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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캐리 주연의 <예스맨>(Yes Man)이라는 영화가 있다. 불만과 부정적인 사고로 점철된 인생을 살던 대출회사 상담직원이 우연히 참석한 세미나에서 '긍정적인 사고가 행운을 부른다'는 프로그램 규칙을 지키기 위해 모든 일에서 '예스'를 외치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그린 코미디다.
요즘 증권가를 보면 이런 세미나는 필요 없을 듯하다. 리포트도, 분석도 죄다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특정 기업에 대해 '지금은 좋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좋을 것'이라는 리포트는 매우 흔하고, 투자의견도 '매수'와 '중립'은 있어도 '매도'는 거의 없다. 투자자들이 중립 등의 용어가 나오면 '팔라'는 시그널로 인식할 정도다.
물론 애널리스트들도 할 말은 있다. 기업과의 관계부터 시작해 내부적인 '영업'의 문제까지 얽혀 구조상 '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리포트를 '부드럽게' 쓰게 된다는 것이다.
예전에 매도 리포트를 낸 경험이 있는 애널리스트 A씨는 당시 "있는 그대로 썼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후 해당 기업은 물론 주주들로부터 항의전화에 시달렸다는 후문이다. 심지어 법인영업팀에서도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일감이 떨어져 나갈지도 모른다'며 고쳐달라고 요청해온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에는 세부적인 '분석'이 중요한 추정 기업 실적도 오차가 커 애널리스트의 체면이 구겨지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3분기 연속 증권사들의 기업(12월 결산법인 기준) 순이익 전망치는 71조3207억원으로 실제 이들 기업이 발표한 순이익(55조1697억원)보다 22%나 높았다.
분기별로 살펴보면 지난해 4분기 증권사가 내놓은 159개 기업의 순이익 전망치는 22조4663억원으로, 실제 순이익(12조8495억원)보다 무려 42.8%나 많았다. 올해 1분기와 2분기에도 증권사 전망치와 실제 순이익 간 괴리비율은 각각 14.5%, 12.2%였다.
물론 전망은 100% 맞을 순 없다. 하지만 이처럼 실제와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것은 애널리스트들이 매도 리포트를 내지 못하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자칫 부정적 전망을 내놓을 때 '손질'을 하지 않았다가는 밖에서도, 안에서도 항의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C 애널리스트는 "예전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상장기업 B사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냈던 적이 있다"며 "그런데 이후 열린 B사의 컨퍼런스에 초대받지 못한 것은 물론 자료도 주지 않아 고생한 적이 있다"고 술회했다. 양심껏 '부정적 견해'를 내놓았더니 '왕따'를 당한 것이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게 힘들다보니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종목추천 기사가 올라오면 "이것만 빼고 사야겠다"는 농담이 오갈 정도다. 신뢰도가 날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증권업계의 상황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바닥'을 기는 거래량과 거래대금으로 인해 증권업계는 수익 감소로 시름하고 있고, 펀드에서는 지난 8월28일부터 11월4일까지 44일간 6조원이 넘는 자금이 유출되기도 했다. 여기에 동양그룹 사태로 인해 동양증권의 사기판매 의혹까지 불거지며 신뢰도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대체 언제쯤이면 '바른 말하기 어려운 현실'이 사라져 투자자들로부터 '믿고 사야겠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