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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사들이 발급할수록 손해 보는 신용카드가 있다. 이 카드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들도 발급을 거부당하기 일쑤다. 하지만 카드사들은 고객유치를 위해 막대한 마케팅비용을 지출한다. 지난해 기준 이 카드를 발급 받은 사람은 현재 약 8000명에 불과하다.
이처럼 카드사들이 적자운영에도 고객모시기에 혈안인 신용카드는 바로 'VVIP(특급회원·Very Very Important People)카드'다. VVIP카드가 뭐길래 카드사들이 이처럼 목을 매는 것일까.
◆VVIP카드 혜택 퍼붓다 결국 적자
지난달 금융감독원이 박대동 새누리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업카드사 6곳(올 4월 분사한 우리카드 제외) 중 4곳이 지난해 VVIP카드 운영으로 적자를 면치 못했다. 일반카드의 주요 부가서비스가 줄줄이 축소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VVIP카드의 마케팅비용 및 방만한 혜택 퍼주기가 알려지면서 일반고객들의 반발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전업카드사들은 지난해 VVIP카드 부가서비스 및 마케팅 등에 97억7000만원을 쏟아부은 반면 수익은 75억3200만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신한카드, 삼성카드, KB국민카드, 하나카드 등은 지난해 VVIP카드 운영으로 24억2900만원의 적자를 봤다. 신한카드는 VVIP카드로 전업카드사 중 가장 큰 손실(17억5900만원)을 냈다. 삼성카드(3억5600만원), KB국민카드(2억100만원), 하나SK카드(1억1300만원)도 수익대비 비용 지출이 더 많았다. 간신히 적자를 면한 현대카드와 롯데카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카드와 롯데카드는 각 1100만원, 9500만원의 수익을 거두는데 그쳤다.
◆'적자' 카드에 카드사들 왜 집착하나
VVIP카드의 수익구조가 적자인 이유는 VVIP카드 고객들이 카드사에 돈이 되는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 잘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전업카드사들의 VVIP카드 총 이용실적 5779억6600만원 중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이용액은 1046억5200만원으로 18.1%에 불과하다.
또한 카드사들은 VVIP카드고객에게 100만~300만원 수준의 비싼 연회비를 받는 대신 무료 항공권, 특급호텔 숙박권, 명품 구입권 제공 등 많게는 연회비의 다섯배에 달하는 부가서비스를 제공한다.
예컨대 신한카드의 '프리미어카드'(연회비 100만원) 고객이 1인당 월평균 500만원 정도를 사용할 경우 카드사는 고객의 카드사용에 따른 가맹점수수료(약 2%), 월 20만원의 수익이 전부다. 반면 카드사는 이 고객에게 항공 마일리지, 포인트 적립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월 12만~13만원의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여기에 만약 이 고객이 항공사 좌석 업그레이드 서비스를 이용하면 카드사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 카드사들이 좌석 업그레이드 서비스로 항공사에 지불하는 금액은 통상적으로 약 120만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VVIP카드는 결국 흑자를 내기 힘든 수익구조다. 그렇다면 이처럼 수익에 도움이 안되는 VVIP카드에 카드사들이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카드사 관계자들은 "VVIP카드는 연체리스크가 적고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카드사 관계자는 "VVIP카드는 결제액이 일반고객에 비해 상대적으로 클 뿐만 아니라 소액 결제비율도 낮다"며 "또 VVIP 고객을 많이 유치한 카드사는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갖게 돼 카드사들이 포기하기 힘든 상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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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카드는 부가서비스 '싹뚝', VVIP카드는 '찔끔'
비싼 연회비를 냈다면 그에 걸맞은 혜택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문제는 카드사들이 일반 신용카드 부가서비스 혜택은 대폭 줄이면서도 '적자사업'인 VVIP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 축소에는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카드사들을 상대로 VVIP카드의 혜택을 줄이도록 지속적으로 압박해왔다. VVIP카드가 카드사들의 수익을 악화시킨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카드사들은 올 초까지도 VVIP카드의 혜택 축소를 주저했다. 이에 비난여론이 확산되자 카드사들은 올 초부터 VVIP카드의 부가서비스를 줄이겠다고 금감원에 보고했다.
신한카드는 올해 12월부터 VVIP카드의 마일리지 적립률을 기존 1500원당 2마일에서 1마일로, 포인트 적립률을 1%에서 0.5%로 줄이기로 했다. 월간 적립한도도 20만포인트로 제한하고 국외에서 쓴 금액은 적립해주지 않기로 했다.
삼성카드의 '라움카드'는 전년도에 1500만원 이상 신용카드 이용실적이 있어야 기프트 바우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고 마일리지 적립 시 무이자할부는 제외하기로 했다. 하나SK카드의 '클럽1카드'는 전년도에 5000만원 이상 사용해야 동반자 무료 항공권 사용이 가능하도록 하고 더블마일리지 적립한도를 10만마일로 제한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부분 카드사들은 여전히 주요 고비용 부가서비스를 축소하지 않고 있다. 자녀를 외국으로 유학 보내려 하는 고객에게 현지 집을 알아봐주기도 한다는 컨시어지서비스부터 특급호텔의 스위트룸을 연 1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숙박서비스, 국내 골프장 이용 시 연 2회 주중 골프 그린피 면제, 전세계 300여개 골프장 그린피 30% 할인 등 VVIP 고객에게 제공되는 다양한 프리미엄급 서비스 혜택은 줄지 않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VVIP카드 점검을 통해 손익 균형을 맞추도록 지도했다"며 "대부분의 카드사가 올해 VVIP카드 헤택 축소를 신청했으니 연말이나 내년 초에는 혜택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