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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 손형주 기자 |
전셋값 고공행진에 집주인 월세 선호… 월세 거주율 사상 최고치
"언제부턴가 우리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남이 살고 있는 집에 몸을 숨긴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 사람들은 몰래 함께 살다가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고 한다. 마치 올빼미 새끼처럼.." (영화 <숨바꼭질> 중)
최근 개봉한 영화 <숨바꼭질>은 실화를 소재로 한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다. 집 없는 서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허무함을 고스란히 담은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집에 대한 주인공의 광기어린 집착. 이는 치솟는 집값과 극심한 전·월세난에 시달리며 내 집 마련의 꿈이 짓밟히고 있는 서민들의 현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내 집 마련은 '행복'에 대한 희망이고, '성공'의 증표라는 의식이 팽배했다. 하지만 앞으로 서민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주택시장의 흐름이 전세에서 월세로 변하고 있어서다. 이제 대한민국은 '집 있는 사람'과 '집 없는 사람' 두가지 부류로 나뉘는 셈이다.
최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전국의 아파트 전셋값은 57주 연속 상승했고 매매가도 4주째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세가 비율(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은 이제 70%를 넘었다. A부동산 관계자는 "예전에는 통상적으로 40~60% 선에서 형성됐던 전세가가 75%까지 치솟았다"며 "전셋값 잡겠다고 내놓은 '8·28대책'도 전혀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고 푸념했다.
이처럼 전셋값이 오르고 매물이 없다보니 세입자들은 등 떠밀리다시피 월세로 옮겨가고 있는 실정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8월 거래된 전·월세 아파트(4만9582건) 가운데 월세 비중이 33.8%(1만6754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2011년부터 전·월세 거래 통계를 집계한 이후 월별 최고치다. 아울러 같은 기준 수도권 주택의 월세 거주율도 23%로 최고치를 경신했고, 전세 거주율은 29.3%로 월세거주 비율과 비슷한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바야흐로 월세시대에 돌입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강서구 화곡동 대한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3% 미만 저금리시대에 집주인들이 월세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3억원짜리 전세를 월세로 돌리면 보증금 2억원에 월세 70만~80만원 선인데, 이는 1억원을 그냥 은행에 넣어뒀을 때보다 수익이 2~3배는 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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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시대를 살고 있는 안타까운 서민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세품귀 현상은 날로 극심해지고, 월세로 몰리는 서민들의 고통은 커져만 가고 있다.
최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인근에 월세집을 구한 직장인 박모씨(30)는 "2개월 동안 합정동 일대에 있는 30여개의 부동산중개소를 전전하다가 결국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50만원인 집을 계약했지만 썩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다"며 "진이 다 빠질 정도로 힘들게 집을 구하다보니 나중에는 답답한 현실에 분통이 터지고 억울해 자괴감마저 들었다"고 고백했다.
얼마 전 출산을 했다는 강모씨(28)는 "50만원 이상의 부담스러운 월세가 매달 나가야하니 생활이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어 결국엔 육아휴직도 못쓰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제 월세도 돈 있는 사람이나 들어갈 수 있는 분통터지는 세상이 됐다"고 울분을 토했다.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 전셋값에 기세등등(?)한 집주인들의 횡포는 도를 넘어서고 있다. 계약하려는 사람이 줄을 섰으니 싫으면 나가라는 식이다.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살고 있는 고모씨(34)는 "보증금 2500만원에 월세 100만원,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의 월세를 계약했는데 집주인이 도배조차 해주지 않더라"며 "그나마 우리 집주인은 양반이다. 친동생은 계약이 남은 상태에서 집주인이 월세를 올려줘야한다고 닥달해 불법인 것을 알면서도 마지못해 올려줬다"고 전했다.
경기도 광명시에 거주 중인 원모씨(33)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그는 "집주인이 터무니없이 월세를 올리려고 해 그냥 나가겠다고 하자 계약기간이 남았으니 다음에 들어올 세입자까지 양쪽의 복비를 모두 부담해야 한다고 겁을 줬다"며 "양쪽 복비를 합치면 100만원선이고, 집을 구할 때 또 50만원이 추가로 나가게 되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월세를 올려주고 그냥 살고 있다"고 억울해했다.
이와 관련해 변선보 법무법인 한별 변호사는 "일명 '깡통전세'가 급증하면서 사회적 문제로 불거진 가운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집주인과 세입자 간에 마찰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며 "이때 영세한 세입자들은 미처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시나 구에서 운영하는 '전월세보증금지원센터' 등에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도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서울시 전월세 보증금지원센터는 전·월세 보증금 갈등 상담, 대출 추천, 보증금 반환소송 등을 지원해주는데 지난 1년간 4만5000여건의 집주인과 세입자간 분쟁을 해결했다.
전세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높은 월셋값은 서민들에게 가혹할 따름이다. 국토부가 발표한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저소득층의 소득 대비 월주거비(월세 제외) 비중은 17.5%. 여기에 월세를 포함하면 월소득에서 40%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 집 마련'이라는 서민들의 작은 꿈은 이제 희망고문에 불과한 것인가. 대책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