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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류승희 기자 |
"어떡하죠? 갑자기 대출금 1500만원을 전액 상환하래요."
어느 날, 한 동생이 어두운 얼굴로 고민을 털어놨다. 지난해 한 시중은행에서 1년 만기 대출(최장 10년 연장 가능)을 받았는데 갑자기 갱신이 되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은 것. 타 금융기관 연체기록이 떴다는 이유였다. 1개월 내 전액 상환하라는 연락을 받고 눈앞이 깜깜해질 수밖에. 돈이 없어 대출받은 사회초년생이 갑자기 어디서 1000만원이 넘는 돈을 구할 수 있겠는가.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안될까?"
"그건 안 돼요."
"주거래 은행은 가봤니?"
"아니요. 신용정보사이트에서 대출가능 조회해보니 은행권 대출은 안된다고, 러시앤OO 가래요."
그때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가 떠올랐다. 가계부채와 관련해 금융·복지·법률서비스를 원스톱으로 무료 제공하는 곳이다. 이곳에 가면 빚 해결의 묘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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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류승희 기자 |
◆ '발등의 불' 끄려는데 소득 파악부터…
지난 10월30일, 상담예약을 한 뒤 서울 서대문구의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중앙센터)를 찾았다.
"원하는 대출 문제에 관한 답을 얻기 위해선 전반적인 재무상황 파악이 필요해요." 최용묵 금융복지상담사는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상담 대상자(동생)에게 우선 고민을 물어본 뒤, 기본적인 인적사항과 소득·지출에 관한 정보를 구했다.
"월세는 얼마죠? 한달 휴대폰비는요? 기본 용돈은 얼마나 쓰시나요? 언제 결혼할 건가요? 아버님 환갑은?" 고정 지출은 물론 경조사비 등 앞으로 지출할 비용 등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그렇지 않아도 어두운 상담자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해갔다. 한번도 일일이 따져보지 않았던 지출과 소득 현황을 짚어보면서 '위기의 현실'과 적나라하게 마주했기 때문이다.
"고정 지출만 해도 월 소득을 넘어서요. 그런데 경조사가 있거나 내년 자동차세금 납부 등 비정기적 지출까지 발생하면 급한 대로 카드로 돌려막다가 신용등급이 더 떨어질 테고 그러면 캐피탈사, 대부업체를 찾겠죠?" 최 상담사는 "자칫 1500만원의 빚을 다른 대출로 돌려막을 생각을 했다면 순식간에 3000만~4000만원까지 빚이 늘어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일 빠듯한 소득으로 4~5인 식구가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굳이 지출현황을 자세히 캐묻지 않았겠지만, 혼자 월급을 다 써도 부족한 싱글이라면 잘못된 돈 관리 습관을 인식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는 얘기다. 사회생활 3~4년 동안 저축을 한푼도 못해왔다면 지출습관이 잘못된 것이고, 이를 고치지 않으면 계속해서 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당장 '발등의 불'인 1500만원의 빚은 어떻게 갚아야 할까. 상담 대상자의 동의를 얻어 신용등급을 조회해보니 6등급이 나왔다. 시중은행에서 대출이 가능한 등급은 통상 1~4등급. 6등급이라면 제2금융권 등에서 금리 15~20% 수준의 대출이 가능했다. 햇살론 등 서민금융 역시 10%가 넘었다.
현 지출규모로는 매월 20%의 적자가 누적되는 구조여서, 다른 고금리 대출을 받는 것은 더 큰 화를 부르기 쉬웠다. 결국 대안은 현재 보유한 자산을 팔고 지출규모를 줄이는 것. 자동차를 팔거나 집의 보증금을 줄이는 방안 등이 제시됐다.
최 상담사는 "차를 팔거나 보증금을 줄여야 하는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부채를 정리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행복한 상황"이라고 위로했다. 그리고 2차 상담 일정을 잡았다. 1차 상담결과를 토대로 신용카드나 통장 등 올바른 자산관리 습관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 최 상담사는 "급한 부채를 끈다고 해도 지출습관은 쉽게 안 바뀌기 때문에 앞으로 다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2차 상담에선 상담자에게 맞는 실행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안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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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류승희 기자 |
"부채 상담만 하면 간단합니다. 어디 가서 대출 받으라고 하면 되니까요. 지난해 시범 운영과정에선 과다 채무조정을 중심으로 했지만 올해는 복지서비스 연계, 재무교육 상담까지 종합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서울시는 금융·복지·법률을 결합한 원스톱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6곳의 문을 열었다. 그동안 운영돼온 서울시내 가계부채 관련 상담센터 47곳을 통합, 개편한 것. 흩어져있던 센터가 통합되면서 서비스의 폭이 확대됐다.
각 센터에는 전문상담사 2∼3명이 상주하며 무료로 과도한 채무조정 및 재무설계를 해준다. 또한 상황에 맞게 지원받을 수 있는 복지서비스가 있을 경우 연계해주고, 서울복지법률지원단의 상근변호사를 통해 법률상담 등도 지원한다.
상담채널도 활짝 열려있다. 창구상담과 전화상담은 물론 '찾아가는' 출장상담과 야간상담까지 진행하는 것. 유준용 팀장은 "장애인이나 어르신 같이 센터 방문이 어려운 경우 금융복지상담사들이 찾아가서 상담하고 필요한 서류준비도 돕는다"고 설명했다. 언어장애 등으로 일반적인 상담이 어려운 경우에는 수화통역서비스도 해준다.
특히 금융복지센터라는 명칭에 걸맞게 금융적 시각에서만 문제해결을 해주기보다는 상담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복지적 접근이 돋보인다. 유 팀장은 "예컨대 3년 동안 회생절차를 밟아온 사람이라면 먼저 '참 잘 했다'고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며 "빚으로 위축된 시민들에게 공감의 입장에서 다가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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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지난 7월부터 10월 말까지 상담사례만 2200여건에 달한다. 유 팀장은 "전체 상담건수 중 저소득층 상담이 50%, 일반 재무상담이 50%"라며 "저소득 과다채무자는 물론 청년층, 하우스푸어에서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센터를 찾는다"고 전했다.
운영시간은 월~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야간상담은 매주 화요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중앙센터에서 실시한다. 서울복지재단(중앙센터) 및 5곳의 지역센터를 방문하거나 전화(02-1644-0120) 또는 홈페이지(http://sfwc.welfare.seoul.kr)를 통해 상담을 신청하면 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