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사위 경영, 엇갈린 성적표


재벌가 ‘백년손님’ 사위경영의 명암이 드러나고 있다. ‘아들에게 물려준 회사보다 사위에게 물려준 회사가 더 잘 된다’는 말이 있다. 아들은 경영능력과 상관없이 회사를 물려받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사위의 경우 경영능력을 갖춘 사람을 선택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최근 사위경영 첫 주자가 이끌어오던 동양그룹이 자금난으로 해체 위기에 처하면서 승승장구하던 사위경영이 재조명되고 있다.

◆가장 먼저 무너진 사위경영 첫 주자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사위였지만 처남이 없는 까닭에 총수까지 치고 올라간 경우다. 현 회장은 고 이양구 동양 창업주의 장녀 이혜경 동양레저 부회장과 1976년 중매로 결혼했다. 현 회장은 당시 부산지검 검사로 재직 중이었으나 결혼과 함께 경영자의 길로 돌아섰다.

이 창업주가 타계하면서 ‘아들 승계의 법칙’은 무너졌다. 국내 재계에서는 처음으로 ‘사위 총수’ 시대가 열린 것. 딸들이 경영에 참여하는 경우는 과거에 비해 늘었지만 사위에게 경영권을 통째로 넘겨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현 회장은 1988년 동양 회장에 오르자마자 증권, 보험 등 금융업으로 그룹의 무게중심을 옮기며 성장동력을 확보했다. 2009년에는 생명보험업계 최초로 동양생명을 상장시키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주택건설시장 부진으로 인한 시멘트 수요 감소와 제품가 하락, 외국계 기업 진출에 따른 경쟁심화 등으로 지난해 12월 구조조정 계획을 내놨다. 이후 현 회장의 늑장 대응이 큰 문제가 됐다. 계열사들의 매각시기를 놓치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계열사들이 헐값에조차 팔리지 않는 상황이 닥치더니 결국 지난 9월30일과 10월1일 총 5개 계열사에 대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로써 동양그룹은 현재 해체위기에 놓였고 현 회장 중심의 지배구조까지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다.

◆위기 뒤 극복형 사위경영인들

장영신 애경그룹 맏사위인 안용찬 제주항공 부회장은 부실한 실적 탓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안 부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와 펜실베이아대 와튼스쿨 MBA를 거쳐 1987년 애경에 입사했다. 이후 처남인 채형석 부회장의 소개로 채은정 애경산업 부사장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1995년 애경 사장에 오른 후 그룹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도 10년 연속 흑자를 달성하는 등 탁월한 경영능력을 보여줬다. 2006년에는 생활항공부문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계열사인 제주항공을 맡았다.

제주항공은 출범 이후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또 2011년에는 당기순이익 168억원을 올리며 흑자전환하며 한숨을 돌렸지만 지난해 53억원으로 흑자폭이 줄어든 바 있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국내 7개 항공사 가운데 가장 많은 이익을 내 만회하고 있다.

현재현 동양 회장과 동서지간인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도 자신의 입지에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다. 2011년 수백억원대의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된 전력 때문이다. 
 
그러나 담 회장은 올 4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한숨을 돌렸다. 오리온 그룹의 부활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된 셈. 실제 오리온은 지난해 중국매출 1조원을 돌파하는 등 서서히 성장의 나래를 펴고 있다. 
 
담 회장은 고 이양구 동양 창업주의 차녀 이화경 오리온 사장과 결혼했다. 이 사장과는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로 처음 만났다. 이때부터 서로에게 끌린 두 사람은 10년 이상 뜨거운 열애 끝에 1980년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재벌가 사위 경영, 엇갈린 성적표

◆승승장구하는 백년손님들

경영능력을 인정받는 사위로는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이 꼽힌다. 김 사장은 동아일보 사주인 고 김병관 회장의 차남으로 2000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둘째 딸 이서현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과 결혼하고 2002년 제일기획 상무보로 입사, 2004년 초 제일모직 상무로 승진했다. 2010년 12월에는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또 3개월 만에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할 만큼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2011년 12월에는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으로 부임했다.

특히 김 사장은 지난해 9월 볼리비아 국영석유가스공사 YPFB와 8억4000만달러 규모의 플랜트 건설 계약을 체결하는가 하면 삼성엔지니어링을 세계 건설사 순위 20위권에 진입시키기도 했다. 김 사장은 지난해 매출 11조4400억원, 영업이익 7320억원을 올리며 전년대비 각각 23%, 16.9% 성장시켰다.

신성재 현대하이스코 사장도 승승장구하는 경영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신 사장은 철강업황 악화 속에서도 견실한 실적을 거두며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신 사장은 미국 캘리포니아루터대 경영학과와 페퍼다인대 MBA 출신으로 1995년 현대정공에 입사했다. 현대정공 근무 시절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셋째 딸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리조트 전무를 만나 결혼했다. 신 사장은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2005년 현대하이스코 사장을 맡았다. 영업본부장 시절에는 1조원대에 머물러 있던 현대하이스코의 매출액을 2조3000억원대로 끌어올렸다. 현대하이스코의 지난해 매출 8조4000억원, 영업이익 4350억원으로 전년대비 각각 2.9%, 0.3% 성장했다. 같은 시기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30% 이상 영업이익이 줄었다.

현대가 사위인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역시 업황 침체 속에서 선전하고 있다. 정 사장은 2011년 현대캐피탈 고객 148만명의 개인정보 유출사건 이후 금융환경이 변화하는 악재까지 겹쳤지만 꾸준히 성과를 내고 있다. 현대카드의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871억원으로 전년 904억원보다 33억원 줄었다. 하지만 업황 악화 속에서의 이 같은 성적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정 사장은 정몽구 회장의 둘째 딸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의 남편이다. 서울대 불문과와 MIT MBA를 나와 1987년 현대종합상사에 입사한 후 2003년 현대카드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정 사장은 사장 취임 후 파격적인 마케팅을 선보이며 4년 만에 현대카드를 업계 2위에 올려놨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CM송도 정 사장의 아이디어로 알려졌다. 2010년에는 금융계열사들의 영업이익을 1조원까지 끌어올리기도 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