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누구 손 들든 '삼성 勝'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갤럭시S·S2, 갤럭시탭 10.1의 미국 수입금지 판정이 내려짐에 따라 전세계 IT업계의 시선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여부에 쏠렸다.

지난 8월4일 오바마 행정부는 삼성 특허를 침해한 애플 제품의 미국 수입을 금지한 ITC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는 지난 6월4일, 3G 이동통신 기술을 사용하는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구형 일부 모델이 삼성전자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해당제품의 미국 내 수입금지 명령을 내린 ITC 결정에 대한 대응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한 사실이 알려지자 세계 주요언론들은 특허전에 보호무역주의로 대응한다며 미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현재 전세계 IT업계는 ITC의 삼성제품 수입금지 결정에 미 행정부가 어떠한 행보를 보일지, 그 움직임으로 양사간 특허전이 어떤 국면을 맞게 될지에 집중하고 있다.

◆26년만에 꺼내 든 거부권, 엇갈리는 시각

오바마 행정부의 거부권 행사에 대한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특허전에 보호무역주의 카드를 내밀었다는 시각과 문제 많은 특허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시도라는 시각이 엇갈리고 있는 것.

전자의 경우 미 행정부가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삼성 특허를 침해한 애플 제품의 미 수입금지 조치에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게 핵심이다. 앞으로 오바마 행정부가 애플 특허를 침해한 삼성제품의 수입을 금지한 ITC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공정성과 형평성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이 연장선상에 있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다른 나라와의 거래에도 확산될 경우 결국 세계경제가 폐쇄적인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후자의 경우 오바마 행정부는 올해 초부터 특허제도 개선정책을 발표해왔으며 최근 거부권을 행사한 것 역시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관점이다. 미 정부가 소위 '특허괴물'들의 표준특허를 악용한 소송으로 '혁신'이 지체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된다고 보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를 야기하는 현 특허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얘기다.

표준특허란 ISO, ITU, ETSI 등의 표준화기구에서 제정한 표준규격에 포함돼 있는 특허로, 제품을 제조·판매·서비스할 때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특허다.

한국특허정보원 표준특허센터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ISO·JTC1·IEC·ITU-T·ITU-R·IEEE ETSI 등 7개 주요 표준기구에 등록된 표준특허는 4만1487건(지난해 기준)이다. 이 중 국내기업이나 연구기관이 보유한 표준특허는 3708건(8.9%)이며, 이 가운데 삼성전자가 보유한 것이 1783건에 이른다. 미국의 경우 한국보다 5배나 많은 1만8670건(45%)의 표준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표준특허를 둘러싼 미 행정부의 대응이 과연 특허 싸움이 치열한 전세계 IT시장에 또 다른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게 될지, 특허괴물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특허제도의 모델이 될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뉴스1 DB
뉴스1 DB

◆삼성, 3년 소송으로 '양강 구도' 구축

IT업계에서는 오바마 행정부가 삼성 제품 수입금지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삼성으로선 잃을 것이 많지 않다고 보고 있다. 수입금지 대상 제품이 구형모델이라 비즈니스에 주는 영향이 미미한 데다 오히려 3년간 끌어온 소송으로 얻은 것이 더 많다는 분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세계 스마트폰시장에서 후발주자였던 삼성전자는 애플과의 소송전으로 이슈가 되면서 단번에 '애플-삼성'이라는 스마트폰 양강 구도를 구축하는 효과를 봤다"고 평가했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삼성은 애플과 소송전을 진행하면서 '스마트폰 리더' 이미지를 얻게 된 게 사실"이라며 "반면 이전까지 '혁신'이라는 좋은 이미지만 부각됐던 애플은 소송과정에서 자사 특허에 대한 로열티를 과다하게 요구하면서 상대 특허에 대해서는 적게 받으려는 모습이 드러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얻게 됐다"고 삼성전자의 반사이익을 강조했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오는 10월8일까지 ITC의 삼성 제품 수입금지 권고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오바마 행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항소할 예정이다. 과연 26년만에 ITC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한 오바마가 이번에는 어떤 선택을 할지, 그 파장은 어떨지 귀추가 주목된다.

 ☞ ITC가 개입한 '애플-삼성' 특허 전쟁史
 
지난 2011년부터 애플과의 소송전을 이어온 삼성전자는 그해 6월28일 ITC에 애플사의 특허 침해를 주장하며 아이폰, 아이팟, 아이패드 등 6개 제품에 대한 수입금지를 신청했다.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와 애플 간 소송전은 수입금지 요청전으로 확대되는 국면을 맞았다.
이에 애플은 일주일 뒤인 7월5일 ITC에 갤럭시S, S2, 갤럭시탭 10.1 등 삼성 제품 수입금지를 신청하며 맞불을 놓았다.

삼성이 애플에 제소한 건에 대해 ITC는 이듬해 9월15일 애플의 삼성 특허 비침해 예비판정, 11월19일 특허 침해 판정 재심사 결정을 각각 내렸다.

그 후 5차례나 최종 판결을 연기한 끝에 지난 6월4일 애플이 삼성전자가 주장한 4건의 특허 가운데 1건을 침해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애플이 AT&T 통신사용으로 제조한 아이폰 4와 아이폰 3GS 모델, 아이패드 3G, 아이패드2 3G 모델을 미국에서 판매할 수 없게 되자 미 행정부는 지난 8월4일 거부권 행사로 맞섰다.

한편 ITC는 애플이 삼성을 특허 침해로 제소한 것에 대해서는 2011년 10월24일 삼성의 애플 특허 4건 침해 예비판정을 내렸다. 이후 지난 1월23일 예비판정에서 '침해'로 결정내렸던 특허 4건 가운데 2건을 재심사하기로 하고 나머지 2건에 대한 예비판정을 다시 실시하라고 명령했다.

이어 ITC는 지난 3월26일 삼성의 애플 특허 4건 침해 예비판정을 확정했으며, 5월28일 다시 이 4건 중 나머지 2건에 대한 재심사를 결정했다. 8월9일 ITC가 내린 최종 결정은 삼성전자가 애플의 특허 2건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오는 10월8일까지 미 행정부가 이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삼성전자의 갤럭시S·S2, 넥서스, 갤럭시탭 등의 미국 수입이 금지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