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멘토의 적절한 조력으로 위기 탈출
부산 '다케다야' 민현택 대표는 본래 약품 유통업에 종사했다. 부산과 경남 지역 몇 곳에 개설한 약국 경영은 순조로웠다.
달에 억대의 수입도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일정 궤도에 올려놓기까지가 어려웠지, 일단 시스템을 갖춘 약품 유통업은 잘 나갔다.

최고급 승용차와 호화로운 생활은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안온한 일상 속에서 어떤 시련이나 풍파를 예측하기란 어려웠다.


언제까지고 그런 풍요로움과 순탄함이 유지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위기나 시련이라는 말은 다 남의 얘기였다.

◇ 사누키우동으로 권토중래 노렸으나…

한두 가지 사소해 보였던 문제들이 점점 커지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튼튼한 댐의 붕괴가 아주 작은 실금에서 비롯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성공에 머문 시간에 비하면 몰락의 시간은 아주 짧고 급격했다. 그러나 파국은 의외로 쉽고 너무 빠르게 왔다.

의약품 유통 사업을 정리하고 민현택 대표가 생계 대책으로 생각한 것이 사누키우동이다. 고급호텔 일식당을 드나들면서 접해본 사누키우동 맛은 충격적이었다. 아직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아 그것을 배워 한국에서 사업하면 분명히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굳은 결심을 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온갖 고난과 어려움을 참아내며 일본 가가와현에 있는 <오카타야(小縣家)>에서 사누키우동 수업을 받았다. 이 집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하루키의 여행법」에 등장하고 영화 ‘우동’에도 나오는 유명한 전통 사누키우동 집이다.


와신상담의 각오로 보낸 오랜 연수 기간을 끝내고 귀국하는 민 대표는 성공을 확신했다. 한국행 비행기 속에서 예전의 영화로웠던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밀려왔다 밀려갔다. 이렇게 맛있는 우동이 국내에 알려지면 난리가 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고객이 구름떼처럼 몰려올 것이고 이제 대박은 시간문제라고 보았다.

2010년 8월, 귀국하자마자 부산 남천동에 개점했다. 민 대표는 가슴 벅찼다. 이 멋진 아이템으로 한국에서 돈 쓸어 담을 일만 남았다고 여겼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어서 빨리 빚도 갚고 그동안 배운 실력도 만인 앞에 펼쳐 보이고 싶었다.

일본에서 배운 대로 최선을 다해 최고의 사누키우동을 뽑아냈다. 그가 직접 먹어봐도 나무랄 데가 없는 기가 막힌 사누키우동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우동집으로서는 비교적 넓은 실내가 더 썰렁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들판이나 산속에 있는 외딴 집도 모두 고객이 찾아와 줄을 서서 먹는다. 일본인뿐 아니라 한국이나 중국 등 외국인들도 그 대열에 적지 않았다.

본토 사누키우동과 견주어 전혀 손색없는 우동인데 하루 30만~40만원 어치 팔기가 어려웠다.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어떤 날은 오후 7시에 첫 손님을 받는 날도 있었다.

◇ 오리지널리티 강조와 성급함이 시련 불러와
민 대표의 실수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너무 오리지널리티를 강조했다. 가가와현의 본토 사누키우동과 똑같은 맛과 품질은 한국에서는 무척 생소했다. 즉, 고객이 먹고 싶어 하는 것보다 자신이 팔고 싶은 것을 만든 것이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고속도로 휴게소 스타일의 동경식 우동 국물에 길들여져 있었다. 칼국수 스타일의 국물을 원하는 고객에게 면발을 강조한 사누키우동이 먹힐 리 없었던 것이다.

둘째로는 창업 시 다양한 요소들을 무시하고 성급하게 문을 열었다는 점이다. 외식업은 종합예술이다. 뮤지컬은 연기, 노래, 무용, 무대미술, 무대장치, 조명, 스토리가 한데 어우러져야 한다. 외식업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연기 한 가지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다. 음식은 최상이었지만 서둘러 개업하다보니 나머지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점포 위치가 2층이고, 주차장도 확보하지 않았다. 점포의 규모는 필요 이상으로 넓었다. 점포와 메뉴를 알리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한 번도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고 개점부터 한 것이다. 성급했다.

일단 두 가지 큰 문제점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해결 방법이 막연했다. 너무 서두른 것을 후회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았다. 이렇게 혼자 힘들어하는 가운데 어둠의 터널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이 있었다.

낯익은 어느 단골이 하루는 민 대표에게 다가와 진지하게 말했다. ‘당신네 가게 때문에 우리가 가족회의를 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는 이미 가가와현에서 사누키우동 맛을 본 터라 이런 점포가 부산에 하나쯤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손님이 없어서 문을 닫을까 봐 걱정이 돼 가족들이 모두 각자 지인들에게 <다케다야> 홍보를 하기로 했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면서 힘내고 열심히 해달라고 격려해주고 돌아갔다.

민 대표로서는 이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 끝없이 자책했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나와 내 음식을 알아주는 사람이 최소한 한 명이라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었다.

◇ 전문가 도움받아 점포진단 등 입체적 노력 전개
다른 점포를 둘러보고 우선 메뉴 개선부터 시작했다. 너무 일본다운 맛이 우리나라 사람 입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했기 때문이다. 우동국물은 일본에서와 똑같이 간장만 썼던 것에서 벗어나 소금 간을 먼저 한 뒤 간장으로 풍미를 내는 식으로 절충했다.

또 순수 우동만 고집했던 태도에서 벗어나 돈가스를 메뉴에 편입했다. 손님 일행 가운데 우동을 싫어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전체가 되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점포 주변에 돈가스 전문점이 두 곳이나 있다. 게다가 민 대표가 돈가스를 좋아하지 않는데다 돈가스를 맛있게 만들 자신도 없었다.

그래도 돈가스를 만들기로 과감히 결정했다. 돈가스+간장+달걀의 형태로 개발한 메뉴는 ‘집밥’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막상 해보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고객 반응도 좋았다. 어려운 시기에 그나마 효자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한편으로는 종합적으로 점포를 진단해줄 전문가를 물색했다. 연기를 잘 하는 자신을 도와 미술이나 음악 등 나머지 부족한 부분을 보강해줄 기획 연출자를 찾았던 것이다. 그러던 중 외식콘셉트 기획자를 만났다. 주방에만 있다 보니 음식 플레이팅이나 마케팅 전략, 홍보 등에는 완전히 문외한 이었던 것이다.

외식콘셉트 기획자로부터 종합적인 컨설팅을 받았다. 전문가의 진단에 따라 먼저 벤치마킹을 했다. 그런데 벤치마킹 대상이 우동집만 있는 게 아니었다. 벤치마킹 요소가 있는 집이라면 업종에 관계없이 데리고 갔다. 민 대표로서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는 경험이었다.

전문가의 코칭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그 효과와 파괴력이 얼마나 큰지는 코칭 과정이 끝난 뒤의 성과가 말해주었다. 민 대표는 그를 만나면서부터 많은 것을 깨우쳤다. 외식업이 종합예술이란 점, 벤치마킹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 그리고 자신의 음식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받은 점 등이다.

특히, 음식에 대한 혹독한 평가는 약이 되었다. 그전에도 아는 사람들에게 음식에 대한 자문은 구했다. 그러나 모두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대놓고 악평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모두 ‘맛있다’며 주례사 비평을 해주었던 것이다.

아무도 음식의 문제점을 지적해주지 않으니 개선의 기회를 포착하지 못했던 것. 그러나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음식의 콘셉트나 메뉴 구성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메뉴 개선과 함께 메뉴판이나 P.O.P.와 전단지 등 광고 홍보물이나 게시물도 만들거나 개선했다. 서비스나 점포 시스템에 대한 조언도 받아들였다. 아울러 혁신적으로 바뀐 점포의 음식과 콘셉트를 적극적으로 알렸다. 인터넷 매체와 블로그에 기사와 포스팅이 게재되었다. 각 매체에는 ‘자가제면’이라는 점포 콘셉트와 메뉴 정체성을 강조했다.

그에 앞서 부산의 유력 일간지에서도 <다케다야>의 사누키우동을 취재, 보도했다. 2011년 여름에는 가가와현의 유명 사누키우동집 투어를 했다. 투어 뒤에 방문기를 매체에 소개했다. 이후 온라인상에서 많은 사람이 사누키우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공중파 방송에서도 방송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작업들이 입체적이고 유기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차츰 고객 내방률이 증가했다. 사누키우동 맛을 경험한 손님의 입소문도 선순환을 이루면서 자가 증식했다.

◇ 최근 약진 발판삼아 울산 등 몇 개 점포 개점 예정

<다케다야>는 ‘자가제면’과 ‘일본보다 맛있는 일본 우동’이란 점포 콘셉트를 가졌다. 최근 큰 폭의 판매와 수익을 시현하고 있다. 민 대표는 수익원 다변화를 위해 제면기 사업과 사누키우동 학교를 운영하기도 했다.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들인 노력에 비해 기대에는 못 미쳤다. 앞으로는 점포 경영에 더 역량을 집중할 생각이다.

그 일환으로 오는 10월경 울산 시내에 새로운 점포를 개설할 예정이다. 지금과 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서울이나 수도권에도 진출해 점포를 몇 개 정도 더 개설하는 것이 민 대표의 꿈이자 목표다.

민 대표가 시련을 극복한 요소는 역시 탁월한 멘토의 도움이다. 그러나 멘토를 발굴하고 선택한 것은 민 대표 자신이다. 힘든 여건 속에서도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했다. 그리고 자신을 객관화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는 과정에서 멘토를 만날 수 있었다.

또한 개점 초기 사누키우동이 힘든 메뉴임을 직감하고 한때 칼국수 집으로 업종 변경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접었다. 사누키우동의 가능성을 나름대로 파악하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때 칼국수로 업종을 바꿨다면 더 큰 시련이 닥쳤을 것은 불문가지다. 민 대표의 초지일관 자세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민 대표는 아침마다 모든 음식을 직접 맛본다. 특히 우동 국물은 불 조절에 극히 예민하기 때문에 맛이 왔다 갔다 한다. 이때 민 대표가 원하는 맛은 어제보다 뛰어난 맛이 아니다. ‘어제와 똑같은 바로 그 맛’이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은 어제 먹었던 바로 그 맛에 입맛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늘 유지되는 항상성을 가진 맛이야말로 식당의 정체성이자 존재 이유라고 한다. 더 나은 맛, 더 좋은 맛은 그 맛을 지속시킬 능력과 고객이 확보된 뒤에 실천해도 늦지 않다는 것.

이런 민 대표의 내부 요소들이 외부 전문가의 도움과 합쳐져서 비로소 시련을 극복했다. 아무리 유능한 외부 전문가가 훌륭한 조언과 코치를 해주어도 그것을 이해하고 실행하는 사람은 결국 본인이며 그 성패도 본인 몫이라는 것을 <다케다야>와 민 대표는 잘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