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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류승희 기자 |
'정말 오길 잘했다'는 곳으로 가야… 불안 속 긍정요소에 도전을
누군가 윤운중씨(45)에게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한마디의 직업적 용어로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미술해설가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긴 하지만 어딘가 부족하다. 미술사 지식 하나를 바탕으로 때로는 투어 가이드였다가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고 명품 강연자로 변신도 했다. 뿐인가. 콘서트마스터로도 활약하고 있다. 혹자의 말을 빌리자면 '원 소스 멀티 유저'라는 용어가 딱 어울리는 사람, 그가 바로 윤운중이다.
<머니위크>는 지난 10월7일 홍대 어느 카페에서 '예비 창조인재가 윤운중에게 묻는다'라는 주제로 대학생 및 청년들을 대상으로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간담회는 올해 최고 경제이슈 키워드로 떠오른 '창조경제'를 이루기 위한 미래 인재에게 필요한 덕목과 갖춰야할 과제 등을 모색해보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간담회에는 머니위크 선정 '2013 창조인재 25인' 중 한명이자 평생학습 인재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윤씨의 발자취를 직접 들어보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신과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방법 등을 배우기 위해 미래 창조인재를 꿈꾸는 20대 청년 7명이 함께 했다.
"스스로 '먹고' '자는 것' 동물들도 하는데 요즘 청년들은 못하더라. 난 그걸 했을 뿐이다."
간담회가 시작되고 아직은 어색한 공기가 흐를 때쯤, 윤씨는 과연 국내 제일의 미술해설가답게 테이블 위에 있던 한 참석자의 태블릿PC를 바로 받아들더니 그림 한장을 검색해 보였다. 청중을 휘어잡기 위한 윤씨의 즉흥적인 퍼포먼스였다. 지금까지 윤씨의 해설이나 공연을 한번도 접하지 못했다는 참가자들의 눈동자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윤씨가 보여준 그림은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작품 <올랭피아>.
"자~ 이 그림 아는 사람?"
윤씨의 질문에 7명의 참가자 모두 고개를 휘저었다.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윤씨는 웃음 섞인 한탄과 함께 짧은 5분짜리 미술 해설을 시작했다.
생뚱맞게도 그림 해설은 삼총사로 시작됐다. 기사에 모두 담을 수 없는 것이 아쉬울 정도의 재미난 옛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더니 그 다음에는 연극으로, 다시 음악 이야기로 쉴 새 없이 이야기가 펼쳐졌다. 윤씨의 해설이 끝나자 절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림 자체에 관한 지식적인 설명이나 딱딱한 용어들은 단 한차례도 등장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새로운 그림을 이해하고 흡수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내가 하고 있는 많은 일 중 가장 대표적인 미술 해설을 간략하게 보여드렸습니다. 어떠셨나요? 전혀 지루하지 않으셨죠? (네) 고전 미술작품에 대한 진지하고 깊은 지식을 바탕으로 한 해설은 많은 전문가들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남들이 몰랐던 숨겨진 이야기와 관련된 음악 등을 곁들여 공연에 올림으로써 전혀 새로운 장르의 콘서트를 탄생시켰죠."
지금은 미술과 음악을 접목한 콘서트를 기획해 국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인정받는 그지만 처음부터 미술작품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서른살이 넘을 때까지 고갱과 고흐가 형제인 줄 알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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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고등학교 졸업이 내 학력의 마지막입니다. 게다가 졸업 할 때까지는 축구선수였구요. 남들 대학갈 때 독학으로 공채시험을 준비했고, 86년 삼성전자 연구소에 입사했습니다. 12년 일한 뒤에는 사표를 던지고 패션 무역업에도 뛰어들었죠. 이후 5년 뒤에는 다들 아시다시피 로마로 건너가 미술해설가의 길을 걸었고 현재는 콘서트를 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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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그런 거 없습니다. 목표한대로? 그것도 아니었던 것 같네요. 그렇다고 생각 없이 살아온 건 아닙니다. 매 순간 충실했죠. 그때마다 기회가 찾아왔고 선택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항상 '남들과는 다르게 하자'라는 다짐이 있었습니다. 그거 하나로 평생을 버틴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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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제일 불안한 요소가 뭘까요? 전 두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먹고' '자는 것'. 적어도 내가 여러분 나이 땐 그랬습니다. 지금 당장 여러분에게 남의 도움 없이 잠자리와 먹을 것을 해결하라고 하면 가능할까요? 쉽지 않을걸요. 성인이니까 마땅히 독립할 수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부모님에 의해서 앞서 말한 두가지가 보장되고 있는 거죠. 동물들도 하는 겁니다. 근데 요즘엔 인간도 잘 못하더군요. 난 그걸 했을 뿐이죠. 여러분은 지금 가장 불안한 요소가 해결됐는데 뭘 걱정하는 거죠?"
"유행 쫓는 친구들이랑 말 안 통한다고 쫄지 말고 오히려 자부심을 가져라. 당신이 잘하고 있는 거다. 그들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을 당신은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의 분위기가 사뭇 진지해졌다. 윤씨의 도전적인 대답 앞에 7명 청년들의 표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마음속에는 같은 의문이 자리한 듯 보였다. 아마도 '모두가 당신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냐'가 아니었을까.
이때 간담회의 핵심주제라고 할 수 있는 '미래 창조인재가 갖춰야할 필수 덕목'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스스로 끊임없이 새로움을 창조해온 2013년의 창조인재 윤씨의 눈에 비춰진 요즘 젊은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윤씨가 대답에 앞서 예로 들려준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자신이 알고 지내는 한 강연자가 여고에서 겪은 실제 대화라고 한다.
"(강연자)왜 열심히 공부하니?/(학생)좋은 대학 나오려구요/좋은 대학은 왜?/좋은 회사 가려구요/그 다음은?/좋은 남자 만나야죠/그리고?/아이 낳아서 키우고 잘 가르쳐야죠/앗! 그럼 그 아인 너네?!/네?/너 만들려고 공부한다는 거 아냐 지금"
질문이 계속될수록 여학생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표정도 시무룩해졌다고 한다. 윤씨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끊임없이 도전의식을 던져주고 싶다고 말한다.
"나를 생각해보세요. 고졸인 나에게 당시 회사 명함 한장은 내 인생의 95% 이상을 차지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처음 사표를 쓰기로 결심하던 날, 엄청 고민했죠.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혼자 살아온 내 인생, 이걸 놓으면 과연 난 어찌 될까…. 그 순간 인생에 있어 '안정'이란 단어는 신기루일 뿐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안정 속에는 지루함과 매너리즘이 포함돼 잇습니다. 마냥 좋아 보이는 단어 속에도 부정적인 요소가 들어있단 뜻이죠. 반면 불안감이란 단어 속에는? 설렘과 호기심, 열정, 모험 등이 담겨져 있습니다. 긍정적인 요소들이죠. 여러분에게 무엇을 도전함에 있어 어떤 '비장한 각오'를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긍정적이고 유익한 게 무엇인지 결단이 선다면, 그 순간 그것을 쫓으십시오."
유행을 쫓지 말고 유익을 쫓으라는 윤씨. 윤씨가 말하는 유익한 것이란 무엇일까.
"요즘 인기있다는 무한도전, 참 재미있죠? 그런데 그 안에 내년이나 10년 뒤에도 얘기할 수 있는 유익함이 얼마나 들어있나요? 반대로 내가 처음 보여준 올랭피아. 150년이 지난 지금도 누구에게나 보여주고 들려줄 수 있는 것이죠. 유행에 민감하지 마시길. 친구들이랑 말 안 통한다고 쫄지 말고 오히려 자부심을 가지세요. 유행만 쫓는 이들과 말이 안 통하고 있다면 당신이 잘하고 있는 겁니다. 그들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을 당신은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죠."
"너무나 뻔한 대답 같지만 책을 읽어라. 인문학은 모든 삶의 근본이다."
청년들이 갖춰야할 '자세'와 '정신'에 관한 이야기 다음으로는 실제적인 대화가 오갔다. 적은 참가자지만 이 가운데서도 취업과 창업 사이에서 갈등 중인 청년들이 의외로 많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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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질문입니다. 내가 지금 내 일을 잘하는 이유는 삼성에서 12년 열심히 근무한 것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기획했던 이 모든 일의 기반은 바로 회사생활이었습니다. 회사생활을 하는 친구들, 때로는 사고가 유연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실수가 적고 디테일에 강합니다. 반면 질문자와 같은 케이스는 새로운 일을 벌려놓는 것까진 잘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죠. 결국 스스로의 강점이 없다면 사업을 하면서 남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남은 통제가 되질 않고 결국 그 사업은 무너지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더 잘하는 게 답입니다. 창업은 의욕으로만 되는 게 아닙니다. 실력과 내공이 뒷받침 돼야죠. 회사 경험을 하느냐 바로 창업을 하느냐에 앞서 근본적으로 내가 내 일을 끝까지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판단하는 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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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뻔한 대답 같지만 책을 읽으세요. 저도 처음 로마로 건너갔을 때 미술지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두달 동안 잠도 안자고 당시 맡았던 바티칸에 관련된 서적을 달달 외웠죠. 배경지식에 필요한 성서도 계속 읽었습니다. 최근 한국에 인문학 열풍이 불었다던데, 식으면 읽지 않겠다는 걸까요? 인문학은 삶의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게 좋은 사람과 만나서 토론하는 일입니다. 우리나라엔 싸움만 있을 뿐 토론이 없는 게 문제죠. 남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듣는 훈련이 너무 안돼 있습니다. 독서와 토론, 이 기본적인 두가지로 부족한 지식을 메워보세요."
대표적 창조인재로 일컬어지는 스티브 잡스도 살아생전 '인문학'(liberal arts)을 끊임없이 강조한 바 있다. 그의 성공 뒤에는 항상 첨단 IT기술과 더불어 인문학과 철학, 휴머니즘이 함께 했다. 국내 대표적인 창조인재 중 한명인 윤씨 역시 인문학의 소중함을 역설했다.
"보통 어디 가길 주저하고 망설이다 막상 가면 '오길 잘했다'고 말한다. 그런 일들을 항상 하는 사람이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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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생활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아무리 책을 보고 누가 말해줘도 와 닿지 않는 게 있죠. 연애감정과 똑같습니다. 해외경험은 이제 여러분 세대에 피해갈 수 없는 것이 됐습니다. 특히 오늘 간담회에 참석한 여러분처럼 창조인재를 꿈꾸는 이들에게 글로벌시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과제와도 같습니다. 유럽이나 선진국에선 지식과 문화,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배움을, 우리나라보다 후진국에선 삶의 성찰과 감사함, 새로운 다짐 등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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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메인은 있어야 합니다. 나는 '문화'였죠. 그렇다고 다른 분야를 등한시하거나 관심밖에 두진 않습니다. 안테나를 켜놔야 거기에서 내 분야와 연관 있는 아이디어가 포착됩니다. 난 뚜렷한 전공도 학력도 없었지만 항상 받아들이려는 유연함은 갖추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두시간가량의 간담회가 끝나가고 있었다. 윤씨는 마지막으로 간담회에 모인 참가자들을 비롯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한마디를 남겼다. 결론은 '해보자'였다.
"불안하고 혹은 불편해도 직접 가보고 경험해봅시다. 보통 어디 가길 주저하고 망설이다 막상 가면 하는 말들이 뭔지 알아요? '오길 잘했다'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와서 느낀 것처럼 말이죠. 항상 그런 일을 하세요. 그러다보면 분명 여러분만의 길이 열릴 겁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