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예가로도 유명한 신영복 선생은 ‘독서는 삼독(三讀)’이라고 했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으로 필자를 읽어야 하며, 최종적으로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폴 크루그먼의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는 저자 자신의 말대로 그가 가장 잘 알고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미국의 경기침체와 그 해결책을 논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우선 현재의 미국 경제가 당면한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학 일반에 대한 지식까지도 얻을 수 있다.
이 책의 더 큰 장점은 우리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없는 부분까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신영복 선생의 ‘삼독’을 실천하게 만든다. 사실 이것은 고통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회자되는 말처럼 고통은 예지를 통해 가벼워지고, 또 사라지기도 한다. 그런 과정이나 해답을 이 책은 제시하고 있다.
“회복이나 완전 붕괴의 조짐 없이 오랫동안 비정상적인 흐름이 만성적으로 이뤄지는 상황.” 존 메이너드 케인즈가 1930년대를 묘사한 표현인데 '슈퍼 케인즈언'이라고 불리는 폴 크루그먼의 말대로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처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표현하는 듯하다. 크루그먼은 곳곳에서 케인즈를 인용한다. 이 책 전반을 통해 케인즈는 크루그먼의 선지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해결책도 역시 케인즈다. “긴축재정을 펼쳐야 할 때는 침체기가 아니라 호황기다”라는 케인즈의 말이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의 한 줄 요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설의 코미디 배우인 피터 셀러스의 마지막 영화로 <뉴욕타임스>가 뽑은 최고의 영화 1000편에 든 <찬스(Being there)>라는 영화의 명대사가 서두에 나온다. “뿌리가 완전히 죽지 않았다면 정원에 있는 식물들은 모두 괜찮을 겁니다. 봄이 되면 다시 살아날 테니까요.” 우연히 만나게 된 대통령이 경제정책에 대해 조언을 해달라는 말에 정원사 찬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을 버냉키의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는 표현과 연결시키는 폴 크루그먼이 가지고 있는 대중적 글쓰기의 매력도 이 책을 읽는 재미의 하나이다. 약간의 조롱조로 미국 경제를 주무르는 이에 대한 케인즈언 폴 크루그먼의 공격이 시작된다.
재미와 별개로 버냉키가 얘기한 새싹은 미국경제에 보이지 않는다. 다른 나라, 특히 유럽의 몇몇 국가들에서는 새싹은커녕 뿌리가 뽑히고 있는 실정이다. 크루그먼의 이 책은 대부분 미국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 직접적으로 언급된 부분은 없지만 한국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3%대로 고착된 경제성장률, 3%대의 공식 실업률과 대비되는 10% 이상의 실질 실업률, 사회 초년생 40%가 사실상 실업 상태인 한국의 현실은 실제 실업자 규모가 전체 노동력 인구의 15%에 이른다는 미국의 실정이 남의 나라 얘기처럼 들리지 않게 한다. 게다가 저자가 인용한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실업률이 증가한 이유는 일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일하려는 의지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보수적 경제학자의 말은 우리 사회의 소위 지도층 일각의 유사한 발언들을 연상시킨다.
실업사태는 공과금을 내지 못하고 심한 경우 집을 빼앗기는 실제 생활에서의 물리적 불편 이외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상처를 준다. 자신이 받았던 교육과 상관없이 임금 수준을 낮추게 되고, 이는 교육 부문에 영향을 미치며 미래를 향한 투자를 위축시킨다. 소비 여력이 축소되면서 기업들 역시 생산설비 확장에 투자하지 않고 기존의 시설마저 감축시킨다. 실업으로부터 시작해 연쇄적으로 또는 동시에 발생해 장기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히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즉각적인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폴 크루그먼 지음 | 엘도라도 펴냄 / 1만6000원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