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 건설사 '4대강 발목'
관련 사업 담합혐의로 공공입찰 제한땐 손실 '눈덩이'

'4대강 오리알 신세' 건설업계의 한숨
4대강 사업 담합 혐의로 공공공사 입찰제한 징계를 받았던 건설사들이 한숨을 돌렸다. 법원의 집행 일시정지 결정에 따라 이들 업체는 행정처분 취소소송이 마무리될 때까지 정부와 공기업이 발주하는 공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연간 30조원이 훌쩍 넘는 규모의 공공사업을 놓칠 경우 천문학적인 매출 손실이 불가피했던 ‘4대강 건설사’들은 잠시 위기를 넘겼지만 씁쓸함마저 지울 수는 없는 눈치다. 국책사업이라고 해서 참여했더니 손해는 손해대로 보고, 수백억원대의 과징금 폭탄에 공공공사 입찰제한 징계까지 받았으니 억울한 심정을 호소할 곳도 없다는 것.

불안감 역시 한동안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이들 업체는 최종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는 계속해서 이쪽으로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상황이다. ‘4대강 오리알’ 신세가 된 건설업계의 속내가 사뭇 궁금해지는 시점이 아닐 수 없다.

◆‘4대강 후폭풍’ 한숨 돌리면 또 제재

지난 10월22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은 4대강 사업 담합 혐의 15개 건설사에 대한 조달청 입찰제한 처분을 11월 초까지 일시정지하기로 했다. 국내 건설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이번 사건을 보다 면밀하게 검토하기 위해 법원이 유예기간을 둔 것으로 분석된다.

회사별 가처분 신청 유예기간은 현대건설과 한진중공업은 10월31일, 포스코건설 및 SK건설, 경남기업은 11월1일, 대림산업은 11월3일, 현대산업개발은 11월20일까지다.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이들 업체는 행정처분 취소소송이 마무리될 때까지 당분간 공공공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만일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우려했던 대로 당장 공공공사 입찰에 제한이 생기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이밖에 삼성물산, 대우건설, GS건설, 쌍용건설, 한화건설, 삼성중공업, 삼환기업, 코오롱글로벌 등 8개사도 서울행정법원에 조달청 행정처분 취소소송 및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해 심리 과정에 있다. 이들도 앞서 6개사와 마찬가지로 법원으로부터 행정처분 효력 발생을 일시적으로 유예하라는 결정을 받을 전망이다.

당초 이들 15개 건설사들은 4대강 사업 담합비리 판정으로 10월23일부터 짧게는 4개월에서 길게는 15개월 동안 관급공사 입찰참여를 금지당할 처지에 놓여있었다.

이와 별도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아파트 공사에서 입찰담합을 한 혐의로 입찰제한 처분을 받았던 35개 건설사 가운데 28개 중견건설사도 효력정지 판결을 받아 소송이 마무리될 때까지 공공공사에 입찰이 가능하게 됐다.

조달청과 LH에 이어 10개 대형건설사를 4대강 사업 담합과 관련 부정당업자로 지정해 입찰제한 결정을 내린 한국수자원공사의 징계 조치도 함께 남아있다. 중복 징계 대상에 오른 건설사의 경우 대외 신인도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말도 나온다. 숨 돌릴 틈 없는 공공기관의 징계 릴레이에 업계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올해 남은 공공사업 12조, “놓칠 수 없다”

만일 공공공사 입찰제한이 그대로 진행된다면 그렇지 않아도 경영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건설업계의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매년 줄어드는 추세지만 건설사들의 매출에서 차지하는 공공공사의 비중은 여전히 높다. 지난해 기준 국내 공공분야 수주는 34조776억원으로, 전체 국내 수주에서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대형건설사들의 경우 15개월 동안 공공공사를 수주하지 못한다고 가정했을 때 현대건설은 2조2719억원, 삼성물산 2조3265억원, 대우건설 2조2514억원, 대림산업 2조1390억원, GS건설 1조6789억원 등의 매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손실 추정액은 각사 작년 매출의 9~27% 수준에 해당하는 수치다.

또한 상위 10대 건설사로 확장할 경우 12조원가량의 매출 손실이 예상되며, LH로부터 입찰제한 조치를 받았던 35개 중견건설사까지 감안하면 손실액은 20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조달청의 입찰제한 조치 이후를 기점으로 올해 남은 공공공사 사업은 100여개 12조원가량에 달한다. 12월 입찰 예정인 총사업비 1조5000억원 규모의 밀양~울산 고속도로 공사를 비롯해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5545억원), 인천경제자유구역청라국제도시 시티타워(2635억원) 등 굵직한 입찰 참여가 연말까지 대기 중이다.

게다가 앞으로는 공공사업 물량이 더욱 줄어들 전망이어서 공공공사 입찰제한이 실행될 경우 체감 손실은 더욱 크게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동안 사회간접자본(SOC) 등 공공사업 예산을 11조6000억원 감축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B건설사 관계자는 “올해 남은 공공공사 사업 발주 물량이 상당한 가운데 입찰제한 처분이 그대로 떨어졌다면 타격이 어마어마했을 것”이라며 “가처분 신청에 대한 최종 인용 여부가 내려진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한숨 돌리게 됐다”고 말했다.

'4대강 오리알 신세' 건설업계의 한숨

◆4대강 놓고 ‘정부와의 전쟁’ 지속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내려진 8개 건설사 1115억원 과징금 부과를 비롯해 지난 9월 검찰의 11개 건설사 전현직 임원 22명 기소, 그리고 최근 이어지는 입찰제한까지. 4대강 사업 담합 혐의와 관련 잇따라 뭇매를 맞고 있는 건설업체들의 반격도 차츰 목격되고 있다.

4대강 사업에 참여한 건설사 중 일부는 최근 수자원공사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450억원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 4대강 공사 중 수자원공사의 요청에 따라 설계 변경 등의 추가 공사비가 발생했음에도 해당 비용을 정산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미지급 공사 대금을 이유로 민영건설사가 공공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례적이다. 일각에선 ‘4대강 때리기’에 대한 반발 심리에서 비롯된 반격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에 수자원공사 측은 공사를 맡은 건설사가 설계부터 시공까지 모두 책임지는 턴키방식으로 진행된 공사이기 때문에 추가 비용을 줄 수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건설사들은 또한 현재 진행 중인 효력정지 가처분 및 행정처분 취소소송 등 법적 대응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제재 기간을 최대한으로 축소 또는 폐지시킨다는 계획이다.

다만 통상 행정처분 취소소송은 대법원까지 2~3년가량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업계는 장기간 소송에 대한 부담과 더불어 브랜드 이미지 타격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입장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뛰어들었던 건설사들은, 이제 본인들을 살리는 데 다시 한번 힘을 써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법원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 최종 판결에 업계 전반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