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아모레퍼시픽 우선주 전량 증여 놓고 "세금 적게 내려 꼼수" 논란


화장품업계 1위 아모레퍼시픽을 진두지휘하는 서경배 회장(50)이 요즘 수난을 겪고 있다. 방문판매 대리점(특약점)을 둘러싼 밀어내기와 인력 빼가기, 특약점주 감시 등 불공정 행위 의혹이 불거져 화장품업계의 '슈퍼 갑'으로 떠오른 탓이다. 정치권까지 가세해 아모레퍼시픽의 '반칙행위'를 규탄하는 움직임이 한층
 거세지는 분위기다.

회사 자체적으로는 시원찮은 실적이 서 회장의 심기를 건드린다. 지난 1분기 영업이익에서 LG생활건강에 추월당한 게 대표적이다. '절대 1위'의 위용을 자랑하던 아모레퍼시픽으로서는 덜미를 제대로 잡힌 셈.

시절이 하수상해서일까. 최근 서 회장은 장녀에 대한 주식증여를 놓고 또 한번 곤경에 처했다. 이른바 '증여세 논란'이다. 딸에게 주식을 주면서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한 '꼼수'를 부렸다는 게 이번 논란의 포인트다.

◆ '딸의 이름으로'…세금 적게 내고 차익은 크게?

최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 회장과 장녀 민정씨, 태평양복지재단 등 특수관계인은 지난해 4월 국세청으로부터 약 150억원의 증여세 부과 통지를 받았다.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편법행위'가 드러나서다. 다만 서 회장 측은 과세 전 적부심을 통해 80억원으로 감면받아 납부한 뒤 지난 6월 감사원에 조세 불복 심사를 청구했다.

아모레퍼시픽은 2006년 6월 회사를 지주사인 아모레퍼시픽그룹(당시 태평양)과 자회사 아모레퍼시픽으로 인적분할했다. 두 법인의 분할비율은 아모레퍼시픽그룹이 37.9%, 아모레퍼시픽은 62.1%. 기업분할 이후 지주회사인 아모레퍼시픽그룹은 현물 출자를 통한 공개매수로 아모레퍼시픽 지분 35.5%를 확보해 지주회사 요건(자회사 지분 30% 이상 보유)을 갖췄다.

이로 인해 서 회장은 두 회사 지분을 각각 31.7%씩 갖게 됐는데, 이후 2006년 12월 자신에게 배정된 아모레퍼시픽 우선주 20만1448주를 당시 중학생이었던 민정씨에게 전량 증여했다. 주당 20만6000원으로, 이를 환산하면 시가로 415억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민정씨는 이듬해 3월 증여받은 이 우선주의 45%인 8만8940주(약 183억원)를 증여세로 냈고, 나머지 11만주는 지주회사인 아모레퍼시픽그룹에 현물출자하고 그 대가로 신형우선주 24만1271주(교환비율1 대 2.15)를 받았다. 이로써 민정씨는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우선주 26.48%를 보유하게 돼 당시 서경배 사장이 보유하고 있던 우선주 13.5%보다 많은 우선주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논란은 지주회사 전환 당시 아모레퍼시픽 우선주의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했다는 데서 불거졌다.

서 회장이 민정씨에게 증여한 아모레퍼시픽 우선주는 아모레퍼시픽그룹 신형우선주로 교환해갈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여기에 아모레퍼시픽그룹 신형우선주는 구형우선주와는 달리, 10년만 보유하면 보통주로 자동전환된다. 또 최저 '연 3%'의 배당수익률까지 주어지는 전환우선주다. 이 대목에서 서 회장 일가가 '시세차익'을 충분히 챙길 수 있다는 가정이 만들어진다.

국세청 역시 증여세 부과를 통지하면서 "지주사 전환시 주식시가 평가가 잘못돼 서 회장이 시가보다 싸게 주식을 매입해 이익을 얻었다"는 이유를 들었다.

서경배 아모레 회장의 지극한 '장녀 사랑'
◆ 장녀에 이니스프리·에뛰드 주식 증여…경영승계 해석

서 회장과 민정씨간 주식 증여는 지난해에도 두번에 걸쳐 이뤄졌다.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민정씨는 지난해 말 기준 아모레퍼시픽그룹 브랜드숍 자회사인 이니스프리와 에뛰드하우스(이하 에뛰드) 지분을 각각 18.18%, 19.52% 보유 중이다.

2011년 12월31일까지 서 회장의 이니스프리와 에뛰드 지분율이 각각 18.18%, 19.52%였으니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으나 지난해 서 회장이 자신이 갖고 있던 양사의 지분 전량을 민정씨에게 증여했다는 가설이 가능해진다.

이 경우에도 민정씨가 증여세를 얼마나 냈는지가 관심거리다. 현행법상 증여세는 30억원을 초과하는 금액의 50%에 10억4000만원을 더해 산출한다. 에뛰드와 이니스프리는 2011년 상각전영업이익(EBITDA)으로 각각 240억원과 260억원을 기록했는데 양사의 성장세를 감안하면 보수적으로 가치를 잡아도 EBITDA 대비 10배는 충분히 넘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따라서 2011년 EBITDA 기준으로 에뛰드와 이니스프리 가치가 최소 2400억원과 2600억원이 된다고 보면 결국 민정씨의 지분매입 가격은 증여세 대상인 30억원을 초과하는 것으로 추론된다. 한편에선 민정씨가 증여세를 에뛰드 등의 지분 현물이 아닌 현금으로 납부했다는 점도 생각해볼 수 있다.

◆ 장녀엔 주식 몰아주고 차녀는 '지분율 0%' 왜?

민정씨에 대한 서 회장의 이 같은 '증여 행보'를 놓고 재계는 아모레퍼시픽의 경영승계가 본격화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지만, 한가지 재미있는 부분이 발견된다. 장녀와 차녀에 대한 서 회장의 표면적인 차별(?)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서 회장은 슬하에 장녀 민정씨(22)와 차녀 호정양(18)을 두고 있다. 그런데 민정씨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시가총액이 1591억원인데 반해, 호정양은 아모레퍼시픽 관련 주식을 단 한주도 갖고 있지 않다. 4살 어린 차녀에게는 서 회장이 아직 아무런 증여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민정씨의 지분율은 앞서 언급했듯 아모레퍼시픽 그룹이 26.48%(보통주 환산 지분율 2.71%), 아모레퍼시픽이 0.01%이며 이니스프리와 에뛰드도 각각 18.18%와 19.52%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민정씨는 이 같은 지분을 바탕으로 올해 아모레퍼시픽 계열사에서 총 25억2000만원 가량의 현금배당을 챙겼다.

의아스러운 점은 민정씨 외가(外家) 소유의 농심홀딩스 주식과 관련 민정씨와 호정양이 똑같이 1만2070주(지분율 0.26%)를 보유하고 있는 것과 달리, 정작 아버지 회사에서 만큼은 철저히 장녀와 차녀가 지분율에서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는 부분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