등 14개사가 출자해 2018년 완공 목표로 사업을 시행한다.

같은달 충남 아산 '배방 복합단지개발사업'과 경기 고양시 '한국국제전시장(킨텍스) 복합상업시설Ⅱ 개발사업'도 국토부로부터 PF 정상화 대상 사업으로 지정돼 다시 기지개를 켰다.

대구 동구에 위치한 '이시아폴리스'는 주상복합용지 일부를 제외한 토지 분양이 90% 이상 체결됐으며 사업이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다. 지난해 4차 단지까지 3600여 가구를 모두 분양했다. 대구시는 2015년 안에 이시아폴리스 조성사업 완료와 법인 청산 목표를 세웠다.
 
◆사업정상화 '출구' 있을까

국토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 28곳에서 추진 중인 공모형 PF 개발사업들은 사업비 규모만 77조2400억원이다. 정부의 올해 1년 예산인 342조원의 22.5%에 달하는 규모다. 이 사업들이 모두 백지화될 경우 여기에 속한 이해당사자들의 막대한 피해가 우려된다.

위기감을 느껴서일까. 공모형 PF 개발사업들의 연쇄 부도를 막기 위해 국토부가 직접 조정에 나섰다. 정부는 작년 한해 동안 '공모형 PF 조정위원회'를 운영하며 두차례의 사업조정 협의를 통해 7개 사업을 조정 대상으로 선정하고 사업정상화를 추진 중이다.

조정위원회에서 내놓는 조정안을 통해서는 두가지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첫번째는 사업 해제다. 여러해 동안 난항을 겪어왔던 파주 '운정복합단지사업'은 지난해 조정위원회를 거쳐 사업 해제가 결정됐다. 국토부로부터 사업 해제를 요구받은 최초의 프로젝트였다.

두번째로는 이해당사자들이 손실을 분담하고 사업을 풀어나가는 계기가 마련되는 결과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다만 조정안은 법적효력이 없기 때문에 조정안만으로 이들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업계에선 민간 출자사들이 손실을 모면하려 하기보단 투자에 따른 책임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형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이해당사자들이 고통을 분담하지 않으면 어려운 시점이 됐다"며 "각 사업이 '제2의 용산 디폴트 사태'를 맞이하지 않으려면 국토부가 조정자 역할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참여 공공기관과 민간 기업들의 양보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