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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가운데)과 경제 관계 부처 장관들이 지난 5월1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합동브리핑을 갖고 벤처창업 자금생태계 선순환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서울=뉴스1 이광호 기자) |
#. 2년 전 엔젤투자를 받기 위해 인터넷 중개사이트를 방문한 박원식씨(41·가명)는 5만원을 결제한 후 게시판에 투자자를 찾는다는 글을 올렸다. 얼마 후 박씨는 이 사이트를 통해 당시 엔젤투자가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점과 그나마 이뤄지고 있는 투자도 대부분 지인관계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으나 "투자자를 찾을 시간에 대출이나 정부자금을 받아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이라는 답변만 들었다. 그는 출발부터 삐걱댈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00년 이후 벤처붐이 사그라지면서 드리워진 투자 암흑기에 서서히 햇볕이 스며들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제2의 벤처붐을 일으키기 위해 금융과 세제, 공정거래 등 범정부차원의 지원과 혜택을 제시해서다.
새정부는 벤처·창업을 살려야만 창조경제 실현이 가능하다고 보고 이 같은 결단을 내렸다. 벤처·창업 활성화대책은 이미 부처별로 수차례 나왔지만 범정부적으로 나선 것은 처음이라 벤처업계는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물 흐르듯 순환하는 생태계 마련
사실 지금까지의 벤처자금 생태계는 '창업→성장→회수→재투자·재도전'의 단계별 순환이 꽉 막혀있는 상태였다. 자금지원 방식과 규모면에서 실효성이 떨어진 까닭이다.
초기 창업단계에서는 고위험에 따른 투자 인센티브가 부족하다. 유동자금은 넘쳐나지만 지원이 부족해 벤처인들은 자금공급에 불만을 가져왔다. 성장단계가 정체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회수단계에서는 코스닥 상장 외에 벤처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통로가 없다. 코스닥 상장마저도 14년이나 걸리기 때문에 사실상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재투자·재도전 단계에서도 성공 벤처기업인의 재투자 여건 및 실패 기업인의 재기 기회가 부족해 벤처자금의 생태계 내 환류가 막히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 5월15일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벤처·창업 자금생태계 선순환 방안'을 내놓았다. '창업→성장→회수→재투자·재도전'의 과정을 물 흐르듯 막힘없이 순환시키는 내용이 골자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벤처·창업기업의 자금조달 구조를 융자에서 투자중심으로 변경 ▲벤처 1세대 등 성공한 선배들의 후배세대에 대한 재투자 및 멘토링 기반 구축 ▲엔젤투자 활성화, 기술혁신형 M&A 활성화, 코넥스 신설 등을 통한 성장단계별 맞춤형 투자·회수시스템 마련 ▲창업 플랫폼의 다양화, 우수인력 유입, 기술탈취 방지, 재도전 환경 개선 등이다.
◆선순환 위한 전례 없는 대책들
이처럼 정부는 벤처·창업 자금 생태계 선순환을 위해 전례 없는 강력한 대책을 제시했다.
우선 정부는 엔젤투자에 대한 세제혜택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소득공제비율 및 한도를 50%까지 확대하고 투자대상도 '기술성 우수 창업기업'까지 넓힐 방침이다. 현재는 소득공제비율(30%)과 한도(40%)가 낮고 투자대상도 벤처기업에 한정돼 있다.
성공 벤처기업 등이 후배 기업에 투자하기 위해 펀드를 조성하는 경우에는 모태펀드를 통해 최우선적으로 출자해 1000억원 규모의 '후배육성펀드'를 조성하게 된다.
2조원 규모의 성장사다리펀드도 마련한다. 올해 정책금융공사와 산업은행, 기업은행에서 5000억원, 청년창업재단에서 1000억원을 출자할 계획이다. 또 민간에서 1조4000억원을 투자받아 총 2조원 규모의 성장사다리펀드 재원을 조성할 예정이다. 이후 3년간 조성목표액은 정책금융 1조8500억원, 민간 4조1500억원 등 총 6조원이다.
이외에도 정부는 코스닥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한국거래소 이사회로부터 코스닥을 분리시키고 상장요건을 완화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코스닥시장 활성화는 벤처 투자 심리에 긍정적이다. 상장된 벤처기업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주식을 매도해 투자금을 쉽게 회수할 수 있어서다.
또한 대기업이 우호적 M&A로 중소기업 대주주가 되는 경우 피인수기업의 계열사 편입을 3년간 유예한다. 절차에 있어서도 소규모 및 간이합병 적용범위를 확대한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벤처·창업 생태계 투자라는 것은 고위험 영역이고 창업초기로 가면 갈수록 위험부담이 크다"며 "하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형태의 펀드를 조성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부담 측면에서 상당부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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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벤처동아리에서 강연하는 남민우 벤처기업협회장(머니투데이=이기범 기자) |
◆새정부 대책에 환호하는 벤처기업
정부가 제2의 벤처붐을 일으키기 위해 금융과 세제, 공정거래 등의 지원과 혜택을 제시하자 전국 2만2000여개의 벤처기업들은 기대감에 들썩이고 있다.
지난 5월21일 전국벤처기업단체협의회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벤처·창업자금 생태계 선순환 방안'을 환영한다며 벤처기업인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협의회는 "정부가 발표한 엔젤투자 활성화, 코스닥의 독립성 강화, 코넥스 신설 등은 그동안 벤처기업인들이 실제 바라는 건전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책방향"이라며 "전국의 2만2000여개의 벤처기업들은 이번 정부의 정책방향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벤처기업인들은 정부의 이번 방안으로 자금흐름에 물꼬가 트일 것을 확신하고 있다. 또한 '창업→성장→회수→재투자·재도전'의 선순환에 협의회가 앞장서겠다는 의지도 확고하다고 밝혔다.
한편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이번 대책으로 향후 5년간 벤처·창업 생태계로 유입되는 투자자금은 당초 전망치 6조3000억원에서 10조6000억원으로 4조3000억원 증가할 전망이다.
아울러 벤처기업의 매출과 고용은 각각 1.7%포인트, 0.8%포인트 증가하고 엔젤투자자는 2012년 2608명에서 2017년 1만2000명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측된다. 연간 벤처투자도 2012년 1조2000억원에서 2017년 2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벤처·창업과 관련해 전례 없는 범정부차원의 지원과 혜택이 제시되면서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며 "해당 부처도 이번만큼은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어 13년 동안 지속된 벤처 암흑기는 머지않아 지나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8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