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여인' 최연혜, '신뢰의 철길' 달릴까

야간 취임식, 휴일 업무보고, 새벽 출근…. '코레일 사상 첫 여성 수장' 최연혜 사장(57)의 열흘 남짓 행보다. 사장 부재 상태였던 지난 3개월 코레일의 업무공백을 만회하고 해이해진 근무기강을 다잡기 위한 담금질에 나선 것. 어려운 시기 사장직에 오른 그의 취임 소감은 "난파선에 올라 탄 선장 같은 기분"이었다. 철도 공익을 바로 세우고 국민 신뢰를 끌어올려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위치에 선 만큼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야간 취임식, ‘No Holiday’ 선언

최연혜 사장은 첫 공식 일정은 지난 2일 오후 7시30분 취임식이었다. 같은 날 오후 5시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자마자 대전으로 내려가 취임식을 가진 것이다.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산적한 현안을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최 사장은 취임식에서 “코레일은 1년 365일, 불철주야 쉬는 날이 없고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열차들이 전국을 누비고 있으니 늦은 취임식이 우리에게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취임식 이후 코레일 주요 간부들과의 상견례도 직원식당에서 간소하게 치렀다. 이 자리에서 최 사장은 “제가 먼저 관용차 크기를 줄일 테니 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는 심정으로 경비절감에 협조해 달라”고 강조했다.

최 사장은 사장부재 등으로 인한 업무공백을 만회하고 조직이 안정될 때까지 휴일 없이 일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취임식 다음 날인 개천절 오전 국립대전현충원과 호국철도기념관을 방문했다. 오후에는 코레일 KTX 경쟁체제, 용산역세권 개발사업, 안전시스템 제고방안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업무보고가 이어졌고 주말인 5일과 6일에도 정상출근해 전사 업무보고를 시작으로 부서별 업무보고를 받았다.

직원들의 출근시간도 빨라졌다. 오전 회의를 30분 앞당긴 것. 운송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에서 회의 때문에 고객 불편이 발생하거나 업무에 지장을 줘서는 안 된다는 의중에 따른 결정이다.

◆꽁꽁 얽힌 현안…실타래 풀까

“철도는 그동안 국가경제 부흥 및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헌신해 왔지만, 최근 코레일의 경영 상태는 말 그대로 위기 상황입니다.”

최 사장의 취임사는 총체적 난국에 처한 코레일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방증한다. 최 사장이 빠른 정상화를 다짐하고 있지만, 상황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우선 고질적인 적자구조가 심각한 문제다. 지난해 말 총부채 14조원, 부채비율이 244%에 이르는 등 코레일의 경영 상태는 말 그대로 ‘최악’이다. 단군 이래 최대 사업이라고 불렸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최근 해제되면서 코레일의 재정상황은 갈수록 압박을 받고 있다.

이에 최 사장은 코레일이 '적자 공기업'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도록 전 임직원이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업별 책임경영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해 경영을 안정화 시킬 방침이다.

▲KTX와 일반열차의 운행체계 최적화를 통한 수익 극대화 ▲인력운영 효율화와 물류분야 혁신을 통한 과감한 비용구조 개선 ▲계열사의 경쟁력 강화·역세권개발사업·관광사업 활성화 같은 새로운 성장 동력의 발굴 등 전 방위적인 경영개선 노력으로 2015년에는 반드시 흑자경영을 달성하겠다고 의지를 다지고 있다.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열차사고 소식도 코레일에 대한 외부의 시선이 곱지 못한 이유다. 특히 지난 8월 대구역 열차추돌 사고가 인재로 밝혀진 가운데 올해만 이미 4건의 열차사고가 발생, 부실한 열차 운행·관리실태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해소할 최 사장의 카드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다. 안전사고 발생 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즉시 직위해제 한다는 것.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챙기겠다는 최 사장의 취임 일성에 따른 조치다. 최 사장은 “안전은 최고의 고객서비스이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가치이며 핵심가치로, 안전에 99.99%는 있을 수 없으며 0.01% 실수도 절대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꽁꽁 얽혀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노사관계도 코레일의 오래된 고민거리다. 최 사장은 이에 대해 “노사라는 구분부터가 잘못됐다”면서 “공기업에 어떻게 노와 사가 따로 있겠느냐”고 일축했다. 한길을 가는 동반자로서 함께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복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철의 여인' 최연혜, '신뢰의 철길' 달릴까

◆철도경쟁체제 도입 '진통'

산적한 현안에 대해 다양한 방안들을 제시해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최 사장도 철도경쟁체제 도입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눈치다.

최근 최 사장은 국토교통부가 철도선진화 방안으로 내세우고 있는 경쟁체제 도입과 관련 “박근혜 정부에서는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한 만큼, 좀 더 면밀히 살펴보고 협의를 통해 방안을 준비하겠다”면서 즉답을 피한 바 있다.

문제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국토부와 철도노조 양쪽 모두가 최 사장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크기 마련이어서 최 사장이 어느 한쪽으로 방향을 제시할 경우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김재길 전국철도노조 정책실장은 “최연혜 사장은 교수 시절 철도민영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의 뜻을 밝힌 바 있다”며 “갑자기 입장을 바꿔 국토부 방안에 동의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반면 국토부 한 관계자는 “철도전문가인 최 사장은 누구보다도 철도의 문제점을 잘 알고,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을 거라고 본다”며 “다만 외부에서 지켜보는 것과 내부에 들어가서 보는 것은 분명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